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금융개혁으로 여건 조성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암시하는 기업 부도 사태가 잇따르고있는 가운데 경제활력을 되찾기 위한 다각적인 구조개혁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경제·산업의 체질 자체를 과감하게 개혁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선진국들의 구조개혁 사례를 좋은 참고로 삼아야 할 것이다.미국·일본의 구조개혁 과정을 보면 가장 중요한 시책으로서 규제완화가 눈에 띈다. 민간 부문의 활력을 북돋우고 작은 정부를 실현하여 경제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데 있어서 규제완화가 중요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규제완화가 시작된 것은 70년대 후반의 포드, 카터 정권 때였으며 주식수수료 자유화(75년), 항공요금 자유화(78년), 금융제도개혁법(80년), 운수자유법(80년) 등이 도입되었다. 당시 규제완화는 가격경쟁을 촉진하여 물가를 잡기위해 추진되었으며 이 결과 미국의 인프라 서비스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서서히 제고되는 효과를 나타냈다. 90년대에는 규제완화와 함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정부조직의 축소·합리화가 과감하게추진되면서 규제완화의 효과가 배가됐다. 특히 클린턴 정권하에서는 정부 공공서비스의 민영화가 활력소로 작용했다. 미국에서 원래전력, 통신 등의 인프라 서비스 분야는 민간기업의 영역이었으며90년대에 들어와서는 소방서, 교도소, 공립학교, 폐기물 처리, 복지 서비스 등의 공공업무에 대해서도 민간기업의 진출이 가속되고있다. 비효율적이고 비용이 높은 공공서비스가 민간기업 서비스로대체되면서 재정지출 삭감, 서비스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정부의 규제와 지도를 통해 선진국을 추격하는 성장전략을 전개해온 일본의 경우 종래의 일본형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개조하는개혁정책으로서 규제완화가 추진되고 있다. 규제형 인프라 산업인금융업, 전기·가스·운수 부문의 열악한 국제경쟁력이 일본의 전통적인 강점 분야인 제조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에서이다. 규제완화를 통한 경제시스템 개혁의 방향은 신규진출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시장의 기능을 제고하는 한편 각종 기득권을 철폐해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달성하는 데에 있다. 이에 따라 유통 부동산물류 금융 통신 등 일본의 비효율적인 인프라 부문에서의 규제를집중적으로 완화하고 있다. 제조업체의 전력공급 사업 허용, 석유수입 자유화, 근로자 파견 사업 자유화, 정보통신·금융·운수 분야에서의 신규진출 자유화 등 2천8백여개 항목의 규제완화가 추진중이다. 작은 정부의 실현이 규제완화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미국 사례에 주목하여 일본도 행정개혁을 아울러 추진하고 있다. 특히 금융분야에서는 free(자유), fair(공정), global(세계화)의 3대원칙을 내건 하시모토 수상의 주도 아래 금융빅뱅이 추진되면서 대폭적인 규제완화와 함께 금융감독청 신설 등의 금융행정개혁이 가속되고 있다.◆ 미 국방성, 첨단기술 민간이전 경쟁력 높여선진국은 기존 산업 분야에서 개도국들의 추격을 받기 때문에 신기술이 뒷받침된 신성장산업을 끊임없이 개척해야 할 처지에 있다.미국의 경우 원래 특정 산업에 대한 육성책에 부정적이었으나 80년대말 이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 산업정책이 강화되었다. 일본반도체 산업을 재추격하기 위해서 일본식 산업정책을 모델로 관민협조형 연구·개발조직인 SEMA-TECH(Semiconductor Manufac-turingTechnology Institute)가 창설되기도 했다. 이는 군사용 이외로는최초로 미국에서 창설된 관민협조형 기술연구조합이었는데 IBM, 인텔, 휴렛패커드, 모토롤라 등 참가 기업들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SEMATECH을 주관한 정부조직은 국방성이었으며, 냉전종식과 함께 미국 국방성은 냉전 과정에서 축적한 첨단기술을 민간부문으로 개방 이전하는 산업정책을 강화하여 미국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반대로 일본은 미국형의 자유로운 경제 시스템의 장점을 도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규제 위주의 정책이 민간기업의 창조활동을 저해한다는 인식 아래 간접적인 지원정책을 위주로 산업정책을 