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한 사회, 창의력이 '핵'

프로그래밍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두뇌작업이다. 하나의 과제를해결하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고 이를 코딩해야 한다. 코딩하고 나면 1천줄이 될수도 있고 1만줄이 될수도 있다. 코딩을 마쳤다고 작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의 오류를 찾아 수정해야 한다. 프로그램이 실행되지 않으면 어느부분에 문제가 있는지찾아내 해결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수없이 거쳐야 하나의 완성된프로그램이 나온다.소프트웨어산업의 성패는 프로그래머의 역량에 달려 있다. 우수한장비가 경쟁력의 관건인 제조업과 달리 소프트웨어산업은 창의적인인력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제조업체는 작업과정의 통제를 통해 제품의 질을 유지할 수 있지만 프로그램은 산출물이 나와 봐야 알수있다. 따라서 하루에 1천줄을 작성하는 사람이 하루에 1백줄을 작성하는 사람보다 낫다고 평가할수 없다. 오히려 1백줄이 주어진 과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도 있다.◆ 교육제도만 바꾼다고 능사는 아니다일본은 제조업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고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소프트웨어산업만큼은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일본 통산성 조사에 의하면 미국과 일본의 격차가 줄어들기는 커녕더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통산성은 그 원인을 소프트웨어인력의 창의성이 부족한데서 찾고 있다.이런 사정은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소프트웨어시장을 지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한글과컴퓨터 핸디오피스 퓨처시스템 등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이 때문에 창의적인 프로그래머의 육성을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창의성을 배양하는 교육방법을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창의적인 인재의양성은 단지 교육제도만을 바꾼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먼저 사회가 창의적인 사람을 필요로 하고 이들이 「출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대학에서 배울 것이 없어 대학진학을 포기했다는 서태지와 같은인재가 연예계이외의 분야, 특히 비즈니스에서도 빛날 수 있어야한다』는 한글과컴퓨터의 강태진이사는 특수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활동무대가 넓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그러나 한국에서는 특수한 재능보다는 학력과 인맥이 있어야 대접받고 성공할 수 있다. 대학에 들어가고 번듯한 대기업에 취직해야인정받는 분위기다.『젊은 인재들을 2~3년 훈련시켜 함께 일할 만 하면 대기업으로 빠져 나갑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만 5명을 새로 충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적령기에 있는 이들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사윗감으로 송우정보라는 이름도 못들어본 기업에 다닌다는 것과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대기업에 다닌다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지않겠습니까.』 중소 정보통신기업인 송우정보 신종철 사장의 말이다.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한국의 청소년들은 대학에 들어가기위해 기를 쓰고 교과서에 매달린다. 대학교의 도서관은 취직공부를하는 학생들로 가득하다.아무리 어려서부터 창의력을 키워봤자 사회가 이들의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그 능력은 사장되고 만다. 근본적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창의력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산업구조가 필요하다.산업사회에서는 균일한 수준의 인재를 대량으로 양성해 내야 했다.튀는 천재보다는 평범한 일꾼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대량생산체제에서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만 갖추면 되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이런점에서 성공적이었다.대량의 인력을 효과적으로 훈련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이런저력으로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에까지 왔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정보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다르다. 일정한 수준에오른 다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풍부한 여러부류의 소수가 필요하다. 특별한 재능을 길러내는 교육제도는 인위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이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산업구조가갖춰져야 한다.미국이 소프트웨어산업에서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창의력과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기업환경 때문이다.넷스케이프의 마크안드라센은 사업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하지 않는다. 직원들 월급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자신의재능을 프로그램에 쏟아부으면 된다. 개발이외의 모든 일은 소프트웨어산업에 비전을 갖고 있는 짐클라크라는 전문경영인이 책임진다.그러나 한국의 프로그래머는 창의력과 아이디어 뿐 아니라 자금을끌어모으는 사업수완도 있어야 한다. 매달 직원들 월급걱정에 시달려야 한다. 가끔씩 세무서직원과 세금문제로 실랑이도 벌여야 한다.『윈도용 워드프로세서인 파피루스를 개발할 때였습니다. 개발 막바지에 이르러 프로그램개발에 열중하다보니 그만 사업자금조달에차질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때 차라리 사업에만 신경썼더라면 덜어려웠을 것입니다.』 한메소프트 이창원 사장의 경험담이다.사업을 하기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 기업운영을 하다보면 늘 자금부족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금융기관의 자금을 동원하고 싶지만이들에게 돌아갈 금융기관의 돈은 많지 않다. 아무리 국가에서 중소기업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도움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담보가 있어야 대출하는 금융관행 때문이다.『대출받은 기업이 쓰러져 대출금을 떼이면 뒤집어 쓰는건 실무책임자입니다. 중소기업에 꼭 대출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책임질 일을 합니까.』 (시중은행 대출 담당자)벤처기업가는 대출실무자에게 대출근거를 마련해 줘야 한다. 담보를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기업의 최근 매출실적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아이디어만 믿고 뛰어든 벤처기업에 매출이 있을리 없다. 은행이 운영자금을 대출할 정도의 매출을 올리려면 이미 벤처기업으로서는 성공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모험심과 아이디어로출발했던 많은 벤처기업들이 일단 궤도에 오르면 무엇보다 매출규모를 유지하는데 신경을 쓰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업지원자금도 ‘그림의 떡’국가에서 지원하는 산업지원자금도 도움이 안돼긴 마찬가지다. 산업지원자금은 용도가 정해져 있다.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은 당초약속한 기간내에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 물론 이자도 물어야 한다.문제는 당초 신청한 금액이 모두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를들어 3억원이 들어야 할 프로젝트라면 1억원정도만이 지원된다. 지원자는 많고 자금은 한정돼 있어서다. 담당자가 특혜시비에 휘말리지않으려면 되도록 골고루 나눠줘야 한다. 국고는 국고대로 축나고지원받은 기업은 공연히 부담만 생기는 것이다. 이때문에 벤처기업에 지원하는 자금의 용도를 지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아예 지원자금을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 한 사회의 재화는 수요에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정부에서 지원하는 자금은 시장의 질서를 깨뜨리는 역할을 할뿐이지 대부분의 중소기업에는 도움이 안된다는이유에서다.우리사회는 아직도 자유분방한 소프트웨어업체의 사무실이 뉴스거리가 된다. 꽁지머리를 한 남자가 지나가면 어색해 한다. 배꼽티를입으면 벌금을 물리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무언가 다른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경직된 사회분위기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창의력은 무언가 평범한 것과는 다른데서 온다. 자유분방함이 사회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을때 창의성있는 프로그래머의 저변이 확대될 수 있다. 세계적인 프로그래머가 나오기위한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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