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세련미' 접목, 변신중

울산시는 흔히 현대시로 불린다. 「현대왕국」으로 통하기도 한다.도시 전체에 현대의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까닭이다. 어딜 가든 현대가족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눈에 익숙한 그룹로고가 도시곳곳에 우뚝 솟아 있다. 인구비를 보더라도 전체 1백만명 가운데약 60만명이 현대임직원 및 협력사 가족이다. 넓게 보아 전체 시민의 60% 가량이 현대가족인 셈이다. 이런 까닭에 몇년전 외국의 한언론이 울산을 소개하면서 현대시로 잘못 표기하는 웃지못할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울산이 현대의 아성으로 불리는 데에는 핵심계열사들이 밀접해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현대중공업, 현대정공 등 13개의 핵심계열사 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현대중공업은아예 울산에 본사를 두고 있다. 프로축구의 강자인 현대 호랑이축구단도 울산이 본거지다. 현대를 제대로 보려면 울산에 가보라는말이 나도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다시 뛰는 현대의 모습 역시 울산 현지를 둘러보면 더욱 생생하게 와닿는 느낌이다.◆ 남은 음식물 줄이기 조기출근제 등 적극 실천지난 5월6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옆 사원식당. 줄지어 서서식사를 기다리는 직원들 사이로 잔반을 남기지 말자는 글귀가 눈에들어왔다. 예전에는 볼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특히 큼지막한 글씨로 식당내부 한켠에 쓰여 있어 누구든 쉽게 볼수 있었다. 회사측의의도는 밥이나 반찬을 남기는 것도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인 까닭에 최대한 아끼자는 것. 이러한 회사측의 노력에 호응이라도 하듯직원들은 자신이 먹을 만큼만 가져가는 미덕을 발휘하고 있었다.밥이나 반찬을 절약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는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다. 중공업은 특히 사내 46개 식당 가운데 26개 식당의 구조를 변경하여 자율배식체제로 바꾸는 등 음식물 쓰레기를 반으로 줄이기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회사측은 한끼 식사에 쌀 80가마가 들어가는 현 상황에서 매일 2.6톤씩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로 한해 평균11억원 가까운 돈이 낭비되고 있다며 잔반을 절반으로 줄이면 연간4억원의 절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남는 음식물 줄이기 외에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현대가족들의 실천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조기출근제 역시 그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하다. 종전에는 작업시작 시간(오전 8시) 10분전까지 출근, 체조를 하고 8시 정각에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것을올해 초부터 각 계열사별로 7시30분쯤 나와 간단한 체조를 마친 후작업시작 10분전까지 작업장에 도착해 일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적어도 10분 이상 빨라진 셈이다. 직원들은 출근이빨라져 몸은 고되지만 작업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어 마음만은가뿐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다 과장급 이상 사원들의 경우 격주 토요일근무제를 반납하고 토요일에도 정상적으로 회사에나와 일을 하고 있다.사무용품 아껴쓰기는 이제 기본이다. 회사별로 약간 차이는 있지만사무용품비를 대략 30% 절감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실천중이다. 예를 들면 볼펜의 경우 다 쓴 후에도 심을 갈아 끼우는 방법으로 물품을 아끼고 있다. 또 전산용품과 종이도 최대한 아낀다는 방침 아래 직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다행이 직원들 역시 회사측의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적극 동참하는 분위기다. 그런가 하면 임직원들의 명함제작에도 재생용지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는 일반 직원은 물론 공장장(부사장) 명함도 재생용지로 만들어줄 정도다. 정공의 한 관계자는 『창사 이래 최대의 절약작전을 전개하고 있다』며 『엘리베이터도 가동을 중단시킨 상태』라고설명했다. 중공업 문화부의 직원 역시 『비용절감 차원에서 부서경비를 50% 가량 줄인 상태에서 꾸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불황을 타파하기 위해 현장직원들이 주로 물품을 아끼고 시간을 철저히 준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경영진은 주로 직원들의기본마인드 재구축과 체질개선을 통해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고있다. 위기는 한편으로 기회가 될수 있다는 판단 아래 경쟁력을 한단계 높이는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업군을 부분적으로 조정하고 해외진출을 적극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요즘 현대가 비중을 두고 있는 대리나 혹은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정신재무장교육도 마찬가지다. 주제는 역시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로 전문강사를 초빙해 다시 뛰자는 내용의 강연을 하고 간부사원들에게 의지를 다시 한번 다질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적지 않은 나이의 간부사원들을인근 해병대로 보내 강훈련을 시키고 있다. 회사측은 경쟁시대를살아가는데 필요한 정신력을 배양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현대자동차는 교육 외에 아예 과장급 이상 사무직직원을일시적으로 영업현장에 배치, 현장분위기를 익히도록 독려하고 있다. 회사측은 중간간부의 현장배치가 궁극적으로는 직원들의 일체감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체질개선은 좀더 심각하다. 물론 대략적인 밑그림은 그려진 상태다. 자동차경기 부진으로 위기를 느끼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수출비중을 점차 높여가고 있다. 내수시장에 거의 한계가 왔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수용 라인을 줄이는 대신 수출전용라인을 확충하고 있고 전체적인 영업비중도 수출쪽에 두고 있다.회사측은 올해의 경우 내수와 수출의 균형상태에서 벗어나 6대 4정도로 수출쪽의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장가동도신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 4월 한달 잔업을 줄였다가 최근에다시 재고가 크게 줄자 정상화시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앞으로도 상황을 보아가며 조절할 계획이다.