낸스회사 = 천사금융?

한 국가의 불합리한 제도나 체제는 작은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갑자기 붕괴되곤 한다. 강둑의 한 구석에 생긴 실낱같은 구멍이 커지면서 거대한 강둑이 일시에 무너지듯이.최근 국내 금융제도에도 이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소위 「빅뱅」이란 대대적인 금융개편방안에 의해서가 아니다. 법적으로 금융기관에도 끼이지못하는 파이낸스회사들이 국내금융업계의 빅뱅을 가져올 강력한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원래 제도권의 모든 개선정책은 아무리 훌륭해도 대변혁을 가져오기 힘들다. 역사가 말해주듯 내용이 좋고 대외명분이 훌륭해도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세력의 보이지 않는 반발이 커 기껏해야타협선에 머물기 일쑤다. 그래서 기존체제의 변혁은 뜻밖에도 비제도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최근 국내금융권에서도 이러한 돌풍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비금융권인 파이낸스회사들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제도금융권의 변신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이들 구멍가게식의 신종금융업체들은 물품대금으로 주고받은 어음은 물론 외상으로 물건을 팔아 생긴 채권까지도 싼 금리로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기존 금융기관을 위협하고 있다. 은행 종금사 투신사 등 기존 금융기관들로부터 천대받던(?) 중소영세기업들로부터대환영을 받고 있다. 일반국민들로부터는 고리를 받고 음성적으로어음할인을 해주는 방식으로 사채업자들이 운용하던 지하자금을 산업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숨통을 터주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판도얻기 시작했다.이들 파이낸스회사들을 건전하게 육성할 경우 국내금융업계에도 자연스럽게 혁신을 가져올 공산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조그마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K사장.중견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그는 최근 1억원의 자금을 얻기 위해은행문을 두드렸다. 부동산담보가 마땅하지 않은 그는 물품을 납품하고 받은 1억5천만원짜리 어음을 제시했다. 그러나 어음을 발행한기업의 신용도가 낮고 할인한도도 꽉 차 더이상 빌려줄 수 없다는은행측 답변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S파이낸스.S 파이낸스에서는 발행기업에 대한 신용을 확인한 다음, 곧 어음을할인해주었다. 금리는 연 17%. 다소 이자가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채보다는 훨씬 싸고 대출이 빨라 고맙기까지 했다.이들 파이낸스회사들은 이처럼 신속한 대응으로 틈새시장을 공략,고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신용도가 낮은 영세기업체에 대한 속사정을 밀착 조사한 뒤 그때그때 시장동향에 부응하면서 금융시장에서 그 영역을 급확대해나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신용평가회사들이 제공하는 신용정보DB를 토대로 해당기업의 재무상태와 경영진 사업유망성등 비재무적 요인들을 평가한 다음, 나름대로의 평가를 거쳐 신속히 대출해주고 있다.거대한 몸집과 기존 영업방식에 안주하려는 제도금융권과 달리 가벼운 체중을 최대한 장점으로 활용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팩토링금융의 일종파이낸스에 대한 호응도가 높아지자 파이낸스회사들의 설립이 붐을이루고 있다. 최근 파이낸스 회사수는 정확한 숫자를 알수 없지만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여 3백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지난해 여름의 50여개보다 대폭 늘어난 수준이다.파이낸스회사는 5천만원이면 누구나 설립할수 있는데다 법률적으로금융기관이 아니라 일반 상법인으로 분류돼 재정경제원의 영업인가를 별도로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 파이낸스회사의 설립을 부추기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파이낸스란 외상매출 채권매입을 통해 기업들이 보유채권을 만기전에 현금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신종금융업으로 팩토링금융의 일종이다. 파이낸스회사는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가 외상이나 할부로 대기업에 물품을 납품한 대가로 받은 매출어음을 할인해 준다.어음할인은 은행에서도 받을 수는 있으나 신용이 낮은 영세중소기업들은 어음할인의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담보가 없어은행에서 어음할인을 못하거나 적격업체가 아니어서 투금사도 이용할 수 없는 영세사업자들이 주고객으로 거래금액도 적은 편이다.파이낸스 설립은 설립주체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대별된다. 현대 한화 동양 동원 나산 한솔 거평 신호그룹 등 대기업들이 설립한 것과상업 동화 조흥 하나 광주 대구은행 등 은행들과 대신 동서증권 등증권회사들이 설립한 금융기관 관련 파이낸스회사 그리고 사채업자등 개인들이 설립한 파이낸스회사들로 나눌 수 있다.대기업들이 출자한 파이낸스회사는 자본금이 보통 50억원내지 1백억원 정도로 중대형파이낸스사들이 대부분이다. 금융기관이 설립한파이낸스회사의 자본금은 대부분 1백억원을 웃도는 대형파이낸스들이다. 동원증권과 광주은행이 출자한 동원파이낸스의 경우 자본금이 6백50억원으로 파이낸스 회사의 자본금중 가장 크며, 대신증권을 주축으로 설립된 대신팩토링이 6백억원의 자본금으로 2위에 올라있다.일반인 몇명이 공동으로 출자한 1억내지 2억원의 소자본 파이낸스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어 파이낸스회사들의 실태파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작년 6월부터 영업을 개시한 금성파이낸스의 경우자본금이 1억원에 불과하다. 