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원자재·시장개척 '일석이조'

영원무역과 주식회사 대준. 섬유관련제품 생산업체인 이 두회사는80년대말 나란히 방글라데시에 진출했다. 방글라데시 항구도시인치타공의 자유무역지대(EPZ)에 현지공장을 짓고 함께 가동에 들어갔다.그러나 영원무역은 현재 방글라데시의 간판기업으로 성장한 반면대준은 어려움을 겪다가 끝내 문을 닫고 말았다. 같은 지역에 비슷한 업종으로 진출했음에도 한 업체는 대성공을 거두고 다른 업체는폐업의 길을 걷고 말았다. 삼익악기의 경우는 이보다 더 아이러니컬하다.이 회사는 최근 인도네시아의 옛수도인 보고르에 총 3천만달러를투자, 연 12만대의 피아노공장을 지었다. 인천 효성동에 있는 국내피아노공장과 비슷한 규모로 지었다. 기술과 품질등 여러가지면에서 국내공장이 앞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국내공장은 최근 부도에휘말렸다.반면 인도네시아공장은 장사가 아주 잘된다. 법정관리를 위해 재산보전처분중인 삼익악기가 요즘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 것은 인도네시아 현지법인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회사측은 밝힌다.꼭 같은 업종에서 같은 회사가 경영을 했음에도 국내회사는 부도를당했고 해외법인은 성공을 거둔 셈이다.이런 두가지의 사례를 보더라도 기업의 해외투자란 단순히 한두가지 측면만으로 분석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어느지역이 유리하다거나 어느업종이 적합하다는 식의 판단은 위험하다는 얘기이다. 이 보다는 어떤 방식의 경영으로 어떤 이점을 노리느냐가 중요할 것같다.일반적으로 동남아지역에 진출한 기업들은 값싼 인건비에 초점을맞춘다. 그러나 인건비절감에 치중한 기업들은 한결같이 오래가지못한다. 이 지역도 이제 인건비가 만만찮게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삼익인도네시아공장이 국내타격에도 불구, 뚜렷한 수출신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당초 해외투자사유를 인건비절감 보다는 원자재확보에 중점을 둔 결과라고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피아노의 원자재는 나무. 인도네시아는 엄청난 삼림을 가진 나라이다. 이곳의 원자재를 한국으로 옮겨가려면 이를 말린 뒤 배에 실을 수 있게 자른 다음 운송해야 했다.그러나 현지에선 운반에 알맞게 나무를 절단할 필요가 없다. 제품에 알맞게 가공해 그대로 쓰면 된다. 따라서 원자재인 나무의 로스가 크게 줄어든다. 운송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 원자재가에서 이렇게 단가를 낮출 수 있다보니 수출원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것이다.삼익 인도네시아현지법인의 김우년대표는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꿈도 못꾸던 일본시장에 피아노를 수출하는 결실까지 얻게 됐다 고자랑한다. 이 회사처럼 이제 인건비 절감만을 위한 해외투자보다는원자재확보및 시장개척등 다양한 이점을 노린 해외투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인건비를 겨냥한 봉제업종의 개미군단은 차츰 사라지고 기술투자방식의 해외진출이 증가하는 추세이다.지금까지 국내중소기업이 해외에 현지법인을 세운 것은 총4천4백79건. 투자금액은 총 28억달러에 이른다. 연도별 추세를 보면 89년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해 94년에 피크를 이뤘다. 89년이후 6년간 계속 증가추세를 보이다가 94년 이후부터는 다소 주춤하는 상황. 89년에 급격히 늘어난 까닭은 당시 전국적인 노사분규가 일어나면서 이에 질린 중소기업사장들이 해외로의 탈출을 시도한 결과다. 그동안 중소기업의 해외투자문제가 나오면 한결같이 국내산업의 공동화를 우려해왔다.