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잡는 기업들

한국 경제는 지난해에도 1백60억달러에 가까운 대일 무역적자(통관기준)를 기록했다. 지지난해에도 그랬고 올해에도 그럴 것이며 내년에도 상황은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예측할 수 있는 장래에 이 관계가 바뀔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경제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대일 무역적자는 점점 더 확대될 수밖에 없게끔 되어 있다.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우는 수준의 언급이지만, 한국이 생산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부품 등의 중간재및 투자재를 그만큼 더 일본으로부터 들여와야하기 때문이다. 성장을 수출과 투자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경제성장률을 높일수록 대일 무역적자의 증대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일간 무역적자 연 평균 12%씩 확대80년대 이후의 통계만 살펴봐도 이러한 점은 극명하게 드러난다.지난 81년부터 96년까지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은 연평균 12.3%씩 증가했다. 같은 기간중 대 일본 평균 수출 증가율은 12.2%. 수출입증가율이 비슷해 얼핏 별 문제가 안될 수도 있는 것 같지만 실제상황은 심각하다. 81년에 29억3천만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한일간 무역적자는 이 수치가 연 평균 12%씩 줄기차게 확대되어왔다는 의미이고 그 결과가 지난해 1백57억달러의 무역적자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쌓인 누적 적자는 양국간 국교가 정상화된 65년 이후 지난해 연말에 이르기까지 총 1천2백5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중간재와 투자재 등 생산재다. 지난 90년대초까지 대 일본 수입품의 사용용도는 중간재가 70%선, 투자재가 20%선으로서 합계 95%선을 넘나들었고 소비재는 겨우 5%를 밑도는 수준이었다. 품목별로는 기계류및 운반용 기계, 전자 및 전기, 화학공업생산품, 철강 금속제품 등이 대종을 이룬다.한일간 무역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 표2)다. 그동안부품·소재에 대한 수입대체 등의 노력에 힘입어 90년까지 전체적으로 적자였던 소재·부품 수출입 차이는 92년부터는 일단 흑자로돌아섰고 95년에는 1백억달러를 넘는 기록적 한해를 구가했다. 그러나 일본만 떼어놓고 보면 수출입차는 계속 벌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다 일본에 쏟아붓는 형국이다. 전체무역수지 측면을 보더라도 일본과의 적자가 전체 적자액을 상회하는, 다시 말해 일본만 아니었다면 무역수지는 계속 흑자를 구현했을 안타까운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무형의 수입인 기술료 지급 역시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92년 2억6천6백만달러 였던 기술료 지급은 94년 3억9천9백만 달러,95년 6억9천5백만달러에 달했고 96년엔 7월말 현재 4억6천3백만달러에 달해 연간 전체적으로는 8억달러를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불과 4년만에 3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기술료 지급 분야 역시 전기전자, 기계, 정유화학의 순으로 수입품과 흡사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기술개발·디자인·전문화 등으로 앞서가야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소재·부품 등 생산재로 사용되고 있고 한국의 대 일본 수입품목 및 기술료지급 분야가 전기 전자 등 국내주요산업에 집중되어있다는 것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한마디로우리가 주력으로하는 수출 종목(완제품)은 일본으로부터의 수입(부품)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한국은 개발연대 초기 일본식 성장모델을 추구하기로 하고 그 동력을 일본으로부터 빌려왔다. 산업구조도 비슷하게 지향하면서 자본재를 들여왔으며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산업을 목표로 「따라잡기」 전략을 채택했다. 물론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부품을 수입하더라도 완제품을 일본 시장에 내다팔수만 있다면 극단적인 수입초과 현상은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대부분 공산품의 경우 한국산은 일제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 한 기업인은 한일 무역역조의 개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가 일본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게 솔직히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일선 현장에서 가장 앞장서서 뛰어야할 기업인의 입에서 이와 같은 말이 나온 것을 두고 솔직히 그 기업인만을 나무랄수 없는게 작금의 에누리 없는 현실이다. 그나마 85년부터 국산화 정책이 시행되고 89년부터 수입선 다변화정책이 시행되고 있어 대일 무역적자가 현재보다 더 큰 폭으로 확대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WTO(세계무역기구) 시대를 맞아 더 이상 이 정책에 기댈 수도 없게끔 됐다. 특정 성격을 띤 정부의 보조금 정책은 WTO로부터 제재를 받게 되어있고 수입선 다변화정책은 WTO가 가장 크게 문제 삼는 불공정무역 행위에 해당되기때문이다.수입선 다변화정책은 94년 이후 단계적으로 해제돼 오는 98년이면완전 폐지된다. 용산 전자 상가에서 파는 동남아산 소니나 아이와가전제품이 아니라, 「메이드 인 USA」의 도요타 자동차가 아니라,오리지널 일본제가 물밀 듯 들어와도 이제는 그냥 지켜 볼 수밖에없는 상황이 오고 있다.과연 대책은 없는가. 언제까지 세계 다른 곳에서 벌어 일본에 안겨주는 「곰의 재주와 돈 임자와의 함수관계」를 계속해야만 하는가.물론 진단이 있는 만큼 처방이 없을 수는 없다.가장 쉽게 얘기될 수 있는게 과소비 억제 및 건전한 소비지출 풍토의 정착이다. 어차피 현해탄 건너 오는 일본산 제품을 막을 수 없다면, 이에 대해 합당한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도록하는 한편 사치성 고가품들에 대한 적정한 정책 등을 통해 소비 억제책이 마련되어야한다는 지적이다.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수입유발적 산업구조의 개선과 수출경쟁력의강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개발된 수입대체품이사용될 수 있도록 국산기계의 수요기반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는 한편 신기술 신상품 개발을 북돋우기 위한 제반 인프라가 지원되어야한다. 또 각종 행정 규제의 철폐, 서비스 정신을 함양하는 방향으로의 공무원 의식개혁 등도 긴요하다. 이런 바탕위에서 결국 기술개발과 디자인, 전문화 등으로 일본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방안이한일 무역적자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바른길이자 지름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한경 비즈니스는 이러한 취지에서 수입대체 또는 적극적인 일본 시장 진출전략을 전개해오면서 대일 무역적자 축소를 위해 노력해 온기업(인)들을 선정, 소개한다. 이들은 규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자기 분야에서의 천착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올린 전문가들이다.여기 소개되는 기업외에도 수많은 기업인들이 무역역조 개선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겠으나 여러 가지면에서 의미가 있고 가장 상징적이라고 판단되는 대상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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