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소재 개발로 독보적 존재

경남 밀양에 위치한 한국화이버 제2공장 입구에는 허영호씨의 사진이 걸려있다. 허씨가 커다란 눈썰매를 끌고 북극점을 탐험하는 컬러사진이다. 이 회사가 허씨의 눈썰매 사진을 공장출입구에 걸어놓는데는 자사제품의 우수성을 방문객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허씨가 북극점을 탐험할 때 이용한 눈썰매는 영하 1백도 가까운 추위에도 견디고 철못보다 예리한 얼음위를 질주한다. 식량과통신장비 등을 싣고도 한사람이 끌고 다닐 정도로 가볍다. 이것은복합소재를 이용해서 한국화이버가 제작한 것이다. 6년전 북극점에도달했던 눈썰매는 지금 남극점 정복길에 따라 나섰다.허씨의 남·북극점 정복과정에서 기술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과시한한국화이버는 지난 72년 설립된 복합소재생산업체. 유리섬유 원사를 들여와 직물을 짠 뒤 수지를 발라 낚싯대용 소재를 생산하는 업체로 출발했다. 현재는 유리섬유 탄소섬유 아라미드섬유 등 복합소재원료에서 이를 응용한 항공기부품 건축보강재까지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6백10억원으로 95년에 비해 10% 가량 증가했다. 순이익은 37억여원으로 추정된다.◆ ‘공무과 조반장’ 신제품 개발에 앞장서한국화이버가 국내 복합소재산업에서 독보적 위치를 확보하는데는회사 설립자 조용준 회장(66)의 「기술개발」중시 경영방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조회장은 회사설립후 지금까지 단 한건의 기술도외국에서 도입하지 않았다. 자체 기술만으로 국내외 시장을 두드렸다. 조회장 스스로가 「공무과 조반장」,「한국의 에디슨」이라는별명에 걸맞게 신기술과 신제품 개발에 앞장서 왔다.다소 무모할 정도로까지 보이는 조회장의 독자기술개발에 대한 집착은 2월말 완공되는 세계최대의 10단 프레스 개발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이 프레스의 설치에 80여억원이 필요하자 재무와 생산담당임원들이 『수요도 불확실하고 거액의 현금을 투자하는 것은 자금회전에도 좋지 않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조회장은 자체 개발의불가피성을 역설했고 복합소재로 만든 냉동컨테이너가 스테인리스와 알루미늄으로 만든 것보다 가볍고 단열성, 강도에서 뛰어나다는평을 듣게 됨으로써 그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줬다. 이 제품은 현재 미국과 일본에 특허 출원한 상태며 현대정공 등 국내업체에서도주문이 급증하고 있다.앞의 예처럼 조회장은 독창적인 기술력만이 중소기업이 살아남을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중소업체치곤 다소 부담스런 매출액의 5%를 R&D(연구개발)에 쏟아붇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또한 국내 최대의 복합소재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박사 2명을 포함한 40여명의 연구진이 근무하고 있다. 만능재료시험기(UTM)와 수억원대의 비파괴검사장비인 C-SCAN 등 첨단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단체에서 연구결과를 측정하러올 정도다. 미국 보잉사와 맥도널드사가 이 연구소에서 개발한 항공기부품소재를 납품 받을 정도로 기술력도 뛰어나다.이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화이버는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첨단복합소재 생산업체로 발돋움한다는 야심찬계획을 수립했다. 복합소재 원료에서 응용제품까지 일관생산체제를구축하고 있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세계에서도5개업체만이 일관생산설비를 구축하고 있을 뿐이다.◆ 연구소서 개발한 부품소재 보잉등에 납품장기발전계획으로 집중 육성할 분야는 철도차량의 경량화와 건축보강자재 그리고 핵폐기물의 유리화사업이다.이중 철도차량의 경량화 사업은 조회장이 가장 애착을 갖는 부문.철도차량의 무게를 줄이면 고속운행은 말할 것도 없고 소음과 지반침하를 방지하는 이점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회사측은 TGV가 고속으로 운행하는 것은 복합재료로 차체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복합소재를 이용할 경우 국내철도차량의 무게를 현재보다 3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이같은 계획을 통산부담당자들에게발표했을 때 『미쳤다』며 비웃었다고 한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들을 프랑스와 스위스 등 유럽각국에 직접 데려가서 보여주니까 겨우수긍하기 시작했다고 들려준다. 사업계획과 기술이 너무 앞서다보니 행정관리들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회사측은 아쉬움을 호소했다.