그러나 지난 95년을 기점으로 해외투자열기가 다소 식어가는 점을감안할 때 공동화우려는 차츰 기우가 돼가고 있다. 해외탈출 열기가 다소 가라앉으면서 중소기업 해외투자의 경향은 크게 네가지로불거지고 있다. 비교적 건전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중남미 등 투자지역 다양화첫번째가 투자지역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역시 동남아와 중국이 주도했다. 전체 중소기업해외투자 4천4백79건 가운데 무려 3천4백87건이 동남아 및 중국이었다.그러나 요즘 해외취재를 다니다 보면 뜻밖의 지역에서도 한국기업을 만난다. 인도의 노이다공단이나 중미의 자메이카, 아프리카의마다가스카르섬에까지도 한국 중소기업이 진출해 있는 걸 보고 몹시 놀라게 된다. 이미 아프리카에도 37개업체가 약 2천만달러를 투자했다. 아프리카 진출업체는 주로 모로코나 튀니지 등 지중해나대서양 연안국가에 공장을 차렸다. 이들은 유럽시장을 우회해 공략하기 위해 진출한 경우이다.중남미에 진출한 기업들도 이와 비슷한 전략이다. 미국시장을 우회공략키 위해 카리브연안국가에 진출해왔다. 1백73개 업체가 이 지역에 투자했다. 오세아니아지역에도 77건에 약 5천만달러를 투자했다.◆ 첨단기술부문도 현지법인화두번째의 경향은 첨단기술부문에서 해외현지법인을 만드는 경우가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그동안 중소기업의 해외투자는 후진국으로만 향했다.그러나 올들어부터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 첨단기술분야 투자를 서슴없이 해낸다. 최근 선진국에 첨단기술분야 현지법인을 세우거나 추진중인 중소기업은 건인 가산전자 핸디소프트 한글과컴퓨터텔슨전자등 10여개사에 이른다. 무선통신기기업체인 스탠더드텔레콤은 지난해 7월 미국 샌타클레라시에 연구개발전문법인을 세우고이동통신기기의 원천기술을 개발중이다.이 회사는 범유럽이동전화표준인 GSM의 핵심기술을 개발, 지난 3월독일하노버에서 열린 세빗전시회에 선보인데 이어 이달말까지 이를상용화할 계획이다. 위성수신장치 제조업체인 건인도 지난해 유럽에 3억달러어치의 수출실적을 올린 여세를 몰아 이달중 영국 북아일랜드에 1백60만달러를 들여 현지공장을 마련한다.이 현지법인은 영국등 유럽시장을 겨냥한 위성수신기 생산시설을갖추고 현지시장에 알맞는 마케팅활동을 벌인다. 사업첫해인 내년도에 매출목표를 1백10억원으로 잡고 있다. 소프트웨어전문업체인새롬기술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 진출한다.최근 2년간 연구개발한 첨단화상통신 프로그램인 「보이스맨 프로」를 개발, 상품화하기 위해서이다. 이밖에 두인전자가 미국 샌타클레라시에 진출했고 다우기술도 새너제이시에 현지법인을 만들었다.◆ 중기전용공단 조성 발벗고 나서세번째 경향은 해외현지에 중소기업전용공단을 만들어 진출하기 시작한 것. 특히 해외진출에 경험을 쌓은 중소기업들이 전용공단 조성에 발벗고 나섰다.주식회사 코비는 베트남과의 수교전인 91년 이 나라에 진출, 현지에서 파이프 멜라민가정용기능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외국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이 나라에 1백% 단독법인을 설립한 회사이기도하다. 이 회사는 한국전용공단 건설추진 4년여만에 지난해 하반기베트남 정부로부터 공단건설 허가권을 획득, 호치민시 인근의 송베성 안푸지구에 한국 중소기업공단을 조성한다. 공단 규모는 약 1백50만평. 올상반기중 1차로 2백ha 규모의 공단을 조성해 분양을 시작하며 완공시에는 전자업체등 1백개 이상의 중소기업이 들어설것으로 기대된다.이 중소기업전용공단은 행정절차의 공동처리 및 세제등 각종특혜가부여된다. 이정부코비사장은 교수출신의 사업가. 베트남 고위층과인간적인 친분을 쌓아둔 것이 허가를 획득하는데 큰 힘이 됐다. 이사장은 『베트남에서 사업을 해오면서 국내 중소기업들이 베트남업체와 합작투자해 실패하고 철수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안전보장의 필요성을 느껴 한국공단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힌다. 