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배운 한을 성공의 '박씨'로 승화

안병균 나산그룹회장·나승렬 거평그룹회장·김범훈 훈테크사장 등

우리 사회는 학벌사회다. 한국의 교육열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고서는 사회에서 출세하기 어렵다는 인식때문이다. 「대졸」은 사회에서 번듯하게 살기위한 최소한의 「기본조건」이다. 학력이 출세를 좌우하는 분위기인만큼 학력으로 정상에 우뚝선 기업인들은 특별한 존재로 존경받는다. 특히 웬만큼가난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자식을 대학까지 보내는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인 탓에 대학을 못 갔다는 것은 아주 가난했음을 의미한다. 「학력파괴」기업인들은 동시에 「가난의 벽」도파괴한 「의지의 한국인」이란 말이다.「학력파괴」기업인으로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인 인물이안병균(49) 나산그룹회장이다. 안회장은 48년 전남 함평군 나산면에서 가난한 농가의 10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집이 가난해 중학교를 입학한지 3개월 만에 그만두고 집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다.농사를 짓다가 18세때 동생들 학비를 벌기 위해 무일푼으로 상경했다. 공사판 막노동과 식당, 연극판 등을 전전하다가 돈을 모아 식당을 차렸다. 도약의 발판은 「극장식식당」을 세우면서 마련됐다.국회의원을 지냈던 코미디언 이주일씨를 모델로한 「일단 한 번 와보시라니까요」라는 내용의 TV광고로 유명해진 식당이었다. 안회장은 『이 광고를 내보낸 이후 「일단 한 번 와보시라니까요」는 내사업 아이디어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한다. 한 번 온 고객은 영원한 고객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안회장은 80년대 서울 종로5가에 의류도매센터를 설립하면서 현재 나산그룹의 모태가 되는의류사업에 뛰어들었다.안회장은 자신의 성공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스스로생각하기에도 도전과 모험심이 강한 편이다. 새로운 사업을 벌이지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할 정도다. 남보다 한발 앞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무모할 정도로 과감하게 실천에 옮긴 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도전의식과 함께 겸손함도 안회장이 내세우는중요한 인생철학이다. 『나는 배운 것도 없고 부족한 사람』이라는생각이 안사장을 채찍질하는 계기가 됐다는 말이다.◆ ‘못 배웠다’는 콤플렉스가 성공의 동기최근 2∼3년 사이에 무서운 기세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는 거평그룹의 나승렬(53)회장도 국졸이 학력의 전부다. 전남 나주군 문평면의빈농 출신으로 67년에 상경, 중소전자업체에 다니며 독학으로 경리를 익혔다. 나사장은 탁월한 경리 실력을 인정받아 롯데삼강으로스카우트돼 경리과장과 영업부장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79년에 그간 알뜰히 모아둔 돈으로 「금성주택(현 거평건설)」을 설립, 사업을 시작했다.나회장의 성공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점이 뛰어난 회계실력을 바탕으로한 자금운영력이다. 그의 사무실 책상에는 아직도주판이 놓여있다. 나회장은 자신의 자금운영원칙을 「70%론」으로설명한다. 자신의 힘을 70%정도만 쓰고 30%는 비축해둬야 한다는뜻이다. 비슷한 의미로 「산봉우리 이론」도 강조한다. 한 봉우리에 다 오른 후 자신이 어디 서 있나, 여력이 얼마나 남았나를 점검한 뒤 다시 오를 수 있는 새로운 봉우리를 선택해 묵묵히 올라야한다는 철학이다. 『월급쟁이와 사업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사업가는 절대 남을 믿지 말고 철저히 고민해서 자기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말에서도 나회장의 경영스타일이 드러난다.컴퓨터 유통에 일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세진컴퓨터랜드의 창업자 한상수사장도 무일푼의 고졸 중퇴자다. 물론 올초 용산 전자업체들이 연쇄부도에 직면했을 때 회사를 대우에 넘기고 완전히 물러나긴 했지만 하나의 신화를 창조한 인물로 기억된다. 김범훈 훈테크사장도 고졸 학력으로 옥소리라는 멀티미디어 전문업체를 세운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김사장은 옥소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고 판단, 스스로 회사를 한솔에 넘겼다.현재는 컴퓨터 사운드카드를 개발하는 훈테크를 설립, 다시 의욕적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학벌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 게다가 무일푼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쉽지 않을 뿐더러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 불가능의 벽을 깨고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한결같이 내세우는 점은 『못 배운게 오히려자극이 됐다』는 것이다. 남보다 덜 배웠다고 생각했기에 더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배웠다는 점이다. 학력과 가난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들. 『못 배웠다는 콤플렉스가 오히려 성공의 동기가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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