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의식개선 여지 아직도 많다

「짜고 치는 고스톱」. 기업들에 대한 공인회계사들의 외부감사를두고 하는 말이다. 기업 경영평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생산해야할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회계감사보고서를 만든다는얘기다.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외부감사의 신뢰성을 애초에 기대할수 없다. 양심있는 공인회계사들은 자신이 감사한 기업이 부도날까봐 전전긍긍하는 형국이다. 물론 모든 감사가 그렇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이처럼 감사풍토가 혼탁한 것은 「자유수임제」 때문이다. 감사를받아야 할 기업들 스스로가 감사인을 선정하는 풍토에서는 공인회계사들이 소신있고 객관적인 감사를 실시할 수 없다. 회계법인들도치열한 영업을 통해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외부감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솔직히 사정을 얘기하고 눈감아줄것을 요구하면 대부분의 공인회계사들은 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일수밖에 없다. 자신의 파트너가 어렵게 따온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자유수임제’ 제도보완 필요기업경영자들은 기업의 경영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감가상각비나 재고자산(매출원가)을 갖고 「장난치는 것」은 고전적인 방법이고 결산기말 매출밀어내기, 매출교환에 의한 뻥튀기, 계정 재분류 등 다양한 수법으로 이익과 외형을화려하게 꾸미려한다. 특히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기업일수록 금융거래가 복잡해 재무제표로 이를 지적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자동차업체는 제품판매가 부진하자 생산라인가동을 중지했다며관련 설비에 대한 감가 상각을 하지 않다가 증권감독원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미 설치된 고정자산은 사용여부에 관계없이 매년 일정분을 비용으로 처리해야 하지만 가동을 중지했다며 누락시킨 것이다.다음 회계연도에 금융기관에서 뭉칫돈을 끌어다 쓰고 싶을 경우 어음대여관련건을 계상하지 않는 방법으로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것을막는다. 지난해 한 중견 기업은 반기결산을 앞두고 보유주식을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으로 매각, 50억원의 「특별이익」을 가공하는변칙회계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상장사가 장부상 이익을 내기 위해 비상장계열사를 이용한 변칙회계 행위였다.이에따라 증권당국은 지난해 기업들의 회계투명성을 높이고 국제회계기준과 조화를 도모하기 위해 기업회계기준을 개정했다. 주목할점은 기업들의 이익조작가능성을 제거한 점이다. 「전기오류사항」을 지금까지는 당기손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에 계상토록 했으나 앞으로는 특별손익으로 계상토록해 당기손익에 반영토록 했다. 기업들은 법인세등 세금납부시점이 결산기와 다른 점을 이용해 편법으로 당기순이익을 적법하게 늘리는 사례가 많았다. 일부기업들은 세법과 회계기준을 교묘하게 이용해 실제보다순익을 과대계상하기 일쑤이다. 앞으로 이런 기업들은 당해연도의이익을 과대 계상할 경우 다음 회계연도에서 그만큼 이익규모가 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기업들의 연구개발투자비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계상연도부터 5년이내에 상각토록 하던 것을 계상연도부터 5년이내에 상각하되 장기간이 소요되는 거액의 연구개발비는 관련수익 실현시부터5년이내 상각이 가능하도록 바꿨다. 이밖에 보유 유가증권의 경우시가로 평가하도록 했다.특히 금융개혁위원회는 인적관계 계열사가 배제된 기존의 연결재무제표의 문제점을 개선해 기업집단 연결재무제표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계열사의 부실여부에 따라 대기업집단의 전반적인 대외신용도가재평가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결합재무제표는 기업집단의 자산, 부채의 현황, 매출액 및 손익상황, 자금흐름 등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또 계열기업상호간의 채권 채무,상호출자, 매출매입, 내부거래에 의한 미실현이익이 제거되어 해당기업집단의 정확한 모습을 볼수 있게 된다.선진시장에서 주식예탁증서(DR) 해외전환사채(CB)발행을 통해 저리의 자금을 조달해 쓰려는 우량기업들은 지금부터 회계라운드에 대비해야한다. 국내의 회계방식으로는 외국증시를 통해 자본을 조달하거나 외국기업과 인수합병때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지금까지는 핵심 우량기업들만이 증권을 발행해 왔으나 앞으로 다른기업들도 대규모투자를 하기 위해선 해외에서 직접 파이낸싱을 할수밖에 없다. 그러나 회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회계제도변경에도 기업들이앞으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변칙계상을 할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자유수임제도 아래서는 별다른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재경원은 외감법을 개정해 상장법인에 대해 3개 사업연도 단위로 감사인을 선임토록 했으나 감사보수 덤핑, 감사의견사전제시 등의 불합리한 수임경쟁이 사라질리 없기 때문이다.◆ 기업연구개발투자비 부담 줄여회계관련 법규는 바꾼다고 바꾸었지만 기업 회계법인등 시장참여자들의 의식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셈이다. 일부에서 회계제도변경의실효성에 부정적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회계사들은 현재의 감사여건상 꼼꼼한 실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입을 모은다. 자산규모가 5천억원인 회사를 감사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고작 4, 5일 정도이다. 열흘이상 실사를 해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감사를 4, 5명정도의 공인회계사들이 며칠만에 해치운다.자산규모가 적은 기업도 부도가능성만 없으면 경영자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고 있다고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공인회계사들은 말한다.회계전문가들은 이같은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한 재무정보를 토대로한 금융기관의 신용대출은 자리잡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동일한기업가치를 회계로 왜곡시키면 금융기관들의 대출리스크가 그만큼커지기 때문이다. 신용분석에 의한 대출이라는 금융관행이 정착되기 위해선 기업이 신뢰성있는 재무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소액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부실 변칙회계가 문제될 경우 정상적인 회사경영이 힘들게 된다. 소액투자자들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기업감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담보능력이 부족한 소규모기업일수록 외부감사를 통해 신뢰성있는재무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자산 60억원미만인 기업은 외부감사를 받지 않아도 돼 신용대출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주식투자자 보호를 위해선 상장기업에 대해서만이라도 배정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부실감사에 따른 파급효과가큰만큼 치밀한 감사를 위해선 배정제부활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젊은 공인회계사들 사이에 공감을 얻는 분위기이다.증권당국은 부분적인 법개정에 만족하지 말고 부실한 감사를 한 회계법인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는등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야한다. 제도 정비도 중요하지만 회계시장참여자들이 법이나 제도취지를 성실히 따를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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