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팽창! 외화예금 44억달러

지난 27일 미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이 62년 화폐개혁이후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환율은 장중한때 8백94원60전을 기록, 종전 최고치였던 85년10월25일의 8백93원40전을 넘어섰다.은행창구에서 개인이 살 때의 「체감환율」도 이미 9백원대를 달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잘 된다고 한다. 국제수지 개선효과도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요즘 오르는 환율은 수출에도,기업경영에도 별 도움이 안된다. 단순히 원화절하만으로는 구조적 불황을 이겨내기 어렵기 때문이다.반도체 철강 등 수출주력업종의 경우 장기침체기미를 보이고 있어원화절하의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특히 한보 삼미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거꾸러지면서 경기는 바닥이없는 침체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금융권도 극도로악화된 영업환경속에 선뜻 업계에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결과적으로 급등하는 환율은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입체적 불안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해 달러값의 상승이 수출기업의 의욕을 살리기보다는 「앞이 보이지 않는」 혼돈만을 가중시키고 있다.이런 상태에서 기업들은 수출대금을 외환시장에 풀지않고 사재기양상을 되풀이하고있다. 『일부에서는 환투기라고 비난도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미래가 불안한데 어떻게 달러를 내다팔 수 있겠느냐 』(D사 재무팀 딜러)는 분위기다.실제로 이들 기업들의 대다수는 다가오는 수입결제수요에 대비, 외화예금에 달러를 예치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이에따라 지난해말 14억9천만달러에 달했던 외화예금규모는 올들어1월말에 29억6천만달러로 늘어나더니 2월말엔 43억7천만달러로 껑충 뛰어올랐다. 불과 두달만에 세배가까이 늘어난 셈이다.3월들어 기업들의 원화자금사정이 빠듯해지면서 증가세가 완화되고있지만 외화예금잔고가 쌓이는 추세는 변함이 없다. 외환당국은 기업들의 외화예금을 투기성자금으로 간주, 억제를 시도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외화예금과 별도로 선물환거래를 이용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평균 1천4백만달러에 불과했던 선물환거래규모가 최근에는 1억달러 수준까지 늘었다.지난해 막대한 환차손을 입었던 한전 포철 삼성 현대 대우 선경 등대기업들이 주로 가세하고 있다. 이중 선경 대우 등 일부기업들은일찌감치 다량의 선물환을 매입해둠으로써 수십억원의 매매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외화예금을 갖고있고 선물환거래라도 할수 있는 기업은 「행복한」 편이다. 외채원리금상환 등으로 만성적인 외화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은 오르는 환율 그대로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야한다.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금융권이 극도로 위축되면서 가뜩이나 원화자금이 부족한데 엎친데 덮친 격이다. 특히 수입의존도가 높은 전기 전자 기계 비철금속 등의 경우 가격경쟁력의 하락으로 내수시장과 해외에서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다. 『환율 때문에 하룻밤새 수천만원이 날아간다』는 안산공단 S업체 K사장의 하소연은 그냥 흘려들을 성질이 아니다.중소기업의 고민은 또 있다. 대기업 종합상사등과 내국신용장을 체결하고 수입물품을 넘겨받는 중소기업들은 이중의 환차손에 시달리고 있다. 대기업들이 내국신용장체결시점과 물품인도시점간 발생한환차손을 고스란히 전가하는데다 결제대금도 전신환매수·매도율로챙겨가기 때문이다.한달에 환율이 15~20원이 오르는 판이니 새로운 원가부담이 아닐수 없다. 그래도 「혹시 거래선을 끊으면 어쩌나」하는 걱정때문에대놓고 항변도 못하는 처지다.결국 요즘 기업들의 외환사정은 전형적인 「부익부 빈익빈」양상이다. 일부대기업들이 남아도는 달러를 외화예금에 쌓아두고 선물환을 주고받으면서 「재미」를 보고있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당일 수입결제를 막기에도 버겁다.그러나 대기업이라고 언제까지 편안할 수만은 없다. 대부분 상당한외화부채를 지고 있기 때문에 환율상승에 따른 상환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60억달러 안팎의 외채를 안고있는 삼성전자는 국내최고의 제조업체답게 환리스크를 헤지하는데 금리스왑 통화스왑 등의 고급기술을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올해도 수천억원의 환차손을 감수해야할것 같다』는 딜링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사정이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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