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내일 향해 쏜다

서기2002년. ABC컴퓨터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김순이씨.『이런! 내일 휴가 떠나야 하는데 피터슨사 계약을 어떻게 처리하나.』그녀는 난감했다. 『호텔 비행기 등 모두 어렵게 예약했는데. 휴가를 늦출 수도 없고 이번 계약을 마무리하지 않을 수도 없고.』2002년의 통신기술은 김씨가 휴가갈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그녀는 먼저 화상전화를 연결한다.통화상대는 업무파트너인 이철수씨. 「이 친구 얼굴이 부스스한게 어제 또 늦게까지 놀았군.」 그녀는속으로는 이렇게 흉을 보았지만 표정은 반갑게.(그도 김순이씨의얼굴을 생생하게 보고 있으므로)『좋아요, 제안서와 개념도를 전화기의 카메라 앞에 대보세요.』김순이씨가 말했다. 이씨가 제안서와 개념도를 카메라에 대자 그녀는 화상전화 화면에 나타난 두 서류를 광디스켓에 저장한다.『그럼 제가 내용을 보충해 내일 보내드릴게요.』다음날 아침. 그녀는 히말라야 스키장으로 떠난다.히말라야 스키장으로 가는 열차속.개인휴대단말기를 꺼낸다. 손바닥만한 기계지만 어디서든 인터넷에접속할수 있다. 그녀는 거래처 웹사이트에서 최신 상품명세서를 전송받는다.스키장호텔에 도착한 그녀는 노트북컴퓨터를 꺼내 데이터베이스에원격접속을 시도한다. 물론 노트북컴퓨터는 음성전화 데이터통신이동시에 지원된다.『철수씨, 이 도면은 엔지니어링 서버에서 직접 전송받아 작성한거예요. 검토해보고 연락주세요.』스키장에서의 오후.유쾌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린다.『삐리리, 순이님의 인터넷계정에 전자우편이 하나 와 있습니다.』휴대전화가 전해주는 메시지다. 이철수씨가 업무를 처리하고 보내온 회신이다.『읽어주세요.』 김순이씨는 전화기에 대고 말한다.음성인식기능이 있는 전화기는 김순이씨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전자우편내용을 음성으로 들려준다.『일이 잘 끝났어요. 계약은 체결됐고요. 그럼 휴가 잘보내세요.』 전화기가 전자우편을 읽어주는 기계음이지만 그녀에겐무엇보다 달콤한 목소리였다.새로운 천년을 맞으면서 겪게 될 새시대의 한 모습이다.◆ 폭풍의 진원지는 통신시장 개방지금 수준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지만 불과 몇년후면 가능한 서비스들이다. 2005년까지 41조원이나 들여야 하는 초고속정보통신망이완성돼야 가능한 서비스라고 일축할지도 모른다. 사실 전화서비스는 1876년 벨이 인류에게 처음 소개된 후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통화품질을 깨끗하게 한다거나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통화할 수있게 하는 등의 발전은 있었지만 「음성통신」과 「공공서비스」라는 기본개념은 그대로 유지됐다.그러나 새천년을 맞는 20세기말에 1백여년을 지켜온 통신서비스의기본원리가 「자유경쟁」과 「멀티미디어통신」으로 바뀌고 있다.전화서비스를 근본부터 바꿔놓은 키워드는 「규제철폐」와 「기술혁신」이다.통신시장의 폭풍을 몰고오는 「규제철폐」의 진원지는 개방이다.지난 2월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타결된 WTO(세계무역기구)통신시장 개방협상에 따라 외국회사들이 국내에 들어와 영업할 수 있게됐고 국내회사들이 역으로 해외에서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됐다. 개방의 가장 큰 영향은 시내전화사업의 경쟁체제돌입이다.하나로통신이 1999년부터 사업에 나서면 한국통신의 독점체제는 끝난다. 하나로통신의 출현은 또다른 「시내전화사업자의 등장」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국제전화건 무선전화건 결국은 시내전화망을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하나로통신에는 데이콤과 한전을비롯, 현대 삼성 LG 대우 선경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줄줄이 참여하고 있다. 하나로통신의 주주사는 무려 4백44개나 된다.