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반도체로 21C 베팅

「두드린 돌다리도 또 두드린다」. 재계에선 동부그룹의 경영스타일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만큼 보수적이란 얘기다. 실제로 동부그룹은 어떤 사업을 벌이더라도 무척 신중하다. 지난 80년대 초 한국자동차보험(지금의 동부화재)을 인수할 때도 그랬고 95년 한농을사들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짧게는 3~4년에서 길게는 십수년까지검토에 검토를 거듭해 일을 추진했다. 「허세를 배격하고 실질을추구한다」는 김준기회장의 실상경영 철학이야 말로 이런 동부의성격을 잘 웅변해준다. 동부그룹이 다른 그룹들처럼 「2000년대 매출 ○○조원」식의 장미빛 계획도 발표하지 않고 김회장 스스로 언론과의 인터뷰를 이상할 정도로 꺼리는 이유도 여기 있다.그런 동부그룹이 최근 반도체 사업에 과감히 「베팅」하기로 해 업계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언론으로부터는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기도 하다. 「오는 99년 초부터 256메가D램을 월3만장씩 본격 생산하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다」. 이런 계획이 알려지자 업계의 첫 반응은 『동부가 갑자기 왠 반도체 사업이냐』는것이었다. 이에더해 『과연 동부가 진짜로 반도체 사업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어쨌든 동부그룹은 반도체 사업을 「실질적」으로 추진하고 있다.『진작부터 충북 음성에 확보해둔 30만평의 부지 위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이미 땅을 파기 시작했다. 미국의 IBM 등과 벌이고 있는 기술도입과 제품판매에 관한 협상은 거의 막바지 단계다.산업은행 서울은행 등과는 1조9천억원의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긴밀히 협의중이다』라는 게 동부그룹의 공식 설명이다. 동부의반도체 프로젝트는 장난이 아니라는 얘기다.그렇다면 동부는 왜 반도체 사업에 신규 진출하려는 것일까. 동부의 반도체 사업은 한마디로 이 그룹의 21세기 전략과 직결돼 있다.동부의 21세기 목표는 「세계 일류 기업」. 동부는 이를 위한 실천전략으로 그룹 주력사업을 첨단 미래사업 위주로 재편성해 간다는계획을 갖고 있다. 최근 △제조 △건설 유통 △금융 보험 등 3대사업부문별 부회장 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앞으로 동부는 이들 3대 부문별로 각각 첨단분야로의 진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그중 핵심을 이루는 것이 제조부문에서 반도체와 생명공학분야를 집중 육성한다는 것. 따라서 반도체 사업진출은 동부의21세기 화려한 변신을 위한 몸짓의 일부로 볼수 있다.◆ 한국 반도체산업에 파장 예고동부는 지난 69년 건설회사로 시작해 철강 화학 등 제조업과 보험증권 등 금융으로 다각화해 왔다. 이렇게 볼때 지금까지는 「옆으로」 사업을 벌려왔지만 이젠 보다 첨단 분야로, 다시말해 「앞으로」 사업을 펼쳐 나가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이로써 작년말 현재총자산 3조4천1백70억원, 총매출 3조1천5백30억원인 그룹 규모를더욱 키워 재계 20대에서 10대 안으로 진입하겠다는 야심도 숨어있다.『동부는 90년 이후 그룹의 장기비전을 세우는 과정에서 반도체 사업이 기존 사업분야인 소재금속과 화학분야를 활용해 창출해 낼 수있는 최적의 첨단산업이란 결론을 내렸다. 분명한 것은 반도체 사업의 특성과 향후 시장수요 등을 종합 검토할 때 우리의 계획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부의 반도체사업을 맡고 있는한신혁 동부전자 사장겸 그룹종합조정실장의 말이다.성급히 열발 뛰어나가기 보다는 한발 한발 조심스레 전진한다는 동부그룹이 과연 반도체 사업 진출로 21세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특히 동부의 반도체사업 진출은 동부그룹만의 문제라기 보다 한국 중추산업에 어떠한 형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대상이라고 할수 있다.★ 김준기 회장의 반도체 집념20년간 치밀한 준비…"이젠 한다" 지난 7월말 서울 중구 초동 동부그룹 사옥 15층 임원 회의실. 김준기회장은 여기서 20여명의 그룹 임원들을 앉혀놓고 자신의 반도체진출론을 역설했다. 『기업의 새로운 변신 노력은 시대의 흐름에맞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첨단 미래유망사업에 진출하는 게 관건이다. 그중에서도 동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분야는 반도체다. 우리는 첨단소재와 화학분야에 대한 기술과 인력을 갖고 있고시장 전망도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256메가D램의 경우 시장을선점할 수 있는 호기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김회장은 이같은 「반도체 특강」을 하며 세계 반도체 시장 전망 등에 관한 세세한 수치와 전문적인 기술용어들을 거침없이 사용해 참석 임원들을 내심 놀라게 하기도 했다.『그룹내 반도체 최고 전문가는 김준기회장이다.』 동부그룹안에서이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동부의 반도체 사업은 김회장 자신이 오랫동안 불태워온 집념의 결단이라는 게 그룹관계자의 귀띔이다. 지난 69년 고대 경제학과 재학중이던 24세의젊은 나이에 미륭건설(현재 동부건설)을 창업한 김회장은 70년대말부터 반도체 사업 진출을 꿈꿔왔다는 것. 지난 78년부터 사업검토에 들어가 82년 미국 굴지의 화학회사인 몬산토와 합작으로 국내최초로 반도체 기초소재인 실리콘 웨이퍼를 만들어 외국 반도체 업체에 수출한 것이 바로 반도체 사업 진출을 위한 첫발이었다고 그룹 관계자는 말한다. 또 동부제강 안에 신소재 사업팀을 두고 금속화학분야의 기술을 축적한 것도 향후 반도체 사업을 염두에 둔 치밀한 준비였다는 것이다.그런만큼 김회장은 누구보다도 반도체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해온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전문 서적을 통해 기술 트렌드에서부터 세계 업계 현황, 시장 전망에 이르기까지 전자공학 박사 이상으로 줄줄이 꿰고 있기도 하다. 자신있게 반도체론까지 강의하고 관련 임원들을 거세게 독려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후문이다.김회장은 지난 20년간 꿈꿔 왔던 숙원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도 그룹 사옥 7층 회장실의 불을 밤늦게까지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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