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살리기, 동상이몽

철강산업은 국가적으로 보면 없어서는 안될 기간산업이다. 산업의쌀로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한보철강 문제가 국가경제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채권은행이나 포철이 출혈을 감수하면서도 어떻게든 한보철강을 살려보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철강회사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그러나 해결에 이르는 길은 멀어보인다.포철출신으로 구성된 보전관리인이 선임돼 실사를 벌이고 있고 제일은행을 중심으로 한 자금관리단이활동에 들어갔지만 서로의 입장이 달라 삐걱거리는 모습이다. 정부는 사기업의 문제인만큼가급적 간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문제해결의핵심키를 쥐고 있는 제일은행과재정경제원의 수장이 바뀌었다. 제일은행장에 유시열 한국은행 부총재가 취임했고 재경원장관에는강경식 신한국당 의원이 임명됐다.그동안 유지돼온 문제해결의 기조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되는 대목이다.한보철강 문제해결을 둘러싸고 맞서있는보전관리인단-자금관리단-정부 등 3자의 기본적인 입장을 정리해본다.편의상 여러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 재구성했다.보전관리인단 / 손근석 한보철강보전관리인"철저한 실사후 매듭짓겠다"기본적으로 최대한 빨리 문제를 매듭짓는다는 입장이다. B지구 건설이 중단된 상태에서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가능하면 3월중에B지구 공사를 재개하고 65%에 머물고 있는 A지구의 가동률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 실사결과는 3월 20일쯤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그렇다고 서둘지는 않을 방침이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만큼 실사작업은 철저히 할 계획이다. 그런 다음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일을추진할 예정이다.지금 시점에서 꼭 필요한 것은 자금, 인프라(사회간접자본), 세금혜택 등 3가지다. 이 세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한보철강이 제대로자리를 잡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자금은 현재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자금이 모자라 원료수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뿐더러 65%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는 공장을 꾸려가는데도 벅찰 정도다. 물론 자금지원을 맡고 있는 은행의 입장 역시아주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현장 직원들의 노고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자금과 관련, 또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은 추가 투자비용을 어떻게 조달하느냐 하는 점이다. B지구를 완공하려면 앞으로 1조7천억원~2조원의 자금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어차피 어느 한곳에 의지할수는 없는 입장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채권은행단에서 상당 부분을지원해주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만 쳐다보고 있지는 않을 작정이다. 차관을 도입하거나 채권을 발행하는 것도 신중히 검토중이다.항만이나 도로 등 인프라는 정부차원에서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사실 당진제철소는 그동안 공장을 지으며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개인기업 차원에서 하다보니 상당히 열악한 상태다. 원료를 들여오고 제품을 내다팔려고해도 항만이 부실한데다 도로가 좁아 비용이 많이 든다. 포철이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을 받아 훌륭한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을감안하면 상당히 어려운 여건 속에서 철강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한보철강이 비록 사기업이지만 국가의 기간산업인 철강을 만드는만큼 배려가 필요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원부자재의 관세를 유예해주었으면 한다. 또 지방세와 공공요금도 감면해주거나늦게 내도 되도록 도와주었으면 한다.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상태에서 이런저런 공과금을 내려니 여간 벅찬 것이 아니다.★ 자금 관리단 / 류시열 제일은행장"진성어음 확인서 발급, 대출 도와"부도 직후부터 자금관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보철강과 거래를 해온 15개 은행 가운데 제일, 산업, 서울, 조흥, 외환, 충청은행 등 6개 은행이 참여하고 있다. 주요 업무는 진성어음에 대해 확인서를 발급해주는 것이다. 피해상인이나 업체가 이 확인서를 갖고 은행에 가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일부에서는 대출을받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확인서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제기하지만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그렇지 않다. 확인서를 받은 어음이 총 1천6백78건에 2천3백억원 어치이고 지금까지 나간 대출액만도 3백10억원에 이른다. 다만 융통어음이나 외상거래를 한 경우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어 안타깝다.자금관리단이 외부에는 어떻게 비쳐질지 모르지만 우리 입장에서도어려운 점이 많다. 한보철강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은 우리가 돈을 쌓아놓고 안준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워낙 많은 액수를 한보철강에 물리다보니 은행들도 후유증이 심각하다. 은행들도 어차피 수익이 생기는 곳에 돈을 빌려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보철강에 대해서는 경위야 어찌 됐든 일방적으로 손해만 봤다. 지금 각 은행의 노조에서도 추가지원 절대불가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차라리 그동안 빌려준 돈을 포기하는한이 있더라도 더 이상 한보철강과는 거래하지 말자는 분위기다.상황이 이쯤되니 자금관리단도 입장이 난처하다. 자칫 은행권 사람들에게 역적으로 몰리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그렇다고 피해를 본사람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자금관리단의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한보철강을 정상화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단은 실사결과가 나와봐야 자금의 지원규모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는 우리의 계획을 밝히기 곤란하다. 그렇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들도 기본적으로 공장을 완공하고 정상적으로 가동시켜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야만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자꾸 채권은행단이 소극적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리들도 구체적인 지원방법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다만 방법론에 약간의 의견차가 있을 뿐이다.★ 정부 / 강경식 재정경제원 장관"원리원칙을 무시할 수 없다"한보철강 사태에 대해 정부는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 사기업의부도로 파생된 이런저런 문제에 정부가 끼여들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위탁경영을 맡은 측과 채권은행단이 협의해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정부가 문제해결을 전제로 깊숙히개입해 일을 처리할 경우 자칫 특혜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손근석 보전관리인이 중심이 돼 실시하고 있는 실사가끝난 후 이를 토대로 당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꼬인 실타래를 푸는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했으면 한다. 물론 정부도 여건이 허락되는 범위 안에서 당진지역의 피해주민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안에대해 심도있게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리원칙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바로 정부가 고심하는 대목이다. 다만 한가지 빠른 시일 안에 공장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정부 역시 하루 빨리 그렇게 되도록 힘을기울일 작정이다. 얼마전 정부가 한보철강의 입장을 감안해 수입원자재에 대한 관세를 1년간 유예해 주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당진제철소의 정상화와 관련, 일각에서는 정부가 자금지원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또 당진을 재해지역으로 선포해 정부차원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보철강의 부도 후유증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를 고려할 때 충분히나올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특히 법적으로 걸리는 부분이 많다. 정부는 어디까지나 공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저항에 부딪치게 마련이다.도로나 항만 등을 만들어주는 문제 역시 기본적으로 정부 소관사항이 아니다. 개별기업이 어느 특정 지역에 공장을 지을 때 사회간접자본을 스스로 구축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한가지 생각해볼 수있는 것은 정부가 만들어주고 같은 지역에 있는 업체들이 공동으로사용케 하는 것이다. 한보철강측이 요구하고 있는 도로나 항만도같은 맥락에서 검토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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