◆ 20C말, 자유경쟁·멀티미디어통신 추진하나로통신은 「사실상의 초고속통신망」이라 불리는 한국전력의2만km에 달하는 케이블TV전송망과 새로운 가입자망 구성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무선가입자망(WLL)을 이용해 과거에 누리지 못한 멀티미디어통신을 제공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물론 한국통신이라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이미 2천만회선을 보유하고있는 이점을 활용해 하나로통신보다 더 신속하게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통신서비스의 경쟁체제는 유선계보다 무선계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미 지난해 4월 신세기통신이 서비스를 시작함에 따라 이동전화서비스의 독점시대는 막을 내렸고 가입자를 22만명이나 확보한시티폰서비스는 이동전화서비스의 경쟁시대에 불을 당기고 있다.올해 말부터 PCS라는 새로운 이동전화서비스가 선보이면 이동전화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산업의 이동통신이라고 불리는 TRS 무선데이터통신은 직접적으로산업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외에도 고속삐삐 회선임대 등 다양한 서비스사업자가 선정됐다. 내년부터는 전화회선을 도매금으로 빌려 소매상처럼 판매하는 재판매업자도 나타난다. 공중전화망과 기업전용망을 연결하는 「공전공접속」이 허용되면 시외·국제 등 장거리전화부문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저렴하고 다양한서비스가 등장할 전망이다.유선전화건 무선전화건 고객을 확보할 무기는 통화품질, 다양한 서비스, 저렴한 가격이다. 서비스업체야 죽을맛이겠지만 소비자는 신바람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다. 경쟁체제는 기술개발속도에도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더 작은 단말기를 더 저렴한 가격에 내놓고 전화기 한대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연구소의 불은 꺼질날이 없을 것이다. 카드만한 전화기가 결코 꿈같은 일만은 아니다. 이 모든 변화를 촉발한 개방을 맞아 마치 꿈의 시대가 열리는 듯하지만 서비스를 준비하는 기업에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온다.전세계 통신시장규모는 연간 6천억달러. 4년뒤엔 1조2천억달러로급성장할 전망이다. 국내시장만 해도 3백40억달러규모로 커질 통신서비스시장을 두고 수많은 기업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큰 먹이는쉽게 잡히지 않는다. 조단위의 투자가 선행돼야 하고 각기 다양한마케팅의 노하우가 있는 국내외의 거친상대를 굴복시켜야 한다.◆ 대기업 등 지분확보위한 물밑경쟁 치열강력한 상대를 꺾기 위해 국내외 기업간 인수합병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이미 구미에서는 통신기업과 합종연횡이 다반사이고 폐쇄적인 일본통신시장도 일본텔레콤과 ITJ의 합병을 계기로 업계구도가재편성되고 있다. 내년부터 한국통신시장도 합종연횡의 바람이 불것이란 전망이 분분하다. 이미 대기업들은 내년부터 본격화할 합종연횡에 대비, 지분확보를 위한 물밑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지분구성이 복잡한 하나로통신 데이콤 온세통신 등이 그러하다. 치열한경쟁의 결과를 장미빛으로만 볼수도 없고 잿빛으로만 볼수도 없다.문제는 정책이다. 정부는 개방에 앞서 국내업체들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통신사업자를 서둘러 선정하고 시내전화요금을 자율화하는등 국내업체들의 체질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21세기의 통신시장을 주도한다는 원대한 야망을 품고 CDMA라는 새로운 무선통신기술에 배팅하는 과단성도 보였다.그러나 더 잘해야 한다. 무한경쟁시대에 이윤추구가 지상목표인 민간기업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못할 일이 없다. 그러나시장은 한정돼 있고 경쟁사들은 지칠 줄을 모른다. 결과는 분쟁이다. 혹은 담합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아니면 정부도 어쩔 수 없는초거대기업이 나타나 시장을 과점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신속하고 사리에 맞게 조정해 줄 수 있는 기관이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 사무국조차 없는 우리네 통신위원회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통신시장의 개방을 맞은 한국정부가 풀어야 할 고통스런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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