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경영으로 경쟁력 제고

삼성그룹은 올초 기업의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스피드경영」을 주창했다. 스피드경영은 삼성이 93년부터 실천해온 「질(質)경영」의뒤를 잇는 전략이다. 질경영이 삼성 신경영의 제 1기를 장식한 그룹 비전이라면 스피드경영은 신경영 제 2기를 여는 키워드인 셈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신경영실의 조영빈 연구원은 『신경영이 그룹의 경쟁력 향상이라는 대원칙이라면 질경영이나 스피드경영은 그신경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이라고 설명했다.삼성의 신경영은 제품(Product) 사람(People) 업무(Process) 등3P를 혁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삼성은93년 당시 신경영을 위해서는 3P의 질(Quality)을 향상시키는게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질경영을 내세웠다.조연구원은 『지난해 질경영의 성과를 평가하는 고객만족지수 조사(CSI: Customer Satisfac-tion In-dex)를 실시했는데 전분야에서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와 질경영의 뒤를 이어갈 새로운 실천 지침을찾게 됐다』고 밝혔다.◆ 개발시간 선진국보다 배나 늦어삼성은 질경영 이후의 경영전략을 준비하기 위해 선진 기업을 조사한 결과 「기업의 힘(Power)= 양(Scale) × 질(Quality) × 스피드(Speed)」라는 결론을 얻어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싸게(양) 좋게(질) 빠르게(스피드) 공급하는게 경쟁력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삼성은 이 공식에서 양과 질의 문제는 질경영으로 해결했다고 판단,경쟁력의 마지막 요소인 스피드에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말하자면 스피드경영은 선진 기업을 따라잡기 위한 경쟁력 제고의 핵심요소로 선택된 것이다.실제 조사 결과에서도 삼성의 스피드는 선진국의 대기업에 비해 많이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삼성이 주요 계열사와 선진 기업들의 경영지표를 비교해본 결과 삼성의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은 선진 기업의 90% 수준인데 비해 스피드는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연구개발에 걸리는 시간과 주문에서부터 상품을 배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납기준수율 등이 선진 기업에 비해 2배 정도 느렸다.구체적으로 연구개발에 걸리는 시간은 삼성전관의 경우 일본 도시바의 3배, 삼성전기는 일본 마쓰시타의 2.5배에 달했다. 또 삼성카메라는 주문에서부터 제품 출하까지 걸리는 시간이 일본 도요타보다 10배 정도 오래 걸렸다.삼성생명은 창구를 통하지 않고 보험료 납입과 대출 등의 업무를처리하는 무창구서비스율이 일본생명의 1/3 수준에 그쳤다. 삼성전자는 월결산을 하는데 15일이 걸리는 반면 휴렛패커드는 절반인7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의사결정 시간에서도 삼성그룹은 선진 기업보다 2배 정도 느렸다. 삼성과 선진기업의 차이는 「질」이 아니라 「스피드」였다.삼성은 결국 선진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기업내 스피드 효율을올리는 「스피드 업(Speed-Up)」전략이 절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이런 판단에 따라 나온 전략이 「HSM(High Speed Management: 고스피드 경영)」이다. 고스피드라고 해서 삼성이 내세우는 스피드경영이 단순히 「빠르다」라는 속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삼성그룹 비서실의 지승림전무는 『스피드경영은 총체적인 시간중심(Time-Based) 경영』이라며 『우리는 이것을 「먼저」하는 기회선점경영, 「빨리」라는 시간단축경영, 「제때」 하는 타이밍경영,「자주」하는 유연경영으로 이해한다』고 소개했다.「먼저 빨리 제때 자주」라는 4가지 스피드경영의 속성을 확보하기위해 삼성은 19가지 구체적인 과제를 선정했다. 우선 그룹 전체적으로는 △국내에서 1위가 안 되는 사업은 해외로 이전, 해외에서도경쟁력이 없으면 철수 △스피드를 상품과 서비스의 부가가치로 활용 △관료주의와 비효율적 관행 타파 등 3가지를 내세우고 있다.기획과 개발 단계에서는 시장 선점을 위해 신제품을 조기에 선보이는게 관건이다. 