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 고용, "덫인가 묘약인가"

미국 최대의 택배업체인 UPS가 지난 4일 이후 「개점 휴업」 상태다. 우편물분류-하역 등을 맡고 있는 계약직 근로자들이 「정규직전환」과 「연금 적용범위 확대」 등의 요구를 앞세워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UPS 파업은 미국 전역에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상당수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주요 문서와 물품 등의 운송을 UPS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9월 개학을 앞둔 학교들엔 완전히 비상이 걸렸다. 교과서가 제때 배달돼야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뉴욕 브로드웨이 일원의 한인 도매상들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다.업소마다 하루 평균 10상자의 물품을 주로 UPS를 이용해 실어날라왔는데 이번 파업에 따라 주문받은 물건을 제대로 출고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하루 2만∼3만달러어치씩의 물동량이 잠을 자게 됐고 그만큼 자금회전이 어렵게 돼 몸살을 앓고 있다.UPS 파업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미국 기업계와 학계에 「계약직(임시직) 다수 고용은 과연 경영의선(善)인가」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번 파업에 돌입한 UPS의 노조원 18만5천여명 대부분이 계약직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UPS, ‘정규직 전환 절대 불가’문제는 이들 계약직 근로자들이 이번 파업 돌입의 명분으로 「계약직에 대한 부당한 처우 개선」과 함께 「정규직으로의 전환」 등강도높은 요구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UPS 경영진의대응 또한 강경하기는 마찬가지다. 「정규직 전환은 절대 불가」라는 대답만을 반복하고 있다.「계약직」이 미국 기업들에 경영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계약직 근로자들에 대한 문제는 UPS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미국 기업들이 공유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특히 90년대 들어 상당수 미국 기업들이 구조 조정(restructuring)과 비용 절감의핵심 방편으로 정규직 종업원들을 계약직으로 대체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현재 미국내 각종 직장에 고용돼 있는 계약직 근로자들의 숫자는2천3백만명에 달한다. 전체 근로자의 18%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68년의 1천60만명, 전체 근로자대비 14%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미국 경영전문가들은 이번 UPS 사태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계약직고용증대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계약직 고용이 경영에 가져다 주는 매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고용비용을 절감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시켜 주는 건 기본이다.국가 전체의 거시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도 크다는게 기업들의주장이다. 정규직과 달리 계약직에 대해서는 매년 임금을 올려줄필요가 없으므로 임금상승에 따른 인플레발생을 억제할 수 있다는것이다.일부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계약직 채용 확대 추세에 대해 적극적인예찬론을 펴고 있다. 기업재무 분석기관인 리저널 파이낸셜 어소시에이츠의 연구원 마크 잰디는 최근 월 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계약직 채용은) 기업들로 하여금 경영수요에 보다 신속하게대응토록 하는 것 외에도 전반적인 경상비용을 신축적으로 운영할수 있게끔 해준다』고 강조했다.그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기업 중의 하나는 미국 동부의 도박도시아틀랜틱 시티의 쇼우보트사다. 포커, 룰레트 등 도박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이 회사는 1천여명의 종업원 가운데 절반을 계약직으로고용하고 있다. 이들 계약직 종업원에 대해서는 후생복지의 경우도정규직의 65%만을 제공하고 있다. 그만큼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있음은 물론이다. 『절감된 비용은 그대로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향상으로 돌리고 있다』는게 회사측 설명이다.그렇다면 기업들의 계약직 채용 확대가 국민경제에 과연 긍정적 효과만을 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하는 전문가들도많다. 계약직 근로자들은 의료보험을 비롯한 각종 후생복지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전체의 부담으로 귀결될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노동부의 이달 초 조사에 따르면 계약직 근로자들의 19%만이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정규직은 77%가 의보혜택을 누리고 있다. 또 계약직의 절반가까이는 유급휴가와 공휴일 휴무 등의 혜택을 못받고 있는 것으로조사됐다.◆ 계약직, 후생복지도 차별적 적용MIT대학교의 레스터 써로 교수(경제·경영학과)는 『이런 열악한조건에 있는 계약직 근로자들의 채용을 확대할 경우 직장내 분위기나 노사간 화합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이라고 말한다. 봉급도 많이 받지 못할 뿐더러 각종 혜택에서도 벗어나 있는 계약직 근로자들이 열성적으로 일을 할리 만무하며 생산성을 높이기도 힘들 것이라는 근거에서다.하지만 엄연한 현실은 이같은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계약직 고용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 경제가 구조조정기를 맞았던 91년 이후 대부분 기업들이 너나없이 「다운사이징」에 나섰으며, 그 유력한 수단으로 떠오른게 바로 정규직 감축과계약직 고용 확대다.원래 계약직은 50, 60년대 슈퍼마켓 등 일부 소매점포에서 시작된것으로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비유통업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힘들었다. 그러나 기업들 사이에 「무한 경쟁」이 시작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추가 인건비 부담 없이 제품이나 서비스 수준을 향상시킬 수만 있다면 기업들은 무슨 일이든 마다 않을 것이다. 그게기업의 속성』이라는게 하버드대 제임스 메도프교수(노동경제학)의 진단이다. 그는 『8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들에있어 인건비는 준고용비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든지 조정 가능한 변동비로 바뀌었다』고까지 말한다.이런 진단에도 의문은 남는다. 계약직 고용 확대 추세가 어디까지지속될 것이며, 그에 대한 임계점은 없는가 하는 문제다. MIT의 써로 교수는 『한 기업에서 계약직 비중이 50%를 넘을 경우 역생산성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계약직이 노동자의 다수를 차지할 경우 이들이 노동조합의 지도부를 장악할 것이며, 그 경우 회사측에 골치 아픈 요구를 내놓을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의 미국처럼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할 경우 계약직 근로자들의 발언권은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다.그러나 아직까지는 계약직 근로자들의 「조직화」를 염려할 단계는아니라는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의 전체 노동자들가운데 노조가입률은 10% 수준에 불과하며, 계약직의 경우 그 비중은더욱 낮다는 것이다. 또 미국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계약직 근로자의 20%(전체 근로자의 3%)만이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희망하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소위 「비자발적 계약직 근로자」의 비중이 아주낮음을 보여주고 있다. 절대 다수의 계약직 근로자들은 대학생이나가정주부, 정년퇴직자 등 「자발적 계약직 근무자」인게 사실이다.이들은 정규직으로의 전환보다는 시간제 근무에 따른 「자유」와「신축성」을 더욱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게 노동부의 조사결과다.이런 여러 요인들을 종합해 볼 때 이번 UPS의 파업사태를 지나치게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비자발적 계약직 근로자」들의 비중이 기업들의 노조를 좌지우지할만큼 크지는 않기 때문이다.어쨌든 UPS 파업을 계기로 기업들의 「계약직 만능론」이 어떤 변화를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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