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로 유통망까지 '꿀꺽'

『토이저러스의 일본내 출점은 미국기업이 일본에 진출하는 길을여는 이정표다. 앞으로 더많은 미국 소매업이 일본에 진출할 것을기대한다.』92년 1월 미국의 부시 전대통령은 완구전문점인 토이저러스나라(奈良)점 개점을 앞둔 기념식장에서 청중들에게 이같이 연설했다. 당시 나라점은 일본내에서 두번째 토이저러스점포. 앞으로 본격적인 체인화로 나가는 계기가 되는 점포개설이었으며 부시 대통령은 그 응원에 나선 것이다. 분위기는 반신반의였다. 과연 그가기대하는대로 될 것인가 하는 미심쩍어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그러나 부시의 기대가 현실로 나타나는데는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96년말 현재 일본내 토이저러스점포는 51개. 앞으로도1년에 13∼14개의 점포를 개설, 예정대로 2000년까지 1백호점을 연다는 방침이다.매장면적 3천㎡식으로 기존의 일본매장과는 비교가 안되는 대규모점포로 다양한 제품진열이 가능하다. 또 메이커와의 직접 거래로불필요한 중간유통단계를 줄임으로써 싼값으로 공급할 수 있다.98년1월 결산에서는 매출액 1천억원을 달성할 것이란 전망이다. 일본업계에서는 「지팡그(일본이 초기 서양에 알려진 이름)의 전설을찾아 몰려든 구로부네(黑船)를 연상시키는 열기」라고 놀라고 있다.토이저러스의 성공은 최근 한 두해동안 강력한 외국 유통자본들을일본으로 끌어들이는 시발이 되기도 했다. 더구나 구미 유통업에정통한 종합상사나 대형소매업체 간부들은 『아직 서막에 지나지않는다. 외국 유통자본들의 진출은 이제부터 본격화될 것』이라고지적한다.◆ 토이저러스·홈데포 성공 모델그 배경에는 구미, 특히 미국 소매시장이 성숙했다는 속사정이 있다. 80년대부터 출점, 업태개발경쟁이 심화되면서 정리되고 도태될기업이 일단락됐으며 미국시장에서 성장여지를 발견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로 인해 유력한 외자유통기업들은 태국 말레이시아중국 등 아시아 성장지역으로 진출이 활발했으나 일본시장 진출에는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대규모소매점포법(大店法)으로 대변되는 까다로운 규제장벽, 높은부동산값·인건비, 복잡한 거래관행, 언어 상행위의 벽이 버티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제는 완화되고 있으며 불황을 거치면서거품의 부동산가격은 완전히 빠져 나갔다. 이미 토이저러스나 CD전문점인 타워레코드(미국) HMV(영국) 등의 활발한 체인점확대를 지켜본 외자유통업체들에 일본의 이미지는 가장 거대한 성장잠재력을가진 소비대국으로 변모했다.토이저러스 등의 일본내 점포는 점포면적의 관리효율성에서 전세계최고급이다. 이로 인해 쟈스코나 다이이치 등 일본소매업중에서도외국유통자본과 제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소매업 뿐이 아니라 외식산업이나 소비자를 상대로 한 서비스업에서도 다양한 움직임이 있다. 일본경제규모가 작았을 때는 미국 사우스랜드와 세븐일레븐저팬의 제휴와 같이 외국자본이 직접 진출하기보다는 라이선스계약을 맺거나 노하우를 제공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1백% 출자한 일본법인을 설립하거나 일본기업과의합병으로 진출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룰 것』(이토추상사)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M&A(기업매수합병)라는 손쉬운 방법을 통하는 예도 늘 것으로 보인다. 95년 미국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의 세이부자동차판매 매수나지난해 이스라엘 다이아몬드수출기업(로렌씨 이스라엘)의 보석도매업체 호린(寶林)주식공개매수 등 일본기업이 그전까지 구축해놓고있던 판매망을 한꺼번에 손에 넣는 방법이다. M&A에 의한 일본진출과 관련해 현재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세계최대의 가정용품할인업체 홈데포(Home Depo)의 움직임이다. 지난해 중반 홈데포의사장은 일본의 쟈스코 일본맥도널드 사장 등을 잇따라 방문, 정보를 교환했다. 이때부터 홈데포는 시즈오카현을 기반으로 하는 가정용품할인업체 엔쵸를 M&A 대상으로 지목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홈데포가 엔쵸의 대주주가 되는데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과거 엔쵸와 공동으로 출점을 했으며 인사교류 등으로 자본·업무제휴를맺고 있었던 유니라는 회사다. 유니는 지난해 엔쵸와 제휴관계를끝냈으며 엔쵸에 대한 주식을 매각할 생각이다. 소문은 무성하지만일본판 홈데포를 꿈꾸는 엔쵸가 홈데포와 제휴를 하는 일도 충분히가능하다.◆ 제휴 원하는 일본기업 넘친다M&A란 손쉬운 방법이 활성화되면 이에 동반해 업종 업태가 다양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대형 CD전문매장인 타워레코드의 잇따른 출점은 그중의 하나. 완구와 함께 거대한 외국유통의 첨병으로 상징되는 타워레코드는 지난 80년 4월 삿포로에 1호점을 개설한 이래90년대들어 본격적으로 다점포전략에 나섰다. 이어 영국계의 버진스토어즈저팬이 상륙, 현재 외자계는 CD소매시장의 약10%를 점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95년 일본의 레코드생산량은 전년보다 9% 정도 증가했으며 이 가운데 2% 정도는 외자계 점포가 늘어난데 따른특수였다고 업계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외자계의 시장점유율은 수년내에 20%선까지는 무난히 확대될 것이란 예상이다.앞으로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외자유통은 더 큰 위협적인 존재가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는 「대점법의 완화스케줄을 알고 싶다」 「구체적인 투자우대책을 가르쳐달라」는 등의 주문이 쇄도했다. 이 날의 세미나는 일본무역진흥회와 지방진흥공단 등이 외국기업의 투자유인을 위해 공동주최한 것으로 회장에는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약3백50명의비즈니스맨들이 모여 이미 일본에 진출한 유통기업체 사장의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국제적인 기업제휴를 다루는 도쿄 시내의 한 법률사무소 자료실에는 1백개가 넘는 검토파일이 있다. 이 가운데 인테리어·가구를 전문으로 하는 BB&B(미국, Bed Bath and Beyond), 애완동물용품전문의 패트마트(미국), 서적을 취급하는 번즈 앤드 노블, PC전문점인컴프USA 등은 제휴를 원하는 일본기업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규제완화 땅값하락 진입장벽의 완화 등으로 한층 다양해지게 될 외국유통의 진출형태와 업종·업태가 일본시장을 명실공히 소비천국으로 만들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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