삼성그룹의 이건희회장은 내부 경영어록에서 『경쟁사보다 신제품을 먼저 출시하고 이익을 확보한 다음 다른 제품을개발, 도망가는 식이 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삼성은△개발 초기부터 관련 부서가 동시에 참여 △유사한 기능과 능력을가진 연구개발 조직 2개 이상 운영 △팀장이 상품기획부터 개발 완료까지 전 과정 관리 △관련 부문 전체의 네트워크화 등을 강조하고 있다.생산 및 물류에서 스피드경영이란 다품종 소량생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생산에서 물류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유통 재고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컴퓨터를 이용한 통합 생산관리체제로 유연생산체제 구축 △지위고하를 떠나 그 업무를 가장 잘 아는 현장 전문가에게 결정 권한 부여 △협력업체와의 정보 공유 등이 실천 지침으로 추진되고 있다.마케팅 및 영업 부문의 경우 △시장 정보를 신속하게 수집 △자동주문 추적 시스템 등으로 고객 요구에 빠르게 대응 △빠른 서비스△고객을 직접 만나는 사람에게 권한 이양 등이 주요 과제로 채택됐다. 고객 요구에 빠르게 대처해 나가는게 마케팅 및 영업에 있어서 스피드경영의 키포인트이기 때문이다.경영지원에서는 △자산 회전율 강화 △조직계층 단순화 △인사 발령일 준수 △회계 결산기간 단축 △정보 공유화 등이 중요하다. 돈과 사람 기계 정보의 회전 속도를 높여 필요한 곳에 필요한 자원을신속하게 투입하는게 경영지원 부문의 스피드경영이라는 관점에서다.◆ 48시간 배달·즉시반응 시스템 가동이건희회장도 올초 신년사에서 『스톡(고정자산)보다는 회전속도가중요하다』며 『돈 상품 기계 사람 정보를 빨리 돌리는 것이 효율이고 생산성』이라고 지적했다.스피드경영에 대한 19가지 지침이 나온 이후 각 계열사는 나름대로스피드경영을 실천해가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경우 국내 건설업계 최초로 전국 3백여 공사 현장에 소사장제를 도입했다.소사장제란 현장소장이 예산권과 인사권, 협력업체 선정권 등 현장경영 전반에 대한 모든 권한을 사장으로부터 위임받아 자신의 책임하에 처리하는 제도다. 삼성물산은 현재 건설부문 임원급 30명을포함, 부장급 이상 현장소장 80명을 소사장으로 임명해 스피드경영을 실험하고 있다.삼성종합화학은 임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던 제안제도에 스피드경영을 접목시켰다. 제안된 내용을 결재, 평가하기 위해 운영하던 심사 전담 조직을 없애고 발의된 제안을 가장 잘 평가할 수 있는 인원을 모아 필요할 때마다 심사팀을 운영,곧바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삼성카드의 경우 부서단위별 인터넷 홈페이지에 개인의 인사내용과소득 관련 사항을 올리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인사와 개인의 급여에 관련된 내용을 전달함으로써 각종 명세서를 없애고 인사팀의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삼성카드는 이 시스템 도입으로 인사및 후생 복리 등에 관련된 문의 사항에 답하느라 업무 효율이 떨어졌던 인사팀의 생산성이 30% 가량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물론 삼성은 이전에도 부분적으로 스피드경영이라 할만한 시책들을추진해 왔던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가 삼성물산 물류부문의 48시간 배달 서비스와 즉시반응시스템(Quick Response System)이다.48시간 배달 서비스란 고객이 찾는 상품이 매장에 없을 경우 48시간 내에 전국 매장을 샅샅이 뒤져 고객의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즉시반응시스템은 고객이 원하는 상품이 전국 어느 매장에도없을 경우 7일 이내에 새로 생산해주는 시스템을 말한다. 삼성생명의 경우에는 93년 7월부터 영업국의 대출 추천에서 대출금 지급까지의 절차를 개선, 대출처리 기일을 15일에서 8일로 단축했다.그러나 이런 사례들은 계열사가 판촉 차원에서 제각기 실시하던 것으로 그룹 전체의 경쟁력 제고와는 이어지지 않았다. 삼성의 스피드경영 선언은 각 계열사별로 이뤄지던 스피드 혁신 전략을 체계화해 그룹 전체의 경쟁력으로 승화시키자는데 목적이 있다.삼성은 스피드경영 실천으로 현재 선진 기업의 44%에 불과한 업무의 스피드를 올해말까지 66%로 올리고 99년까지는 선진국과 같은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삼성은 99년까지 선진 기업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2000년대에는 선진 기업과의 경쟁력 격차가 더벌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개발에서 판매까지 어떻게 저부가가치 업무를 줄여나가면서 시간을 단축하느냐가 미래의경쟁력』(이건희회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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