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해외 유출…금융시장 썰렁

금년들어 통화지표상으로 보면 자금이 많이 풀린 것 같은데 실제로기업들이 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연초들어 한보와 삼미그룹등부도사태가 잇따르고 있고 회사채수익률은 연일 상승해 최근에는13%대로 치솟고 있다. 원화환율도 8백80원대에 진입, 86년 6월 이후 약 11년만에 최고치에 육박하고 있다. 심지어 금융시장에서는4월중 금융 및 외환 대혼란설이 나돌고 있다.그러면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에서 돈이 어디로 빠져 나가길래 이처럼 돈이 없어 야단인가. 더욱이 국내경기가 침체국면을 보임에 따라 대내적으로 자금에 대한 수요가 줄고 있는데도 금리와 환율등가격변수의 움직임이 이처럼 심해진 것은 무엇보다 자금이 공급될요인은 줄어드는 대신 해외로 자금유출이 심해졌기 때문이다.해외부문에서 국내 자금사정에 영향을 미칠 요인은 크게 보아 두가지이다. 우선 경상수지 부문이다. 우리나라의 수출은 95년 30.3%신장했으나 지난해에는 3.7% 급감했다. 금년들어서도 이같은 추세는 지속되어 2월까지 수출증가율은 전년 동기대비 6.5% 감소했다.반면 수입은 지난해 11.3% 증가한데 이어 금년 들어서도 2월말까지2.1% 증가하여 수출증가율을 훨씬 웃돌고 있다. 여기에 무역외 부문에서도 해외여행증가와 기술로열티 지급 등으로 지난해 76억8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특히 개인 및 기업들의 해외송금이 자유로워지면서 국내거주자가외국거주자에게 무상으로 송금하는 이전지급이 95년이후 급증하고있다. 지난해 국내거주자의 이전지급액은 47억3천만달러로 부동산실명제를 실시하기 이전인 92년까지만 하더라도 20억달러 정도에머물다가 불과 4년만에 두배나 증가했다. 이와는 반대로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이전수입액은 96년에 39억7천만달러에 그쳐 이전수지적자규모가 7억6천만달러에 달하고 있다.◆ 대외부문에서 돈 벌기보다 더 많이 썼다이처럼 무역 및 무역외수지 이전수지가 큰폭의 적자를 기록함에 따라 지난해 경상수지적자는 2백37억달러에 달해 절대규모로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국가로 전락했다. 금년들어서도 1월에30억9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여 이같은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경상수지가 이처럼 큰폭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국내경기 및주식시장의 침체등으로 국내 투자환경이 개선되지 못함에 따라 지난해 자본수지 흑자규모는 1백72억달러에 그침에 따라 종합수지가57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평균환율이 8백4원임을 감안할 때 이를 원화로 환산할 경우 4조 6천억원에 달하는 것이다. 그만큼 대외부문에서 우리나라가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더 썼기 때문에 돈이 해외로 증발된 것이다.더욱이 지난해 4/4분기 이후 국제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강세현상이지속되고 대내적으로 경상수지적자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음에따라 달러화가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부각되면서 개인과 기업들이 달러화를 사기 위해 쓰이는 돈이 급격히 늘고 있다. 현재 미국과 한국의 금리를 각각 5.6%, 12%로 가정하면 1달러를 한달간 보유할 경우 금리차손실은 4원60전이다. 그러나 실제로 원화 환율은 한달에 10원이상 상승함에 따라 결국 1달러를 한달간 투자한다면 최소한 5원이상의 수익을 얻고 있는 셈이다.이처럼 달러화 보유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음에 따라 개인 및기업들은 달러화 사재기에 막대한 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거주자들의 외화예금잔고를 보면 지난해 말까지만 하더라도14억달러에 불과했으나 금년들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 지난 3월10일 현재 45억달러에 달해 불과 두달만에 31억달러나 증가했다.이는 같은 기간중 평균 환율을 적용할 경우 2조7천억원의 돈이 달러화를 사들이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이밖에 최근 들어 국내에서 자금출처 불명의 돈이나 해외 현지기업인들이 벌어들인 돈이 국내에 유입되지 않고 그대로 주요 국제 금융시장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며 그 규모도 해가 갈수커지고 있다. 특히 버진 아일랜드등 카리브해 연안지역의 국가들은세제 혜택과 철저한 기밀보호 등을 내세워 이러한 돈을 적극적으로유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권력층을 위시해 주요 국가 프로젝트와관련된 리베이트자금들이 최근 들어 이들 국가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결국 이처럼 대외부문과 국내 외환시장에서 개인들이 달러화 사재기에 나섬에 따라 자금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현재 총통화율이19%대를 상회해도 자금의 실수요기업들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국내 외환시장에서는 달러화부족현상이 심화되어 원화 환율이 연일 최고치를 기록함으로써 해외에서 대기하고 있는 외국자본이 유입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국내에 유입된 외화자금마저 해외로 이탈됨으로써 주가가 급락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이같은 현상이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경기를 더욱 침체의 늪으로빠져들게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가신뢰 유지해 달러누수 막아야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고비용-저효율」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데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고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수출을 통해 자금이 공급될 가능성은 적다. 국내 금융기관과 해외차입을 통한 자금유입도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4월에는 신노동법 개정에 따라 추가적인 파업상태가 예상되고 있고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혼란가능성과 남북간 긴장상태 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반면 대외부문의 자금수요는 수입이 경기침체에 따라 둔화될 것으로 보이나 해외여행 경비, 기술 로열티 지급, 외채원리금상환 등무역외 부문과 해외송금 등은 금년에도 크게 줄기는 어려울 것으로예상된다. 여기에 개인과 기업들의 달러화 사재기도 현재와 같은경제 내외적인 불안심리가 가시지 않는한 계속될 것이다.연구기관들은 이러한 요인을 감안하여 기관별로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금년에는 2백억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반면 자본수지 흑자는 1백80억달러에 그쳐 종합수지가 20억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금년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해외로 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정책당국에서 돈을 많이 풀어도 실제로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돈이 유입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결국 대외부문에서 돈이 빠져 나갈 유인을 개선하지 않고는 최근과같은 금융 및 외환시장의 악순환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이러한 악순환이 되풀이됨으로써 우리 경제내에서는 멕시코 위기에 대한 우려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학자인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금융위기 진단지표를 토대로 볼 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94년말 페소화 위기당시의 멕시코 상황까지 악화된 것은 아니다.(표 참조)그러나 대외부문의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멕시코사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따라서 최근 금융 및 외환시장에서의 혼란과 한국 내에서의 멕시코위기발생가능성(Korea's Mexico)에 대한 우려감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상수지적자를 개선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수출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민들의 저축증대를 통해 수입을 억제해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 외국자본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투자환경개선에 노력하되 유입된 자본에 의한 거품경제 형성을 막기 위해서는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도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뒤따라야할 것이다.특히 최근들어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국제적 신뢰성을 상실할 경우국내에 유입된 외국자본의 대량유출현상(bandwagon effect)이 발생하는 점을 중시하여 우리나라의 대외신뢰도를 유지하는데 노력해야한다. 이를 위해 경제정책의 우선순위와 선택된 정책의 일관성을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금융위기 발생에 대비해 인접국가간 또는국제금융기구와의 정책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이러한 노력들이 조화를 이룰 경우에만 지난해 이후 해외로의 돈의누수현상을 막을 수 있으며 국내 금융과 외환시장의 안정을 되찾을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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