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롤라와 승부하는 '작은 강자'

얼마전 광고로도 나왔듯 모토롤라는 2차대전때 세계최초로 무전기를 개발해 연합국측의 승전에 기여한 다국적기업이다. 무선통신 분야에 관한 한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할 정도로 탁월한 기술력과세계적 인지도를 자랑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굴지의 거대 기업이 한국 무전기 시장에서는 국내의 한 중소기업에 영 맥을 못추고 있다.국제전자공업주식회사(대표 정일모·65)가 그 주인공. 71년에 창업했으니까 연륜은 20년이 훨씬 넘지만 아직 매출액이 5백억원에 조금 못미치는(96년 4백52억원·추정·97년2월 결산) 중견급 기업이다. 그러나 4백억원대 국내 무전기 시장의 점유율은 55%대 35%로국제전자가 모토롤라에 단연 앞서 가고 있다(나머지는 군소업체 차지). 수요자들의 「국산품 애용」 의식이 남달라서도 아니고 가격이 싸기때문도 아니다. 가격은 오히려 5만원가량 더 비싸다.모토롤라뿐이 아니다. 재계서열 5위 이내에 드는 대재벌회사들도최근 무전기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국제로부터 「한수 지도」를 받았다. 한 회사는 계열사 건설현장에서 조차 외면하는 바람에 개발비도 못뽑고 철수했고, 다른 회사는 사업부의 존치 문제에 관한 검토 의견을 선배 경쟁업체인 국제측에 비공식 의뢰했다가 「쉽지 않을것」이라는 회신에 미련없이 손을 뗐다.◆ 매출이익률 8%선 ‘우량기업’CCTV의 경우 컬러 카메라 분야에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정도로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바이어와 거래중」이라는게 정진현 전무의 설명이다.엄밀히 말할 때 웬만큼 성장한 중소기업을 보면 국제전자 정도의강점이라든가 특성을 하나 둘씩은 갖추고 있기 마련이다. 사업상이렇다할 주종목도 없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갈림길이라는 매출5백억원대 고지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국제전자는 중소기업계나 신용평가회사, 창업투자사 등으로부터 「극히우량, 장래성 좋음」이라는 일치된 평가를 받는 몇 안되는 회사중하나다. 통상 매출 이익률이 6%선이면 「우량」으로 분류되는데 국제는 최근 수년간의 매출 이익률이 6%를 상회했고 올부터는 8%가넘을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믿기 힘든 얘기지만 국제전자는 창업 이래 단 한차례도 부도 등 어려운 시기를 맞지 않았다고 한다. 『흥망성쇠니 심한 기복 등의 표현과는 거리가 멀고, 대체로 조금씩 나아지면서 순탄한 과정을 거쳐왔다.』(정사장)국제전자는 해군사관학교와 서울대 전자공학과(재학 당시 통신공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한 정사장이 집에 「TV 수리 센터」 간판을단 것에서 출발한다. 이후 66년 서울 청계천에 직원 5명을 두고 국제전자공업사라는 다소 발전된 형태의 사업체를 설립했다. 처음에손을 댄 품목은 휴대용 인버터. 이어 도난방지기, 접촉식·자외선식·레이더식 경보기 등을 잇따라 선보였고 드디어 70년도에 오늘날의 국제전자를 있게한 주력 품목인 무전기(해안초소경비용)를 생산, 해군에 납품하기에 이른다. 또 무선텔레타이프용 주파수 컨버터도 개발을 의뢰받아 국산화에 성공하는 등 기술력 신장 과정을거치면서 통신기기업체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71년 정사장은 무전기 군납이 가져다준 사업의 안정성을 기반으로삼아 국제전자를 법인으로 전환했다. 주문이 늘어나면서 작업량도늘고 자연히 직원도 더 충원해야했기 때문이다. 법인 전환 이듬해인 72년 일반인도 무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이 바뀌면서제2의 도약기를 맞는다. 처음에는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을 통해SKD(부분 부품조립) 생산, 2년 뒤 국산화, 76년부터 경찰 대량 납품,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판로 개척 등 순조로운 길을 달려왔다.그러나 90년대 초까지만해도 매출액은 1백억원대에서 맴돌기만했다. 수요처가 경찰 기관 정도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민간인이 무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해도 신원증명을 통해 전과 등의결격사유가 드러나면 허가가 나지 않는 등 제한요소가 적지 않았다. 