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아래' 매춘 연구, 학계의 '이단자'

대학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존경받는 직업이다. 그들은 항상 지적세계의 중심에 서있으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격조높은 이론과 화두를 제공한다. 그들의 주제는 형이상학이고 「배꼽아래」 형이하학적인 이야기는 과감히 거부한다.서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종성교수(44)는 이런 거룩한 지식인 세계의 이단자에 속한다. 그의 학문적 탐구대상은 고상한 지적개념이아닌 우리사회의 질펀하고 황폐한 현실인 매춘이다. 『대학교수가뭐 할 것 없어 매춘을 연구하느냐』는 주위의 비아냥을 무릅쓰고그는 지난 89년부터 매춘에 대해 정치사회학적 렌즈를 들이대 (94년발간) (96년발간)등 두권의 저서를세상에 내놓았다.박교수에 있어서 이 두권의 책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먼저 이두권의 책은 세상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포장된 형이상학적인 학문세계에 대한 그의 반성문이라 할수 있다. 은연중 배어있었던 지적허영심을 깨고 세상을 다시 보게 된 것도 이 책 출간을통해서였다. 『보고도 못본체, 하고도 안한체, 알고도 모른체하는 것이 매춘입니다. 이런 이중적 잣대가 우리 사회에 지속되는한 매춘은 해결될수 없습니다.』◆ 이중적 잣대로는 문제 해결안돼박교수는 매춘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거의 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매춘을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지 우리 모두 진지하게생각할 때가 지금이라고 말한다. 감추어 둘 것이 아니라 공론화과정을 통해 세상밖으로 끌어내 문제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매춘에 대한 탐사를 앞으로 계속해 우리사회의 위선적 모습에 경종을 울려 나갈 생각이다.매춘에 관해 나름대로 관(觀)을 갖기 앞서 그는 혁명이론에 심취한평범한 정치학도에 불과했다. 캠퍼스에 중앙정보부원이 상주하고어디 한군데서 울분을 토로할 수 없었던 70년대말 대학학창시절(한양대 정치외교학과)을 보냈던 그는 학문적 갈증을 채우기 위해77년 3월 서울대대학원 정치학과에 입학했다.그러나 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암울해져만 갔다. 박정희정권의 집권말기현상은 20대인 그를 더욱 숨막히게 했다. 비상구는 군입대밖에 없었다. 전방사단과 국방부직할대에서 소정의 군복무를 마친 그는 80년 3월 다시 캠퍼스로 돌아왔다.『저희 세대가 다 그렇지만 유난히 집단행동과 인연이 많았습니다.초등학교 1학년때 덕수궁에 소풍갔다 4·19혁명의 단초가 된4·18고려대생 의거를 목격했고 대학시절 또한 무수한 시위를 목격하며 보내야 했습니다.』 박교수는 대학원에 복학한 뒤 가슴을 그토록 짓눌렀던 「박정희 신드롬」이 사라지면서 사회는 무언가 변화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꿈은 신기루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현대사의 물결을 역류시킨 전두환정권이 들어선 뒤 그는 거의 독학하다시피하며 혁명이론서를 탐독했다. 무기력하게 20대를 보낸 자신에게 참회하는 것은 이길밖에없었기 때문이다.82년2월 혁명을 주제로 석사학위논문을 쓴 뒤 그는 지도교수인 안청시교수의 추천으로 이듬해 3월 충남공주사범대 국민윤리과 교수로 부임, 고상한 지식인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교수생활은 그리순탄치를 못했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강의시간에 혁명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할 때가 많았다. 이런 강의내용은 학생들을 통해 즉각 학교당국 및 외부기관에 알려졌고 그는 공주사범대 부임 6개월만에보따리를 싸야만 했다. 『유학을 갈까도 생각했으나 은근히 오기가 생기더군요.』 서울대정치학과 박사과정에 다시 등록한 뒤 공부를 계속했다. 이때가84년 봄. 박사과정입학과 동시에 행운도 찾아왔다. 청주사범대(현서원대학교) 국민윤리과에 자리가 났던 것이다. 강의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90년 8월 무사히 박사과정을 마쳤다. 박사학위논문이 「현대혁명이론의 연구」라는 것에서 알수 있듯 이때까지 학문적 주제는 혁명이었다.박사학위를 받고난뒤 그의 학문적 세계는 코페루니쿠스적인 대전환을 맞는다. 고상하고 거룩한 혁명에 대해 관심을 멀리하고 매춘에대해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너무 이데올로기에만 집착해있지 않느냐는 환멸감이 들었습니다.진짜 혁명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끈적거리는 문제에 대해 연구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나갈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이때부터 그의 컴퓨터에 저장된 「혁명파일」은 모두 「매춘파일」로 바뀌었다. 서울 미아리 텍사스촌 및 청량리 588, 부산시 완월동, 대구시 자갈마당, 광주시 황금동, 인천시 옐로하우스등 매춘현장을 찾아 생생한 현장사례를 수집했다. 관련문헌을 뒤지며 매춘탐사작업을 벌인 것은 물론이다. 2년의 노력 끝에 그는 94년 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법대로’라면 매춘 사라졌어야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매춘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했지만 반응은 말없음표 그자체였다. 한편에서는 『교수가 점잖지 못하게…』라는 비아냥도 들려왔다. 박교수는 이런 것이 모두 위선으로 보였다. 지적인 오기가 발동한 그는2년뒤 권력과 매춘의 함수관계를 다룬 을 출간, 매춘에 대한 화두를 또다시 이어갔다. 『사실 법대로 한다면 이미 매춘은 이땅에서 사라졌어야 합니다.그러나 매춘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구조화되고 공룡산업화되고있는 것이 현실입니다.』매춘의 구조화에는 권력의 무한책임이 크다고 그는 강조한다. 박정희정권등 역대 모든 정권은 도덕적 정당성이 부족, 그들의 썩은 모습을 조금이나마 감추기 위해 오히려 매춘을 방조해왔다는 것. 매춘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정당한 직업인이나 시민으로 인정하든지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공창을 두는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래야만이 지금까지 지속돼온 우리 사회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윤리를 조금이나마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박교수는 말했다.『장관자리를 돈주고 사고 기업경영을 위해 억대의 돈을 뿌리는등권력의 매춘화경향이 최근들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볼 때 창녀의 속살과 사타구니는 정치권등 권력보다 깨끗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혁명이론을 버리고 매춘연구에 몰입해 있는 40대초반 정치학자의이 말에 문민정부말기 정치권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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