최근 시판하기 시작한 탄소섬유 시트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제품은 하중을 견디지 못해 건물이 갈라지거나 틈이 생길 때 보수보강제로 사용된다. 회사측은 시공이 간단하고 효과가 높아 수요가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이밖에도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페기물을 유리로 만들어 보관하는 사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 계획이다. 방사능을 함유하고있는 중·저준위 폐기물을 유리로 만들어 방사선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게 하는 사업이다. 현재 한국전력과 계약을 체결한 상태며 해외시장을 겨냥해서 프랑스의 SGN사와도 조만간 기술협약을 맺을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경영학자들이나 경영컨설턴트들은 중소업체들의 성공요인중 하나로 기술개발력을 꼽고 있다. 즉 핵심사업(corebusiness)을 중심으로 파생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화이버는 독보적인 기술개발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을 듣을 만하다.유리섬유 탄소섬유 등 복합소재 원료와 이를 응용한 항공기부품 철도차량경량화 핵폐기물유리화작업 등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있기 때문이다. 작지만 알짜 중소업체로서 한국화이버가 주목받는이유도 여기에 있다.94 95 96(추정치)자산 54,019 58,429 70,754자본 11,391 14,513 17,892부채 42,628 43,916 52,862매출 44,387 56,718 61,112당기순이익 652 2,198 3,700★ 미니 인터뷰 / 조용준 한국화이버 회장정부연구기관 민간업체로 이관해야▶ 밀양에서 사업을 하다보면 정보수집이나 자금조달 등 어려움이 많겠습니다.밀양의 의식있는 사람들로부터 『첨단산업을 한다, 어려운 사업을꾸려가고 있다』는 말을 들을때마다 사업가로서 자긍심을 느낍니다. 지역경제에 이바지하는 부문도 적지 않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불리한 점도 많습니다. 농촌의 싼 인력을 활용할 수 있을거란 기대감으로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인건비가 비싸요.또 공장에서 조금만 연기가 나도 환경이 오염된다며 항의하는 등대도시보다 어려움이 더 많은 것같습니다.▶ 중소업체인데다 공장이 지방에 있어 인력을 확보하기가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한 대책이 있습니까.물론 어려움이 많지요. 솔직히 급여도 대기업보다 못한데다가 농촌이라 퇴근후 마땅히 갈데도 없어서 입사후 그만두는 사원도 많습니다. 6개월이 고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회사에 애착을 갖는 사람이 많아요. 외국기술을 하나도 도입하지 않고자체힘만으로 기업을 꾸려간다는 사실에 매료당하는 것같습니다.개인적으로 기술자란 급여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경영자와 의기투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유롭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25년간 중소기업을 경영해 오면서 정부에 대해 가장 아쉬웠던것은 무엇이었습니까.저는 중소기업이 잘돼야 대기업도 잘되고 국가경제 전체도 제대로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가령 미국이나 일본은 대형 국가프로젝트일 경우 정부가 앞장서서 중소기업체의 참여를 적극 유도합니다. 우리는그러지 못하죠. 이를 시급히 시정해야 한다고 여러번 건의했더니노태우 전대통령시절 관료들이 저를 「골치덩어리」로 꺼리기 시작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정부연구기관을 관련 민간업체로 이관해야한다고 봅니다.▶ 최근 「노동법」파동으로 노동계와 재계가 한바탕 힘겨루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정부의 결단을 적극 지지합니다. 현정부가 인기에 연연했다면 이같은 조치를 취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근로자와 국민들도노동법 개정의 불가피성을 충분히 인식해야 합니다. 가령 1천명이근무하는 회사가 불황에 빠질 경우 3백명을 정리하면 나머지 7백명이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3백명을 정리 못해 전체가 다 죽는우를 범하면 되겠습니까. 이같은 상황에서는 호황때도 인력을 적극채용하기 힘듭니다. 노동법 개정을 전향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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