영원무역도 중소기업공단조성에 나섰다. 치타공스포츠의류 공장이성공을 거두자 이번엔 이곳에 3백40만평 규모의 초대형 한국수출자유지역(KEPZ)건립을 추진중이다. 영원은 방글라데시에서 현지생산으로 수출하는 최대의 제조업체여서 이 나라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다.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외국계 기업으로는 최초로 공단조성 허가를획득한 것도 이런 배경 덕택이다. 방글라데시 정부의 지원아래 최근 공단을 착공, 2006년까지 이 단지를 단계적으로 조성키로 했다.98년 하반기부터 분양을 시작, 연말까지 몇개 업체를 입주시켜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KEPZ에는 섬유 신발 전기 전자 자동차조립업체등 1백30개사가 들어설 전망이다.윤제철 KEPZ 사업본부장은 『방글라데시내 수출자유지역은 노사분규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고 임금도 월3만∼5만원선으로 최저선에서안정돼있어 중소기업들의 투자성공 가능성이 큰 지역』이라고 강조한다. 중소무역업체인 삼진인턴상사는 중국 대련시 금주구와 협력해 최근 조성한 한국중소기업단지 분양에 나섰다.4년전부터 중국 비즈니스를 추진해온 이회사는 지난해 대련에 합작법인 대련상무유한공사를 설립, 공단 관련사업을 본격화했다. 조태래사장은 중국 위해시관계자들과 두터운 친분을 맺은 것이 이 사업을 하게된 배경. 단지의 총면적은 35만평 규모로 20∼30개 중소업체를 입주시킬 예정이다. 저가의 토지가격(㎡당 20달러), 소득세제투자세 감면 면제등 혜택이 많은 탓에 4개 업체가 분양계약을 한상태이며 곧 분양이 완료될 것으로 내다보인다. 르메이에르는 중국요령성 안산시 등오특구내에 20만평규모의 한국전용공단을 조성,올해 5개사를 유치하는등 총20∼30개 업체를 입주시킬 계획이다.한편 경남도 경기도 인천시등 광역시도단위에서도 주로 자매결연등의 관계에 있는 중국 도시에 중소기업 전용공단을 조성했거나 추진중이다. 해외 중소기업공단을 처음으로 추진한 경남도는 중국 산동성 교남과 위해에 총부지 54만6천평 규모의 경남도전용공단을 조성, 분양한지 2년여만에 61%를 분양한 상태다. 현재 16개 중소업체가 28만2천평의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경기도는 토개공과 공동으로 심양에 총 25만3천평 규모의 중소기업공단을 조성해 10여개 업체를 유치했다.인천시는 지난해 요령성 단동지역에 41만8천㎡를 50년간 임차하는계약을 체결, 현재 지역 중소기업들의 입주 신청을 받고 있다. 베트남 하이퐁에도 인천공단을 설치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이밖에 대구시가 중국 광동성 청계진에 부지 12만평 규모의 대구공단 조성을 검토중이다. 이같은 현상은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집단진출을 촉진시키고 있다.◆ 중국·동남아 투자 대규모 추세네번째 현상은 기존 인기지역인 중국과 동남아에 진출하는 기업들의 투자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중진공의 조사에 따르면 올들어 신규로 해외투자를 계획하고 있는업체 1백12개사중 중국진출을 계획하는 기업이 65개사로 절반이상을 차지했으며, 다음은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였다. 이들 신규투자업체들은 대부분 3백억원 이상의 대규모자금을 투자, 양산체제를 갖춘 공장을 짓는다. 중앙제지 동서가구 에넥스 세신등 업체에서 대규모투자를 주도하고 있다.중앙제지는 지난 30년간 가동하던 안양공장을 폐쇄하고 그곳에서사용하던 기계설비를 국외로 이전한다. 동남아 각국을 대상으로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앙제지는 최근 말레이시아 페락(PERAK)주정부경제개발국과 3천만달러를 50대50으로 합작투자해 연산 4만t 규모의 백판지공장을 건립키로 계약을 맺었다.