조선분야가 주력인 현대중공업은 요즘 그 비중을 낮추어 가고 있다. 전체매출에서 조선사업본부가 차지하는 비중을 지금의 45%에서2000년대에는 20% 수준까지 끌어내릴 방침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터빈 발전기 공장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명실상부한 중공업메이커로서 입지를 다지고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한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회사측은 발전설비사업 진출은 제2의 도약을 위한 출발이라며 70년대초 조선신화를 이루며 중화학공업을 선도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는 기계신화를 이룩하여 첨단정밀기계산업을 꽃피우겠다고 설명한다. 중공업측은 장차 부가가치가 아주 높은발전설비 분야를 조선과 대등한 수준으로 키울 예정이다. 또 기존의 조선도 각 도크에 전문생산라인을 만들어 생산성 향상에 힘을기울이고 있다.현대정공이나 다른 계열사들의 움직임도 현대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맥을 같이 한다. 특히 그룹의 첨병역을 자임하고 있는 정공은 갤로퍼의 성공을 기반으로 신차량개발에 박차는 가하는 한편으로 자기부상열차 등 고속전철 분야에 힘을 쏟고 있다. 반면 아직 확정은되지 않았지만 변속기사업은 현대우주항공에 넘기는 방안을 심도있게 검토중이다. 종합기계회사로 거듭난다는 것이 정공 경영진의 당면목표다.◆ 공장들, 세련되고 청결하게 변신현대의 변화바람은 나날이 세련미를 더해가는 공장 분위기에서도엿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 문화부 이경우 대리는 『최근 들어 공장의 전체적인 모습이 매우 근사해지고 있다』며 『현대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한눈으로 볼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불같은 추진력에 작은 부분에도 두루 배려하는 섬세함을 더해가고 있다는 얘기다.실제로 울산지역 현대 계열사들의 공장 구석구석을 둘러보면 조경이 아주 산뜻하다는 점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환경개선작업을 하고 공장내부도 말끔하게 단장해 청결하다는 느낌이 절로든다. 휴게실 같은 휴식공간은 아예 고급 카페를 연상시킬 만큼 분위기가 정결하다. 치장에 돈을 많이 들였다기보다 여기저기서 정성이 배어나는 느낌이다.울산에 거점을 두고 있는 현대 계열사에는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도 아랑곳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지금 상태에서 한단계 도약하느냐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느냐 하는 기로에서 허리끈을바짝 조이는 모습이 역력하다. 경영을 맡고 있는 최고경영진은 물론이고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까지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자고 다짐하고 있다.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과 노조원들도 경제의 어려움을 피부로 실감한다며 위기극복에 동참하겠다는 의지가 역력하다.노조 집행부 역시 자신들의 주장을 적극 자제하는 분위기다.가치경영을 목표로 다시 뛰는 현대, 7월로 예정돼 있는 광역시 승격을 계기로 거듭 태어나려는 공업도시 울산의 내일의 모습이 기대된다.★ 미니 인터뷰 / 한상준 현대자동차 부사장"고비용 저효율 구조 개선에 주력"▶ 앞으로의 자동차경기 전망은.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불황이 당분간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의 위기극복 전략은.전임직원이 하나가 돼 노력하는 것이다. 특히 원리원칙을 철저히지켜 신바람나는 직장을 만들 생각이다. 또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개선하는 데도 최대한 노력할 방침이다.▶ 내수부진에 따른 재고문제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전사원이 위기의식을 갖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전사원 판매 캠페인도 벌이고 있는데 효과가 좋다. 엑센트와 티뷰론을 중심으로 수출라인도 늘리고 있다. 앞으로는 수출만이 살 길이다.▶ 올해의 임금협상이나 단체협상에 대한 전망은.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사 모두 지금이 위기임을 공감하고 있다.★ 미니인터뷰 / 조충휘 현대중공업 부사장"조선비중 20%로 축소"▶ 중공업의 핵심인 조선경기는 어떤가.94년부터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올해 들어서도 풀릴 기미는 보이지않고 있다. 공급과잉에다 환율이 라이벌인 일본에 비해 결정적으로불리하다. 또 해운불황도 한몫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 회복될 것으로 보는가.변수가 많아 속단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 아래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생존경쟁시대다.▶ 조선부문에 대한 현대중공업의 전략은.우리는 장기적으로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조선의 비중을 크게 낮출생각이다. 2000년쯤에는 20%까지 줄일 계획이다. 대신 조선의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조선분야를 전망한다면.한일경쟁시대에서 최근 일본 우위로 돌아섰다. 그러나 2000년초가되면 일본이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탈락하고 다시 한국이 선두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빠져 나간 자리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중국이 채울 것이다.★ 미니 인터뷰 / 김무일 현대정공 전무"RV시장 강화하겠다"▶ 현장에서 보기에 국내 경기는 언제쯤 풀릴 것으로 보는가.짧으면 내년초, 길게 보아도 내년 하반기에는 확실히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정공도 올해 들어 상황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회사의 전반적인 상황은.정공도 불황에서 예외는 아니다. 다만 갤로퍼가 선전하고 있어 위안으로 삼고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역시 판매다. 공작기계 등 대부분의 제품들이 경기를 타는 까닭에적잖이 고전하고 있 다. 또 하나는 인건비 상승에 따른 국제경쟁력 약화다. 물론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기업 전체의 고민거리라고 생각한다.▶ 불황을 이기기 위한 방안은.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RV(레저용차량) 시장을 강화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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