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경쟁·비싼 경비로 '사면초가'

「두 얼굴의 사나이」. 한때 TV에 인기리에 방영됐던 외화제목이다. 관광산업을 이야기할 때면 나오는 여행업계에 대한 말이기도하다. 하나의 얼굴은 지난 89년 해외여행자유화이후 대대적인 선전으로 국민들의 해외여행을 부추겨 관광수지적자를 만들어내는 주범이라는 것. 또 다른 얼굴은 외국관광객을 보다 많이 유치해 퇴조하고 있는 국내관광산업을 일으켜 세워야 할 주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관광산업에서 여행사를 사령부에 비교하기도 한다. 각종 여행상품을 개발해 관광객들의 흡인력을 높이는 것부터 시작해 관광스케줄의 진행, 잠재적인 수요창출 등 모두 여행사가 도맡아 해내는일이다. 따라서 여행사는 관광산업의 가장 전면에 나서는 부분이기도 하다.그러나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관광수지적자를 이야기할 때면으레 거론되는 인바운드업계(외국관광객유치를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는 사령부는 커녕 초토화된 황무지의 모습이다. 대한여행사 외국인여행부의 김진희씨는 『올 인바운드시장은 지난해보다도 안 좋다』며 『(인바운드는)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가능한 업종이지만영업이나 경영능력이 없는 조그마한 업체들이 난립해 경쟁이 심해진데다 호텔비 등 여행경비가 비싸 한국관광을 꺼려 고전중』이라고 말했다. 높은 물가로 여행상품의 값이 비싸져 외국인들이 한국관광을 꺼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가세율 등 건의, 정부 외면실제로 국내여행경비는 동아시아국가중 가장 비싼 축에 들어간다.영국의 「아시아 익스피리언스지」사가 밝힌 동아시아국가들에 대한 여행상품가격(7박8일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1천2백파운드로 중국의 9백59파운드, 싱가포르의 7백99파운드, 인도네시아의 7백49파운드, 태국의 5백89파운드에 비해 월등히 비싼 것으로 나타나기도했다.비싼 호텔비로 국내여행업계가 고전하면서 호텔측에 호텔료 인하를건의하는 등 노력을 보이는 업체도 있다. 그러나 호텔료 인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H여행사의 한 관계자는 『국내 호텔료 상승을주도하는 L호텔측에 관광객유인을 위해 가격인하를 건의하기도 했지만 인건비 건물유지비 등의 이유로 먹혀들지 않았다』며 『호텔숙박객이라면 당연히 먹게되는 아침식사 한끼의 값이 1만8천원을넘는데 누가 호텔을 찾겠느냐』고 말했다.인바운드업계의 경영난은 가장 큰 관광시장인 일본에 진출한 지사나 사무소의 철수까지 거론됐을 정도다. 일본에 진출한 약 80여개의 국내 인바운드여행사들이 올초에 열린 한일관광진흥협의회에서일본지사철수를 공식거론하기도 했다.인바운드업계가 이렇게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전문성 없는 영세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시장질서를 교란시키고 외국인에게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6월말 4천3백15개였던 여행업체는 지난해말 4천7백30개로 늘었다. 6개월 사이에 4백15개업체가 늘어났을 정도다. 지난 4월1일자전국 여행업체는 국내여행만을 하는 국내여행업체 2천4백31개, 해외여행업만 전문으로 하는 국외여행업체 2천94개, 국내외 모두 영업을 하는 일반여행업체가 3백26개 등 모두 4천8백51개에 이른다.4개월 사이에 1백21개업체가 증가한 것이다.난립한 영세여행업체들은 다른 여행사상품의 모방은 물론 저가덤핑도 마다않으면서 우량업체에까지 피해를 주기도 한다. 『6년전부터연2회에 걸쳐 약 1천만원의 비용을 투자하여 일본여행사의 조언 등을 받아들이면서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는 한진관광 국제여행1팀의 한영덕씨. 그는 『신상품을 만들면곧 다른 여행사에서 그 상품을 모방해 가격경쟁으로 나가는 까닭에 상품개발이 무용지물이 되지만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과다광고·모방상품까지 범람심지어 여행지 및 숙박장소의 임의변경, 가이드 부족과 자질부족,쇼핑과 팁 강요 등 저질적인 영업을 하는 업체도 있다는 것이 업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J관광의 경우 외국인에게 항공권을 판매한 뒤임의로 출발시간을 변경, 제주도여행을 무산시켜 관할관청으로부터경고조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행업체들에도 문제는 있다. 『한마디로 요즘 여행업계는 말 그대로 춥고 배고픈 때』라는 C여행사 황모씨는 『덤핑이나 출혈경쟁, 과다광고 등은 결국 여행상품으로 얻지못한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무리하게 쇼핑을 강요하거나 여행상품의 질을 떨어뜨리며 여행업체에 대한 나쁜 인식만 심어준다』고 말했다.여행상품과 마케팅대상을 일본 미국 대만 등에 한정시켜 놓고 영업을 전개해온 점도 고쳐져야 할 사안이다. 오사카와 도쿄에만도 국내관광업체가 약 40∼60여개가 진출해 있다는 업계추산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는 우리 관광산업이 이들의 움직임에 의해 좌우돼결과적으로 관광경쟁력의 하락을 가져오기 때문이다.조금만 돈벌이가 된다면 너도나도 아웃바운드로 눈을 돌리는 것도문제다. 현재 업계에서 추산하는 인바운드업체수는 『전체여행업체의 약 2%에 불과한 90∼1백여개밖에 안된다』는 것이 일반여행업협회 박상윤씨의 말이다. 많은 여행사가 있지만 그만큼 인바운드를꺼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H사의 경우 4∼5년전만해도 인바운드가회사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바운드만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였으나 경영난으로 아웃바운드를 병행하고 있다. 덕분에인바운드부문은 급격히 줄어 지금은 아웃바운드가 먹여살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그만큼 관광적자의 주범이 되고 있다.그러나 아웃바운드라도 사정은 여의치 않다. 과도한 광고비용과 과당경쟁에 따른 출혈 때문이다. 여행업계 광고영업의 「빅 3」라는온누리·씨에프랑스·삼홍여행사의 경우 지난해 표준단가 기준으로약 2백여억원의 광고영업비를 지출한 것으로 업계에 알려져 있다.국내 여행업계 총광고비의 25%를 차지하는 금액이라는 것이 업계추산. 그만큼 내실없는 장사라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언론을 통해관광객을 모집하는 대다수의 여행업체에 적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행업계의 경영난으로 공동상품개발, 공동PR, 소규모 여행사간의 공동사무실운영 등으로 경영난을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국내여행업체들의 현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이다. 이러한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업계의 말이다. 여행업계의 가장 큰 문제라는 외래관광객에 대한 부가세 영세율 적용에 대해 업계의 건의가 계속 이뤄졌지만 아직 실현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매년 서울과 부산에서 해외여행을 주제로 한 국제관광전이 성대히 열리고 있으나 국내여행상품이나 관광지를 외국바이어들에 소개하는 관광교역전도 하나 없다. 일반여행업협회 김영수국장은 『일반여행업협회에서 정부측에 수차레 건의를 했지만 아직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고 씁쓰레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