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양산하는 기름진 문화 일품

대기업이 골리앗이라면 벤처기업은 다윗. 다가오는 21세기는 바야흐로 「다윗의 꾀가 골리앗의 덩치를 넘어뜨리는 시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경제발전의 주도적 위치를 벤처기업이 담당하게 되리란 얘기다. 세계 각국 정부가 벤처기업에 대해 그 무엇보다 큰 기대를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벤처는 그러나 후발개도국들이 집중투자에 의해 키운 자동차나 철강산업과 질적으로 다르다. 큰 규모는 자동차나 철강산업의 실력을나타내줬지만 벤처기업에는 거추장스런 비게덩어리다. 전자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일으킬 수 있는 산업이라면 후자는 아무리 비용을 들여도 창의적인 두뇌가 꿈틀거리지 않으면 안된다. 새로운접근방식이 필요한 것이다.벤처육성을 위한 올바른 접근방식,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이바로 실리콘밸리다. 하루가 멀다하고 많은 벤처기업들이 내일의 「빌 게이츠」를 꿈꾸며 태어나는 곳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벤처캐피털도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아 사냥에 나선다. 지난해 실리콘밸리에 흘러든 벤처캐피털이 22억5천만달러. 세계 총 벤처캐피털의 6분의 1에 해당되는 규모다. 이들 자금이 놀고 있을리 없으므로 벤처캐피털의 규모는 곧 벤처기업이 발흥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배신’이 용서되는 유일한 공간과연 그 요인이 무엇일까. 양질의 노동력 벤처캐피털에 대한 용이한 접근, 효과적인 산·학협동시스템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올바른 지적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리콘밸리의 독특한 문화다. 벤처기업이 비온뒤 죽순 생겨나듯 일어날 수 있는 나름의 문화가 있기에 「실리콘밸리언」이란 정형이 탄생한다.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가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여진다. 기업의 파산이 일상사다. 그렇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곧 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두가 수긍하기 때문이다. 현재 인터넷관련사업을 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이 얼마전에 맞이한 파산을 딛고 새출발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실리콘밸리가 과거의 실수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 곳인지 알수있다.또 실리콘밸리는 지구상에서 「배신」이 용서되는 유일한 공간일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동업자가 회사를 박차고 나가 바로 옆에서새로운 벤처기업을 세운다해도 이를 비난하지 않는다. 경쟁업체가직원을 빼가는 일까지도 부도덕한 것으로 매도하지 않는다. 가장간수하기 어려운 것이 직원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실제로 인텔을 포함한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내로라하는 벤처기업들이 이러한배신을 통해서 탄생하고 성장했다.다양성과 개방성도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만드는 한 요인이다. 정해진 틀과 규칙이 없고 피부색깔과 성(性)을 구별하는 일마저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무한한 창의력과 새로운 기술만 있으면 언제든지오케이다.독특한 문화적 공간에서 뿌리를 내린 벤처기업들, 그들은 본격적으로 자양분을 필요로 한다. 그 자양분을 공급하는 곳이 나스닥(미국장외시장)이다. 「인큐베이터」(신생아실)로 불리는 실리콘밸리에서 걸음마를 배운 벤처기업들은 나스닥을 통해 기업으로서 제모습을 갖출 수 있다. 나스닥은 미국벤처기업의 경이적인 성장을가져온 제도적이고 실질적인 비결이다. 이것을 본뜬 것이 유럽의에스닥, 한국의 코스닥이지만 나스닥에는 크게 못미치고 있다.얼마나 나스닥이 벤처기업의 보고가 되고 있는가는 이곳에 상장된회사이름을 보면 알수 있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델컴퓨터선마이크로시스템즈 오라클 US 로보틱스 넷스케이프 등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그 이름을 한 두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정보통신분야의회사들이 나스닥을 장식하고 있다. 이들 회사의 주식은 매매대금순위에서 나스닥의 10위권안에 드는 인기종목들이다.나스닥은 지난 71년 미국 증권업협회에서 「우수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자금을 필요로 하는 신흥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다.나스닥에는 지난해말 현재 5천3백개가 넘는 기업이 주식을 상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커뮤니케이션 컴퓨터 데이타프로세싱서비스등정보통신분야가 1천1백50개를 넘는다. 시가총액에서는 전체의45%정도를 정보통신업체들이 차지한다.나스닥의 공(功)은 벤처기업에 문호를 열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 있다. 이는 나스닥이 뉴욕증권거래소에비해 현저히 낮은 주식공개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뉴욕거래소는 주식시가총액이 1천8백만달러 이상으로 연간수입 2백50만달러 이상을 3년연속 유지해야 한다는 공개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대학을 무대로 NPO 활동 활발이같은 기준은 결국 경영상태가 안정된 대기업만 상장시키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나스닥에서는 그 기준을 시가총액 3백만달러 순익 40만달러로 하고 있다. 또 나스닥이 갖고 있는새끼시장인 「스몰캡」의 기준은 더 낮다. 시가총액 1백만달러에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회사도 등록을 가능하게 한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등 창고에서 출발한 젊은 벤처기업들의 급성장은 나스닥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예를들어 마이크로소프트는 86년 기업공개직후 주식가격이 1달러를약간 넘는데 지나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는 1백20달러 안팎으로 부풀려졌다. 「창고기업」이 불과 10여년만에 IBM정도의 시가총액을갖게 된 것이다. 제2, 제3의 마이크로소프트를 노린 젊은 벤처가끊이지 않는 것도 이같은 성공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나스닥에 상장된 회사에 대해서는 투자가들도 현재의 매출액이나이익 자산가치 등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평가기준은 「10년후」에회사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하는 장래성이다. 그 단적인 예가 넷스케이프의 성공담이다. 넷스케이프는 인터넷접속후 처음으로 보게되는 브라우저(내비게이터)분야에서 세계최정상의 기업이다. 이회사는 설립된 지 불과 1년만에 나스닥에 상장됐다. 이때 이 회사주식이 평가의 대상이 될수 있었던 것은 그 이름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브라우저 때문이었다. 개발자는 아직 대학생이었던마크 앤드리센으로 그는 이미 세계최초로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는브라우저인 모자이크를 만들었던 인물이다. 모자이크의 개발은 그전까지 학술용이었던 인터넷을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를 몰고왔다. 사람들은 앤드리센이 새로 만든 브라우저가있기 때문에 넷스케이프의 주식을 샀던 것이다.실리콘밸리의 매력을 배증시키는 것중 하나는 대학이다. 특히 그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 스탠퍼드대학은 교내분위기가 회사창업 등에 아무런 반감도 생겨나지 않도록 형성돼 있다. 교수가 연구원에게 기업설립을 추천하기도 하고 스스로 비즈니스와 깊숙한 연관을맺는다. 벤처캐피털과 대학의 연구진 벤처창업의 의욕을 가지고 있는 엔지니어 등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NPO(비수익단체)들이 캠퍼스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회원제로 기업가 개인투자가 엔지니어 등이 가입, 서로 필요한 정보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투철한 비즈니스마인드를 가지고 거액을 움직이는 벤처캐피털외에 이처럼 대학을 무대로 활동하는 NPO들의 존재가 미국의 벤처기업들을 「파워풀」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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