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에서 생동하는 시대로 탈바꿈

아주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와 희미한 조명 아래 은은한 빛을 발하는 각종 유물들. 여기에다 왠지 딱딱해 보이는 안내 직원들. 박물관하면 흔히 아주 근엄한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동적이라기보다는 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 까닭이다. 그래서 관람객들입장에서도 조용히 와서 줄지어 돌아다니며 유리관에 갇힌 유물을둘러보는 정도였다. 박물관 특유의 위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뭔가궁금한 것이 있어도 물어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박물관은 어딘지모르게 사람들을 접근하기 힘들게 하는 특유의 면모를 갖고 있었다. 부담없이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그러나 박물관의 이런 전통적인 모습이 차츰 바뀌어 가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새로운 첨단제품이 출현하면서 박물관에도 봄기운을느끼게 하는 새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부 기업박물관에서는 영업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마케팅 개념을 도입,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치며 관람객 유치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또 관람객들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베푼다는 차원에서 관람도우미를 배치, 친절하게 안내하는 박물관도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다양한 행사를펼쳐 관람객들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모습도 엿보인다.▶ 첨단장비·관람도우미 무장이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곳은 경기도 용인에 자리잡고 있는 신세계상업사박물관이다. 개관 3년째를 맞고 있는 상업사박물관은 첨단장비를 활용, 다양한 전시효과를 선사할 뿐만 아니라 관람객 유치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특히 2개의 전시실에 마련된 첨단기능의 시설물은 마치 정보통신 제품 전시장을 찾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전시실 한쪽 벽에 거대한 멀티비전이 설치돼 있어 전시유물과 관련된 생생한 화면을 제공하고곳곳에 컴퓨터가 놓여 있어 충실한 해설자 역할을 하고 있다. 또주요 유물이 전시돼 있는 곳의 바로 위 천장에는 첨단 마이크시설이 부착돼 있다. 관람객이 그 앞에 서면 다양한 정보가 흘러나오는이 시스템은 안내자나 안내문이 필요없을 정도로 해당 유물에 대해자세하게 설명해준다.상업사박물관은 관람객을 모으는데도 힘을 쏟고 있다.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관람객을 찾아나서고 있다. 박물관 바로 옆에 유통연수원을 갖고 있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유통연수원을찾는 전국의 유통회사와 연계, 강연이나 박물관 관람 등 상업사와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때로는 박물관 관계자가 직접 연수원에 나가 강의를 한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때는 교사들을 초청해 행사를 갖기도 한다. 이 박물관 배봉균학예실장은 『박물관이 단순히 뭔가를 보여주는 시대는 끝났다』며 『이제는 관람객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이 요청된다』고 설명했다.풀무원이 운영하는 김치박물관도 아주 독특한 활동을 많이 펼치고있다. 지난 86년 김치의 문화적 측면을 조사 연구하여 이를 알리고자 설립된 이 박물관은 최근 들어 다양한 김치 관련 행사를 개최,눈길을 끌고 있다. 더욱이 김치박물관은 전시에만 머무르지 않고여러가지 사회교육 활동을 전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특히 살아있는 박물관이 되고자 하는 취지에서 사회교육프로그램의하나로 문을 연 박물관대학은 요즘 절정의 인기를 누리며 자리가모자랄 정도로 수강생이 몰려들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시작한 어린이김치교실도 예상을 웃도는 성과를 올리며 성공리에 운영되고 있다. 이밖에 김치박물관은 얼마전에는 향토김치를 조사한 후 이를영상에 담아 보급하는 열성을 보였고, 오는 여름방학에는 가족김치담그기대회도 개최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방배동에 위치한 서울디자인박물관은 관람도우미를 두고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부엌용가구 전문업체로 유명한 (주)한샘이94년 세워 운영하고 있는 이 박물관은 이론적으로 탄탄하게 무장한전속 여직원을 정문 입구에 배치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관람도우미는 누구든 요청만 하면 즉석에서 박물관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소개하고 전시품에 대해서도 아주 상세하게 얘기해 준다. 디자인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쉽다. 도우미 오윤주씨는 『디자인전공 학생이나 기업체의 디자인 파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며 『앞으로는일반인들도 많이 찾아와서 디자인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지난 79년 설립돼 올해로 개관 18년째를 맞고 있는 태평양박물관은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화장품전문 박물관으로유명한 이곳은 특히 1년에 2~3 차례쯤 전국을 돌며 보관중인 유물을 선보이고 있다. 전국을 무대로 직접 관람객들 곁으로 찾아가고있는 셈이다.▶ 컴퓨터가 충실한 해설자역 담당또 최근에는 전시무대를 국내를 벗어나 현해탄 건너 일본까지 확대하고 있다.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에게 우리민족의 화장사를 직접 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일본 오이타현 향박물관에 한국화장의 역사자료(화장품과 옹기류)를 제공하기도 했다.이밖에 다른 기업박물관들도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농업박물관이 관람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첨단장비를도입했고 피어리스아미박물관은 예약제를 실시중이다. 미리 충실하게 준비해 관람객들에게 제대로 된 박물관을 보여주자는 의도에서다.아울러 피어리스측은 박물관을 매장과 연계해 자사의 제품홍보도톡톡히 하고 있다. 박물관 주변에 매장을 마련해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둘러보면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살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발한 판촉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또 삼성출판박물관은 정년퇴직한 전직 교사 출신을 임시직으로 고용해 도우미로 활용하고 있다.기업박물관에 변화의 기운이 몰아치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기업들이 박물관을 기업이미지 제고의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방위 홍보시대를 맞아 기업 분위기에 딱 들어맞는 전문박물관을 내세워 기업을효과적으로 알리자는 의도다. 전시행사를 활발하게 열거나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박물관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는 것도따지고 보면 이런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또 하나 지적할 수있는 것은 나날이 변해만 가는 사회적인 분위기다. 관람객들의 기호가 바뀌어가고 기업들 사이에 박물관도 이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식이 지배적이라 새롭게 변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이용섭 태평양박물관 부관장은 『관람객이 찾지 않는 기업박물관은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좀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박물관의 변신은 어느모로 보나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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