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다한 부동산은 기업경영의 '짐'

진로 미도파 한신공영을 비롯해서 올해 들어 4월까지 하루 평균40여개의 회사가 부도 났다. 그런데도 콜금리나 회사채를 비롯한각종 시중 실세 금리는 11% 대를 향해서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돈이 모자라서 부도가 나는 판에 「돈 값」이라 할 수 있는 금리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까지의 상식으로는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뿐만 아니다. 이제까지 기업은 부동산 투자를 중요한 재테크 수단으로 생각했다. 심지어는 부동산 투자를 위한 신규 개발 프로젝트까지 만들어낸다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업상 꼭 필요한 부동산이 있더라도 가급적 임대를 선호하는 모습이관찰되고 있다. 오히려 부동산을 매각해서 금융기관의 차입금을 갚아 나가는 기업이 늘어간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위너스 게임과 루저스 게임이는 기업들의 사업구조조정과 무관치 않다. 기업들은 기업환경이급변하자 군살빼기에 적극 나서면서 이들이 보유한 부동산을 대거매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각대금은 은행에서 빌린 차입금을 갚는데 쓰고 있다.이처럼 기업·금융 환경 변화를 지켜 보면 과거의 궤적에서 파악하기란 어려운 부분이 한두개가 아니다. 이제는 최근의 변화를 해석하고 전망하기 위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런 점에서 기업 행동을 게임의 시각에서 보는 게임 패러다임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우리에게 준다.흔히 초보자끼리 바둑을 둘 때는 「누가 묘수를 많이 아느냐?」에따라서 승패가 결정되는 수가 많다. 정보가 불완전한 상태에서는「누가 먼저 정보를 선점하고 공격하여 승기를 잡느냐?」가 게임의관건이 된다. 그래서 이런 게임 상황을 위너스 게임(Winner’sGame)이라 하자. 그러나 고단자들이 바둑을 둘 때는 양상이 달라진다. 「누가 묘수를 두느냐?」 보다는 「누가 패착을 두지않느냐?」가 승부를 결정짓는다. 실수하는 쪽이 지는 양상으로 게임이 전개되기 마련이다. 이를 루저스 게임(Loser’s Game)이라고부르자.게임의 패러다임으로 보면 80년대 고도 성장기의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위너스 게임의 논리가 지배하는 환경이었다. 좋은 아이템이라는 정보가 퍼지면 너 나 할 것 없이 이 아이템에 신규로 뛰어들었다. 재벌 기업의 사업 확장 과정을 관찰하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사업에 진출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잘나가는 아이템」을 잡기만 하면 이미 승세를 굳힌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영업력이나 기술력이 어떤 기업인지 즉, 「to be」의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나가는 아이템」이나 「라이선스 프리미엄」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 - 소위 「to have」의평가가 핵심이었다. 이런 게임의 양상에서는 경영자에게 요구되는자질 중에서 기업가적 자질보다도 펀드 매니저 자질이 더욱 중요했다.기업마다 「한 번 성공한 과실」을 다른 곳에 옮겨 담을 수 있는「새로운 잘 나가는 사업 아이템」을 잡는 과정을 「다각화」라고생각했고, 비평가들은 이를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꼬집었다. 재벌 기업의 사업 확장 내용을 본업과의 수직적·수평적 시너지 효과나 사업 위험의 헷지(hedge) 측면에서 조리있게 설명하기 힘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이런 게임의 양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계속해서 확장이라는 이름의 자전거 페달을 밟아 가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런 국면에서는 기업이 외형을 늘리면 금융 지원을 받기도수월했고, 정책 당국의 협조를 받기도 용이했으며,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도 수월했다. 자전거는 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가속도가 빨리 붙는 원리와 같다.물론 이런 과정에서 기업들은 「부동산」이란 아이템을 놓칠 리가없었다. 예를 들어 80년대 부동산 개발 붐이 일면서 웬만한 기업은거의 비슷한 시기에 건설업이나 물류센터 등 부동산과 연계된 사업에 진출했다. 