심지어 5천만원의 자본금에 직원이 한두명인 기존 사채업자수준의 파이낸스도 생겨나고 있다.파이낸스의 설립동기도 다양하다. 신용금고업체들은 지점설치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파이낸스회사를 계열사형태로 설립하고 있다. 주로 영세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펼치고 있는이들 신용금고업체들은 동일인 대출한도가 자본금의 10%로 제한돼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파이낸스회사를 설립하고 있다.최근에는 중견회사들이 다른 파이낸스회사에 주는 이자를 챙기고동시에 금융업진출을 위한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몇몇 기업들이 공동으로 설립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말 설립된 큰나무팩토링도 그 중하나다.지역적으로 보면 이들 파이낸스회사들은 주로 서울에 몰려있다. 지난해부터는 부산 대구 광주 등 지방대도시를 중심으로 각 도시마다자본금 50억원정도의 중형파이낸스사 1~2개가 탄생한데 이어 5천만~2억원정도의 소자본 파이낸스회사 3~4개 정도가 신설, 활동중인것으로 알려졌다.중소기업전문가들은 파이낸스회사들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있다. 지난해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어음부도율이 전년보다 낮아진 것은 2, 3년전부터 대거 설립된 파이낸스회사의 역할이 컸다고 보고있다. 은행 종금사 등에서 중소기업대출을 꺼리는 것과는달리 위험을 무릅쓰고 급전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에 큰 도움을 주고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래서 중소기업들 사이에선 파이낸스회사를 흔히 「천사금융」이란 말로 칭송하기도 한다.파이낸스시장규모는 작년말 현재 팩토링잔액기준으로 1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금융기관 대기업 일반개인이설립한 36개 주요 파이낸스회사의 팩토링잔액(어음할인 및 매출채권 인수잔액의 합계)은 작년말 4조2천억원 정도로 파악되지 않는파이낸스회사들의 잔액을 합칠 경우 10조원에 이를 것이란 추산이다. 이는 95년도 중소기업들에 대한 은행권의 대출액 8조원을 훨씬넘는 액수로 그만큼 중소기업들의 자금공급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증거로 보고 있다.◆ 고금리 불구, 절차 빨라 선호파이낸스회사들은 보통 어음을 할인할 때 신용도에 따라 대표적인시장금리인 CP(기업어음)금리에 2~5% 포인트의 마진을 더한 연15-20%의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신용도가 낮을 때에는 이보다 다소 높은 금리를 적용하기도 한다. 위험도가 높은만큼 이자도올라야 한다는 것이다.현재 위험도에 대한 금리스프레드는 파이낸스회사마다 다소 차이가난다. 그러나 보통 여신액의 0.5%를 불량대출에 따른 손실금으로잡고 있어 영업마진은 평균 1.5%에 달하고 있다. 신용평가산업이발달한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0.5~0.6% 정도를 손실금으로 설정하고 있다.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이 파이낸스회사를 선호하는 것은절차가 간소해 빠르고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구비서류가 비교적 간단하고 즉시 현금을 지급받을 수있다. 장기간거래를 통해 신용을 쌓으면 일정한 한도를 정해놓고 별도의 절차없이 한도액 범위에서 수시로 돈을 빌려쓸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이다.또한 일반사채와는 달리 이들 파이낸스회사들은 상법상의 회사이기때문에 지불한 이자를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 세금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은행 등 기존금융기관들의 고질적인 병폐로지적되는 「꺾기」가 없다는 점이다. 파이낸스회사는 여신전문회사로 예금 등 수신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돼 있어 원천적으로 꺾기가불가능하다. 은행에서 당좌대출을 하면 명시적인 금리는 13~14% 정도지만 꺾기예금을 감안하면 금리가 거의 6% 포인트는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또한 은행권은 대출담당자에 대한 답례도 빼놓을 수 없는데다 별도의 시간을 내 접대해야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결국 모든 절차를 감안하면 파이낸스 회사들이 제시하는 금리가 결코 비싸지 않을수 있다.파이낸스회사는 대출업무만 취급하는 여신전문기관으로 예금업무를취급할 수 없어 부족한 영업자금을 주로 은행과 종금사 보험사에서차입하고 있다. 회사채발행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기도 한다. 일부회사들은 넉넉한 자금확보를 위해 단계적으로 증자를 실시하고 있다. 금융 및 대기업계열의 대형파이낸스회사들은 대외신인도가 높은 점을 이용, CP발행으로 영업자금을 70%가까이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족한 영업자금을 조달할 때에는 금리가 얼마나낮으냐도 관심사항이다. 이미 일부 파이낸스회사는 신금융상품의개발을 통해 싸게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모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스회사들이 대거 신설되면서 부정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군소업체들을 중심으로 업계수준보다 훨씬 높은 할인금리를 적용하는 업체가 있는가하면 물품거래가 수반되지 않은 융통어음을할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 이같은 규정을 어기는 업체들도 나오고있다.