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 아니면 춥다 '야하게 벗기'

예술 판정나면 관객 급감…고육지책으로 성인극 양성화 목소리도

「끈적끈적한 연극」, 「예술로 인정할 것인가, 외설로 인정할 것인가」, 「벗었습니다, 벗겼습니다」 동숭동 대학로 뒷골목에 어지럽게 나붙어 있는 한 공연물의 포스터. 소위 「뒷골목 연극」으로 불리는 저질외설공연들이 대학로 한켠에서 불황을 모른채 주머니를 두둑히 채우고 있다.지난 3월 17일 「속 마지막 시도」의 제작자(최성룡)와 연출자(김정철)가 공연음란죄로 구속된이후 노골적으로 벗는 연극은 외형상 다소 주춤한 상태. 얼마전까지만 해도 「황홀한 섹스」, 「가랭이 불나듯…」이란 낯뜨거운 문구와 나체사진의 포스터가 대학로벽을 온통 뒤덮은채 「콜렉터/광적인 사랑」, 「너만 봐(남의 것도 좋아하세요)」, 「엑스타시」, 「파리섹스」, 「셀프서비스」등 노골적인 제목의 연극들이 5~6곳에서 성행했다. 요즘은 상스러운 욕설과 음담패설로 가득한 저질코미디극이 대신해서 그 자리를채우고 있다. 그러나 수요가 있고 돈벌이가 되는 한 「벗는 연극」은 조만간 허리를 빳빳이 들 것이라는게 중론.89년 1월 공연윤리위원회의 대본 사전심의제도가 철폐되면서부터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연극들이 무대에 올랐다. 92~93년 9개월간 명동 엘칸토 소극장에서 장기공연됐던 「북회귀선」, 95년의 「다카포」 등이 대표적 작품.◆ 국내 제대로된 라이브쇼·포르노영화관 없어대학로에 저질외설연극이 본격적으로 상륙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조금씩 독버섯처럼 퍼지던 외설연극은 94년 「미란다」를 제작공연한 극단 「포스트」의 대표(최명호)가 사법처리되면서 사회이슈로 떠올랐다. 연극계가 95년 3월 대학로 정화추진위원회를발족하고 저질연극추방캠페인을 펼치는 등 「외설연극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미란다」파문이후 저질연극은 더욱 급속도로 확산됐다.외설연극이 대학로에서 절정을 이룬 것은 지난해 중순경. 존 파울스원작 「콜렉터」가 「미란다」, 「콜렉터/광적인 사랑」, 「채집당한 여자」, 「어떤 고백」 등 각기 다른 이름으로 4개 공연장에동시에 오르는 우스꽝스런 사태가 벌어졌다. 이중 저질외설연극에도전장을 내며 극단 까망의 이용우씨가 만들었던 「어떤 고백」은한 일간지에 「외설」이 아닌 「예술」이란 비교기사가 나간후 관객이 급격히 감소, 도중에 막을 내려야만 했다.연극협회는 올1월 뮤지컬 「바디숍」(극단 대중)을 「이달의 에로티시즘연극」으로 선정, 저질연극으로 몰리는 관객의 발길을 붙잡고자 했다. 「어차피 선정적인 연극을 보고자 하는 욕구는 존재하고 이왕이면 작품성있는 선정연극을 추천해 관객들을 흡수하겠다」는 것이 연극협회의 의도였다. 그러나 특정연극 홍보, 감정적인대응, 외설과 예술성에 대한 기준모호 등의 논란을 빚으며 흐지부지 끝나 버렸다. 연극협회를 중심으로 한 연극인들이 사법처리라는강공을 불사하며 「외설연극」을 뿌리뽑기 위해 애쓰지만 물리적수단에 의해 이들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저질외설연극이 번성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삐끼(뒷골목연극인들은 홍보요원이라고 부른다)들이 「순진한 관객」을 유혹하는 탓도있지만 어쨌든 수요가 있고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연극이 관객부족으로 평일 낮공연을 올리지 못하는데 반해 이들은 평일 5회,주말 6회의 공연을 올린다. 요즘은 관객이 다소 줄었다고 하지만여전히 주말마다 매진이다. 저질외설연극에 대항, 예술적인 에로연극을 표방하며 「나의 엑스와이프」를 제작한 최강지씨(극단 판 대표)는 『뒷골목연극은 외설도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야하다』, 『싸게 보여준다』고 관객들을 속여 실제로는 전혀 에로틱하지도 않고 지루한 극을 강요한다는 것. 그는 또 『우리나라에 제대로된 라이브쇼나 포르노영화관이 없기 때문에 섣부른 저질극이 판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업극과 비상업극을 구별, 차라리 외설적인 성인극을 양성화하자는 의견도 「벗는 연극」에 대한 수요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현실을 인정한 연극계의 고육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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