가지고만 있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동산 가격은올랐다. 따라서 값이 쌀 때 일단 부동산에 묻어만 두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확실한 게임의 양상을 띠었다. 필요한 자금은 부동산을담보로 다시 차입을 하면 됐다.이런 상황에서 사업 수익은 주목 받기 어려웠다. 「사업수익으로는경상비용과 금융 비용을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이면 성공적인 투자」라는 성공 법칙을 맹신했는지도 모른다. 금융기관도 부동산 담보가치 말고는 달리 믿을 만한 근거를 찾기가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도 쉽게 납득이 간다.그러나 이렇게 진행되는 게임은 속성적으로 「자전거 타기와 비슷하다」. 자전거는 계속 달리면 쓰러지지 않지만 속도가 늦춰지면급격히 안정감을 잃는다. 부동산 투자에서 이익이 실현되려면 그동안의 금융비용과 기회비용을 상쇄하고 남을 만한 비싼 가격으로 누군가 사야만 한다.고도 성장기에는 이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경제 구조가 안정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이미 너무 많이 올라 버린가격으로는 이들 부동산을 되사줄 사람이 선뜻 나타나지 않는다.최근들어 우리나라 부동산 투자가 단순 매각 보다는 개발 쪽으로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점은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여러가지 시사점을 준다. 이미 부동산 부문의 화두는 얼마나 소유했느냐? 「tohave」의 문제에서 어떻게 개발하느냐? 「to be」의 문제로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부동산 무분별한 보유, 과다한 금융비용 지출 초래이렇게 보면 최근의 부동산 가격 하락은 단순한 부동산 경기 사이클의 문제가 아니다. 아직 수요자가 지불할 능력 이내에서 가격이형성되고 있는지 아니면 능력을 벗어 났는지의 문제다. 만일 수요자 지불 능력을 벗어났다면 조정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고, 이 조정 과정이 자산 디플레의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충분히 조정되어 수요자가 지불할 여력 범위 안에서 가격이 형성될 때가 되어서야 다시 부동산 가격은 상승 여부를 점칠 수 있을것이다.이제는 무조건 부동산을 보유하는 것으로 불로소득을 향유할 수 있는 위너스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무분별한 보유는 과다한 금융 비용을 지출케하여 본업까지 파멸로 이끌게 되는 루저스 게임이다.기업 철학 없이 아이템을 이것저것 모아서 사업을 확장하는 연환계는 자칫 연쇄 부도를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이제부터유능한 경영자는 펀드매니저 자질보다도 기업가적정신(entrepreneurship)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다.이렇게 패러다임이 바뀌는 현상은 금융 관행에도 변화 도미노를 촉발한다. 루저스 게임 국면에서는 누구에게 대출과 투자를 해야 하나? 대답은 간단하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높은 금리를 주고, 덩치가 큰 기업을 선택할 일이 아니다.앞으로 성공해서 대출을 상환하고 투자 이익을 되돌려 줄수 있는기업을 선별해야 한다. 그런데 부동산 보유가 많은 기업이 앞으로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기술력이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 기업 규모와 성공 가능성을 연결짓는 것도비논리적이다. 규모가 큰 대기업이든 중소 기업이든 기업 규모는성공여부와 별 관계가 없는지도 모른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기업규모는 사업 성격에 맞추어 적당한 규모를 선택하면 그만이다.이런 점에서 지금 금융기관들은 앞으로 성공할 기업을 적극 찾아나설 것이다. 돈이 모자란다고 호소하는 기업은 많지만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앞날을 믿고 돈을 맡길 대상 기업은 별로 찾지 못한 까닭에 금융기관은 돈이 남아돌고 자금 시장에서는 돈이 모자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돈이 돈을 버는 패러다임은사라지고 돈을 벌어야 벌리는 패러다임으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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