최근 정부는 파이낸스회사들이 금융관계법에 따라 취급이 금지된불특정다수인으로부터 수신을 받아 여신업무를 벌이거나 법정최고금리인 연 25%를 초과하는 이자를 적용하는 행위 그리고 불법 부당한 채권회수행위 등 금융질서를 문란시키는 행위에 대해 실정법을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한화파이낸스의 황요섭 사장은 『파이낸스회사들의 난립 속에 일부회사들이 불법적인 영업행위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사례는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파이낸스회사들은 상법에 의해 출발했듯이 앞으로도 별도의 금융관련법을 제정, 제도금융권으로 편입할 가능성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봅니다. 파이낸스 시장은 기존금융권의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외면해온 금융시장을 개척하고있는 중입니다. 다만 예전에 단자사의 출현으로 은행권의 영업방식이 개선됐듯이 파이낸스회사들의 진출을 계기로 금융업계가 시장중심으로 경영방향이 개선되는 계기로 작용할 공산은 있습니다』라고말했다.★ 인터뷰 / 김종학 유나이티드파이낸스 사장특정부문 전문화해야 경쟁력 있다파이낸스 설립붐이 일면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조합형식으로출자해 파이낸스사를 설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월급쟁이들도 부업차원에서 여유돈을 출자해 금융기관의 주주가 되고 있다. 믿을만한 경영자만 있으면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구에게 회사를 맡기느냐는 것이다. 지난해말 유나이티드파이낸스를 설립한 김종학사장을 만나 설립배경과목적 등을 들어봤다. 김사장은 고려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국민기술금융 광주은행 광은창업투자 신호그룹에서 근무하다 창업을 결심하게됐다고 한다.▶ 설립배경과 주주구성은 .벤처캐피털업체를 발굴해 자금을 지원하고 이자와 캐피털게인을 동시에 얻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자본금 5억원으로 창업했다. 물론 어음할인업무와 기업어음 등 유가증권투자도 하고 있다. 제도권금융기관과 민간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에 비춰볼 때 파이낸스사업전망이밝다고 여겨 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출자자는 상장회사 오너 변호사 회계사 등 10여명이 참여했다. 지분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이 계속나와 증자를 통해 사업기반을 확충해 나갈 계획이다.▶ 리스크를 관리하고 투자기업을 발굴하는데 적지않은 어려움이 있을텐데.개인적으로 기업평가에 대한 노하우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 특히 보유하고 있는 기업정보를 활용할 경우 리스크는 줄이고 수익은 극대화시킬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은 자본금이 많지않아 어음할인업무는 신중하게 할 방침이다.또 필요하다면 리스크컨설팅회사의 자문을 받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벤처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것이다. 그렇게되면 구체적인 자금조달방법을 제공하는 등 경영컨설팅서비스사업에도 진출할 생각이다.▶ 파이낸스회사가 난립해 시장을 어지럽힌다는 지적도 있다.파이낸스사를 제도금융권으로 흡수하는데는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설립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건 바람직하다고 본다. 파이낸스사들의 순기능은 한두가지가 아니다.특히 제도금융권 접근이 어려운 영세사업자들은 수백만원짜리 어음을 가져와 급전을 조달해가는 등 중소기업자금지원 효과가 적지않다. 다만 최저자본금을 정해 난립을 막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또 이자제한법 등을 어기며 고리로 영업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법적제재가 따라야 한다. 그래야 시장질서가 잡힌다.▶ 어음을 할인해줄 때 담보를 요구하는가.원칙적으로 신용평가에 의해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필요할 경우인적 담보를 요구할 계획이다. 적격업체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부도를 맞을 위험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제출하는 서류도 은행등 금융기관에 비해 까다롭지 않다.▶ 사업전망은 밝은 편인가.자금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이 보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융기관을 찾아갔다가 실망한개인사업자들의 수요가 상당하다. 금융기관에서 느끼는 딱딱한 인상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지금 추세대로 파이낸스설립이 증가할경우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져 당초 기대보다 수익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조만간 종합여신전문기관이 출현하면 경쟁력이없는 소형사들은 존립기반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파이낸스업계도 특정사업부문에 전문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미국도 소형금융회사가 2천여개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소비자금융과 판매금융업무를 하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금운용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규제로 생긴 틈새시장을 개척, 저소득 저교육층에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대형금융회사에 비해 조달금리와 대출금리가 높은 것은 약점이지만 특정지역의 특정고객을 공략해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 선진국시장이나 우리시장이나 틈새시장을 공략하는게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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