개편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기업의 창조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환경 조성에 주력한다는 목적에서 정보통신 인프라의 고도화와함께 각종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물론 과거일본의 산업정책과 같이 미래형 유망산업 15개(의료·복지, 정보통신, 신제조기술, 환경, 해양, 바이오 등)를 지목하여 이를 육성하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정책은 기술기반 조성이나 규제완화 등 사업환경의 정비가 중심이 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왕성한 기술개발이 벤처기업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는 인식 아래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체계적인 정비 작업이 진행중에 있다. 예를 들어특정 신규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신규사업법의 대상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스톡옵션제, 벤처기업용 증권시장이 새로 도입되었다.미국과 일본의 산업정책은 기업의 자유로운 창조활동을 지원하는연구개발 환경 조성 등의 간접적인 지원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유사한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간기업들이 단기적으로 하기어려운 장기성 첨단기술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일본 뿐만 아니라 미국도 정부가 직접적으로 나서는 경향이 있다고 할수 있다.◆ 일, 부실채권처리 장기화로 구조개혁 지체미일 양국은 80, 90년대 버블 붕괴의 후유증에 시달렸으며, 버블붕괴에 따른 은행부실채권의 극복이 구조조정의 주요 과제였다. 미국의 경우 80년대 저축·대출조합(S&L)이 대량 파산하여 세계 유수의 미국 은행들에 대한 도산 소문이 끊이지 않는 시련을 겪었다.이 과정에서 거대은행간의 대형 합병이 거듭되었다. 미국 정부는정리신탁공사(RTC : Resolution Trust Corporation)를 설립하여 부실채권의 처리를 위해 즉각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책을 강구했다.RTC는 7백47개의 금융기관을 청산하면서 9백억달러가 넘는 재정자금을 활용했다. 미국 정부는 RTC 이외의 경로를 통해서도 6백억달러의 재정자금을 투입, 모두 1천5백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규모의재정자금을 부실채권 처리에 사용했다.부실채권의 조속한 처리는 미국 금융시스템의 재건에 기여하여90년대 미국경제 부활의 바탕을 마련했다. 한편 미국정부는 투자신탁 등을 육성하기 위한 세제 지원책을 실시하고 증권시장을 통한산업자금 순환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연기금 등을 활용한 증권관련직접 금융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부실채권 문제와 무관하게 리스크에 강한 자금 순환 구조가 정착됐으며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여건이크게 개선되어 첨단산업 육성에 기여했다.이와 반대로 일본의 경우는 부실채권 처리에 상당히 미숙하게 대응하여 90년대 일본경제의 부진을 초래했다. 일본정부와 금융계는 부실채권 처리를 미루다가 막상 은행 도산 등의 위기적인 상황이 닥치자 96년에 비로소 미국의 RTC를 모델로 한 정리회수은행을 설립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미국과 같은 대규모 재정지원에는 인색하기 때문에 부실채권 문제는 21세기 초까지 완전히 해결되기 어려울전망이다. 부실채권 문제의 장기화는 산업자금의 원활한 공급을 저해하여 일본 구조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기업 도산시 해당 기업조직을 재건하거나 청산하는 제도 정비가미숙하여 구조개혁이 지연되고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기업이 채무초과 상태에 빠져서 근로자나 채권자들에게 피해를 주기 전에 기업스스로 회사 자산을 매각하여 사업을 청산할 수 있도록 구조조정기업의 자산 매각 행위에 대해서는 세제지원을 검토중이다.미국과 일본의 구조개혁은 규제완화, 산업정책의 재편, 부실채권처리와 금융구조 개혁이라는 세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개혁을 통해 민간기업의 창조적인 활동 여건이 조성되면서 산업과 기업의 구조조정이 촉진된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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