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주인은 없다' 징크스

부도로 쓰러진 한보철강을 포철이 위탁경영하게 됨에 따라 이 회사는 주인이 세번째 바뀌는 셈이 됐다. 한보철강의 원조는 지난 58년이원재씨가 설립한 극동철강. 이 회사는 지난 76년 금호그룹으로넘어갔다가 80년에 한보그룹이 인수했었다. 포철의 위탁경영이 끝나고 제3자 인수가 진행되면 한보철강은 네번째 주인을 맞게 된다.삼미특수강도 자산의 절반을 넘는 창원 봉강공장과 북미법인 등을포철에 매각키로 함에 따라 사실상 주인이 바뀌는 꼴이 됐다. 지난1월엔 부도난 상장 철강회사인 환영철강 경영권이 신호그룹으로 넘어갔다. 역시 주인이 교체된 것이다.◆ 한번 이상 주인바꾸기는 ‘기본’「철강업체에 영원한 주인은 없는가」. 최근 2~3개월 사이 굵직한철강업체 3개사가 자의든 타의든 주인이 바뀌면서 철강업계엔 이런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국내 철강업체들의 역사를들여다 보면 설립된 후 창업자가 경영권을 계속 쥐고있는 경우는극히 드물다. 오너가 한번 바뀐 것은 기본이다. 인천제철 연합철강동부제강 등은 두번씩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철강업체들의 부침이그만큼 심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는 자동차 전자 조선등 다른업종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들이다. 철강업계에서만 적용되는 일종의 징크스라고나 할까. 실제로 국내 최대의 전기로 업체인 인천제철의 경우 원래 뿌리는지난 53년 공기업으로 출발한 대한중공업이다. 이 회사는 70년 민영화 되면서 당시 이동준씨가 운영하던 인천제철에 흡수됐다. 바로그 인천제철을 78년 6월 현대그룹이 인수해 세번째주인이 된 것이다. 이 회사는 현재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현대그룹의 일관제철사업 추진에선 인천제철이 주도적 역할을담당하기도 했다.현재 동국제강 그룹 계열사로 돼 있는 연합철강도 원래 주인은 창업주 권철현씨다. 지난 62년 설립된 이 회사는 77년 국제그룹에 인수됐다가 85년 국제그룹 자체가 공중분해되면서 주인이 다시 바뀌는 운명을 맞는다. 창업주 권씨는 70년대말 외화도피 혐의로구속되면서 연합철강의 경영권을 상실했고 이를 넘겨 받았던 국제그룹의양정모 회장은부실경영 책임에 5공정권에 밉보였다는 이유 등으로경영권을 상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정부는 연합철강을 부실기업 정리대상에 포함시켜 동국제강에 경영권을 넘겼지만 노조의반대 등으로 진통을 겪었다.결국 포철이 1년6개월간 위탁경영을 맡았다가 동국제강으로 경영권을 되넘겨주는 곡절을 거치고야 제자리를 잡았다. 아직 권철현씨가2대 주주로 남아 연합철강의 증자 등 주요 의사결정에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긴 하지만 이 회사도 주인이 두번이나 바뀐 꼴이다. 포철의 위탁경영까지 포함하면 경영권자가 세번이나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동부그룹 계열인 동부제강도 연합철강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주인이 바뀌었다. 이 회사는 지난 55년 주창균씨가 설립한 일신제강이었다. 일신제강은 지난 82년 장영자사건에 휘말려 부도를 냈다.당시 자금난을 겪었던 이 회사는 사채시장의 돈을 끌어다쓰다가 장영자씨의 돈에까지 손을 대 화를 입은 것. 일신제강의 주거래 은행이었던 상업은행은 이 회사를 포철이 인수해 줄 것을 요청했고 당시 안병화 포철 부사장이 동진제강으로 이름을 바꿔 위탁경영을 했다. 2년 3개월간의 포철 위탁경영을 거쳐 이 회사는 84년 동부그룹으로 넘어갔다.일신제강은 지난 79년 단일 수출품목으로 1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했고 부도 당시 자산규모도 3천억원을 넘는 견실한 회사였다. 그러나동부그룹은 이 회사의 자산가치를 당시에 8백억원 정도 쳐주고 인수했다. 한때 튼튼한 철강회사로 평가받던 일신제강이 하루 아침에무너져 포철의 손을 거쳐 동부그룹으로 넘어간 것은 철강업계 입장에선 가히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한 사건이었다. 이밖에 동국제강 계열인 한국철강도 주인이 바뀐 경우다. 이 회사는 지난 57년신영술씨가 창립한 회사지만 경영난에 시달리다 지난 72년 동국제강으로 넘어갔다. 이에 따라 동국제강은 한국철강 연합철강 등을계열사로 편입시킴으로써 철강전문 그룹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손댔다가는 큰 코 다치는 ‘양귀비’ 업종특수강 업계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아특수강은 원래 55년김연준씨가 창업한대한중기공업이란 회사였는데 지난 90년 기아그룹으로 넘어갔다. 삼미특수강의 경우 66년 김두식씨가 설립했다가2세들(김현철·김현배 회장)에게 물려주었지만 경영난으로 주요사업부문인 봉강공장과 해외 법인 등을 포철에 매각해 사실상 주인이 바뀌는 셈이됐다.특히 삼미의 경우 특수강 부문의 경영부진이 그룹 전체의 자금난을야기해 급기야는 30대그룹 대열에서도 밀려나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특수강 업체 두곳도 모두 창업자들이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지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따지면 국내 주요 민간 철강업체중창업자가 현재까지 경영권을 갖고 있는 회사는 지난 53년과 54년각각 설립된 강원산업(정인욱 명예회장)과 동국제강(장상태 회장)정도로 볼 수 있다.그렇다면 도대체 철강업체들은 왜 이리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들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철강업체들의 잦은 주인 바뀜을 이렇게 설명한다. 철강산업은 「양귀비」와 같다는 말이 있다. 경기가 좋고 잘될때는 쉽게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손댔다가는 큰 코 다치는업종이란 뜻이다(동국제강 관계자).실제로 한보철강의 정태수 총회장은 부산의 극동철강을 인수했다가때마침 불붙은 철강경기에 힘입어 큰돈을 벌자 철강산업에 재미를붙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이때 철강업에 본격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당진에 대규모제철소를 지을 꿈을 키웠다는 것. 그의 꿈은지나치게 많은 은행빚과 무리한 투자 등으로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말았다. 게다가 철강업종 자체가 워낙 막대한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데다 보기와는 달리 기술적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도 마찬가지다.철강업은 중후장대 산업의 대표격으로 보수적인 업종이란 이미지로인식돼 있는 게 일반적이다.그러나 사실은 기술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민첩하게 변신하지 않으면 안되는 첨단산업이다. 최고경영자가 투자시기와 분야를 결정할때도 시장전망과 경쟁업체들의 동향을 종합 판단할 수 있는 혜안이필요하다.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겠지만 철강업종은 특히 덩어리가큰 사업이어서 이런 점들이 기업의 생사를 결정한다. 보기와는 달리 간단치 않은 업종이란 얘기다(인천제철 관계자). 어쨌든 한보철강의 몰락은 「영원한 주인은 없다」는 철강업계의 징크스를 다시한번 입증해주고 있다는게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