이 제한이 92년 풀리면서 국제전자는 또 한차례의 극적인 전환기를 맞았다. 이때부터 93년 21.6%, 94년 33.2%, 96년 39% 등(95년은 경찰 수요가 없어 1.8%) 연평균 30%에 이르는 고성장세를 지속했다. 매출 이익도 93년 29억, 94년 50억, 95년 65억원을 기록하는대호황을 맛봤다. 해당 연도의 매출액이 2백억∼3백억원 정도였으니 얼마나 사업을 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계속되는 행운속에 중견기업이라는 위치에까지 올라선것 같지만 실상 그 배경에는 정사장의 「실전 기술 중시」에 대한집념과 소비자 만족이라는 경영철학이 뚜렷하게 자리하고 있다.정사장은 전자(통신)공학을 전공했으면서도 『TV를 고쳐달라』는이웃집 할머니의 부탁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못했던 젊었을 적 기억을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는 그때 「충격」을 받아 실전기술을 갖춰야겠다고 다짐했고 이 결심은 결국 무선통신 분야에서실전기술 축적이 가장 잘된 회사중 하나라는 저력을 낳게 된다. 무전기를 개발할 당시 일본 업체는 로열티를 내면 기술을 전수해주겠다고 했으나 정사장은 기술에는 자신이 있어 부품만 공급받기로 했고, 결국 부품과 작업지도서 종이 한 장만으로 개발에 성공한 것은국제전자 사람에게는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지는 일화다. 정사장의이런 철학은 회사내에 깊이 뿌리내려져 지금 국제전자는 업계에서「무선통신 기술자 사관학교」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올해 매출액 5백억원 돌파할듯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 한가지. 지난 93년 국제전자는 스웨덴에 본사를 둔 세계적 무선통신업체 에릭슨GE사와 손잡고 경찰청의 무선통신망 TRS 교체 작업 입찰에 참여, 사업권을 따낸다. 시스템은 에릭슨, 단말기는 국제가 납품하는 조건이었다. 이때 정전무는 기술이전차 5명의 기술자와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에릭슨사는 당초 두달반 일정을 잡아놓았으나 국제의 기술진은 불과 3주만에 전 과정을 마쳐 에릭슨 측을 감짝 놀라게 했다. 이 기술진이 한국내에서TRS 기술에 관해 최고의 전문가로 자리를 잡은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기술자들중 일부는 국제전자에 있지 않다. 최근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통신망 사업에 뛰어들면서 이들의 몸값이 치솟자 대기업으로 옮겨간 것이다.국제전자의 올 매출은 5백억원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정전무는 말한다. 향후 3년뒤인 2000년대초의 매출 목표는 올해의 두배인1천억원. 지금까지 연구개발비가 많이 소요됐던 CCTV 부문이 올 들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면서 흑자로 돌아섰고 군 납품 확대, 지난해 연말 완성된 경영 전산 시스템의 가동 등이 이런 전망을 낳는요인들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단말기 중심으로 사업을 해오던 것을 TRS를 포함한 통신 시스템 공급회사로 성장 △ CCTV 분야에서는영상기기, 시스템, 카메라, 모니터 등을 공급하는 종합 설치업체△계열사인 유니모를 통한 주문형 반도체 등 전자부품 생산 △차량용 무전기의 개발 △특수전기 사업분야 참여 등을 계획하고 있다. 국제전자는 특히 중국의 무전기 시장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유선망이 부족해 무선 통신기의 수요가 엄청난데다 산업용 무전기를 써야할 곳에 일제 아마추어용 무전기를 쓰고 있어대체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국제전자는 보고 있다. 산업현장에서의아마추어 무전기 사용은 부품규격이 달라 불법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최근 중국정부가 불법 무전기 사용을 단속하겠다고 발표한 것이국제측을 고무시키고 있다.문제는 경쟁업체. 『저희는 국내든 해외든 모든 것이 모토롤라와의승부입니다. 』정전무의 당찬 포부다. 국제전자가 세계에서 가장역동적 시장인 중국에서도 모토롤라와 멋진 승부를 펼친다면 한국산업사에 한획을 긋는 사건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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