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별별 모임" 전성시대

얼마전 미도파 지분을 둘러싸고 대농그룹과 신동방이 한바탕 혈전을 벌였을 때 재계에는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신동방의 미도파 인수합병 시도에 대해 은근히 견제를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고 실제로현대 삼성 LG 등 국내 굴지의 그룹들은 대농에 수백억원대의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재계에서는 대부분이들 그룹들의 행동에 대해 심정적으로 이해를 하는 눈치였다.특히 일각에서는 기업경영을 잘 하려면 경영자의 자질 못지않게 다른 대기업 오너와의 친목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안팎으로 잘 챙겨야 기업을 별 탈없이 이끌어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재계 사람들은 흔히 혼자서는 사업을 할수 없다는 말을 한다. 사업의 생리상 도저히 독불장군식으로는 제대로 기업을 이끌어갈 수 없다는 의미다. 인맥이 중시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찍이 각종경제단체를 만들어 회원들의 발전을 도모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라할수 있다.그런 가운데 최근 들어서도 미도파 인수합병 파동에서 볼수 있듯재계 사람들의 인맥중시 경향은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느낌이다. 어디 한군데라도 끼이지 못하면 팔불출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다. 과장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두 사람만 모이면 모임을 만든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도는 실정이다.◆ 90년대들면서 2, 3세 모임 증가일부에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비싼 돈을 내고 대학원에 다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각 대학이 경쟁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과 각종 특수대학원에는 학생들이 넘쳐나는 실정이다.심지어 6개월짜리 초단기 코스도 등장, 밀려드는 수강생에 대해 지원자격을 까다롭게 정해 선별적으로 받고 있다. 특히 이들 대학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장관 등 유력인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열어 모임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하기도 한다.사실 재계 1세대들이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던 때에는 공식적인 모임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인 재계모임으로 분류되는 전경련 등 경제 5단체의 예에서 보듯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단체를 만들어 회원들의 입장을 대변했다.그러다가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접어들면서 2세시대가 본격 열리고 재계모임에도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바로 다름이 아니라 재벌 2,3세 중심의 모임이 하나둘씩 생겨났던 것이다. 경영연구회와 푸른회가 생긴 것도 이 무렵이다. 그후 최근에 이르기까지크고 작은 재벌들의 모임이 크게 느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재벌 2,3세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모임이 늘어 재계모임의한 전형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느낌이다.재계모임의 확산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요즘들어 업종별 CEO(최고경영자)클럽 시대가 본격 열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재계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자동차공업협회, 철강공업협회등의 이름으로 업종별 모임이 있있다. 그러나 이는 특정 분야의 차원에 머물렀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협회가 없는 업종이 없고협회 안에는 최고경영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서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교류하는 모임이 열리고 있다.특히 중견, 중소기업에까지 이러한 바람이 불어 그동안 사분오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화섬전문수출업체의 경우 각 회사 대표들이참석하는 기업협의회를 만들어 월 1회씩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사실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여건 면에서 아주 불리하다. 자본력은 물론이고 기술력도 대기업에 비해 한참 뒤처지는 까닭에 정상적인 게임을 하면 지기 십상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정도가 아주 심하다.최근 중소기업의 부도율이 사상 최고치에 달하고 하루에 수십개나쓰러지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인들의 모임이 활성화되는 것도 이런추세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모임의 기본적인 성격 자체가어려울 때 서로 도와준다는 측면이 강한만큼 환경이 열악해질수록유대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만날수록 정보교환에 도움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지적할 것은 중소기업인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는 이들 모임의 경우 대부분 재벌 중심의 모임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대외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를 과시하기 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친목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얘기다.지난해부터 한창 붐을 이루고 있는 벤처기업의 사업가들도 모임의필요성을 절감하는 분위기다. 벤처기업 사장을 중심으로 한백회 등모임을 속속 결성하고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참석자들은 만남의횟수를 늘려갈수록 정보를 교환하고 업계의 목소리를 가다듬는데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재계모임에 대한 일반인들의 평가는 크게 두가지로 엇갈리고 있다.하나는 긍정적인 시각이다. 대부분 경제 5단체와 같은 공식적인 모임을 두고 얘기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물론 이들 단체들도 때로는너무 자기들의 입장만 고려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하지만 그럼에도 비교적 후한 평가를 받는 입장이다. 공개주의를원칙으로 하고 경제계 전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재벌 2, 3세 중심의 모임에 대해서는 감시의눈초리가 매섭다. 일각에서는 매우 강도 높은 의혹을 제기하기도한다.특히 지난번 국회에서 김현철씨와 재벌 2, 3세간 친목단체인 황태자클럽 결성설이 제기된 것을 계기로 극에 달했다. 확인 결과 이클럽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현철씨를중심으로 한 정재계 커넥션에 일부 재벌 2세들이 깊숙이 개입했던사실이 드러나면서 정경유착의 일단이 공개돼 모임이 친목보다 정치보험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특히 이들 모임의 일부 회원들이 혈연 학연 지연 등 이른바 인맥을중심으로 끈끈한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불에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는 후문이다. 물론 재벌 2, 3세 모임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도 많다. 젊은 기업가들의 공부하고 연구하는 장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또 단순한 친목모임을 너무 거창하게 보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일부 모임은 단지 건전한 사교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으로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모임 자체를 너무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까닭에 오히려 일반 사람들의 궁금증을 더하고 있는 실정이다.모임 자체는 아주 건전한 만남의 수단이다. 우리 조상들도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어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는 미풍양속을 지켜왔다.물론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모임의 근본 목적이 상당 부분 변했다.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압력단체가 줄줄이 등장할 정도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본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행여나 본래 의도했던 모임의 목적을 망각하고 로비의 통로로 이용한다거나 정치권에 줄을 대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고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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