이는 폐쇄한 안양 백판지공장을 고스란히 말레이시아 현지로 옮기는 셈이다.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시에서 80㎞ 정도 떨어진쾌락주이포제지공단 3만평에 들어설 이 공장은 98년초 가동에 들어간다. 전체 생산량 중 70%는 현지판매하고 나머지 30%는 인근 동남아국가에 수출한다. 바로 양산화로 해외거점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동서가구도 최근 중국 광동성 동완시 인근에 3백50만달러란 거금을 투자했다. 국내 종합가구업체로 중국에 진출하기는 동서가구가 처음. 중국공장 가동 첫해인 올해 60억원 이상의 매출을 목표로하고 있다. 대지 1천5백평, 건평 1천3백평 규모로 생산시설은 물론기숙사와 사원아파트 2개동을 갖춘 대규모 진출이다. 생산제품은사무용 가구인 오피스터와 워크타운 시리즈, 코디네이션가구, 파티션(칸막이)등이다. 또 전체 생산의 40%만 중국 내수시장에 판매하고 60% 상당의 물량은 동남아지역에 수출하게 된다.동서가구는 특히 중국공장 가동을 계기로 심천 광주 상해등 중국내 20여 주요 도시에 판매대리점망을 구축해 현지 가구시장을 물량으로 공략한다는전략을 내놓았다.부엌가구업체인 에넥스도 과감한 현지투자로 올해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2개 현지합작공장을 짓는다. 에넥스는 중국에서 스테인리스싱크대를 중점 생산, 중국 내수시장에 판매하고 인도네시아에서는캐비닛과 부엌가구를 만들어 동남아시장에 적극 수출할 방침이다.이와 관련, 공장설립이 까다로운 중국에선 기존 공장을 인수해 투자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강구중이기도 하다. 양식기생산업체인세신도 중소기업으로서는 큰돈인 6백만달러를 들여 스테인리스 보온병, 보온도시락 양산공장을 짓는다. 이를 위해 최근 중국 요령성금주시에 자본금 2백60만달러의 중국금주세신유한공사를 설립했다.금주시 경제기술개발구 내에 건립하는 이 공장은 대지 1만평, 건평4천평규모. 세신은 가동 첫해인 올해 4만개의 스테인리스 보온병과보온도시락을 생산하고 98년과 99년에 각각 8만개, 10만개로 늘린다. 연도별 매출목표는 올해 80만달러, 98년 1백60만달러, 99년2백만달러이다. 이 회사 역시 양산화전략을 펴고 있다.레이온 제직업체인 한서실업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화섬염색공장인 칼티멕스사를 1백30만달러에 인수해 본격적인 국외생산에나섰다. 원료인 생지확보와 원가절감을 위해서이다.이밖에 자동차부품및 전자부품등 분야에서 대기업들과 동반진출을꾀하는 기업들은 대기업측에서 제공한 공단안에 입주, 곧장 납품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앞서 지적한 이런 4가지 경향에 맞춰 해외투자를 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아직까지 큰 문제점을 드러내진 않고 있다.그러나 국내에서 사양산업취급을 받자 해외로 탈출한 개미군단은이제 더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 서남아와 아프리카 동유럽 등에서터를 찾고 있지만 이것조차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이탈리아에선섬유및 의류 액세서리등 사업이 결코 사양산업이 아닌데 우리나라에선 완전 사양산업 취급을 하는 것이 이들을 밖으로 몰아낸 원인이 아닌가 한다.따라서 이제 중소기업을 해외로 내보낼 땐 첨단기술업종을 내보내거나 선진국으로의 진출을 촉진시켜 더욱 강한 기업이 될수 있도록하는 정책을 마련해줘야 하겠다.해외투자경향을 △한계기업 △사양업종 △후진국 △소규모투자 △단독진출위주에서 △우수기업 △첨단기술업종 △선진국 △중규모투자 △집단진출로 더욱 전환시킬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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