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시기·투자 "조건 좋다" 주장

동부그룹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놓고 업계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역시 성공 가능성 여부다.설령 사업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 등 기존 업체처럼 돈을 남기는 장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반도체 사업 자체가 뭉칫 돈을 계속 쏟아 부어야 하는 업종인데다 최근엔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하는 최악의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투자위험이 큰 사업인데 과연 동부그룹 정도의 덩치로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뒤따른다. 자칫하다가는 그나마 건실한중견그룹 하나가 또 부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한다.◆ 다결정 실리콘 제조기술 독일에 수출그러나 업계의 이런 우려에 대해 동부그룹은 단호히 『동부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우리는 자신 있다』고 주장한다. 동부는 이런 확신의 근거로 크게 세가지 이유를 제시했다.우선 반도체에 관한 한 동부가 무척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는 것.특히 동부는 자신들의 반도체 관련 기술 축적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꼭 드는 예가 국내 처음으로 개발한 실리콘 웨이퍼다. 동부는사실 지난 82년 미국의 몬산토와 합작으로 코실(KOSIL)사를 설립해 반도체의 핵심소재인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해 냈다. 이 회사는지금 실트론으로 이름을 바꾸고는 여기서 생산한 실리콘 웨이퍼를삼성 현대 LG 등 기존 반도체 3사에 공급하고 있다. 실트론의 경우LG그룹이 51%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동부는 49%의 주식을 보유하고있다. 또 지난 84년부터는 10년간 다결정 실리콘 제조공정기술을자체 개발해 이 기술을 지난 94년 실리콘 기술종주국인 독일 바커사에 수출하기도 했다. 이런 기술과 노하우 축적이 모두 반도체 사업진출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는게 동부의 설명이다.여기에 반도체 기술 인력도 꾸준히 확보해 지금은 가용인원이 2백여명에 달한다고 이 그룹은 밝혔다. 특히 현대전자에서 전무를 지낸 민위식 동부전자 부사장, LG반도체 출신의 강경일 동부전자 전무 등은 외부에서 영입된 핵심 멤버들이다. 이밖에도 금속 화학 분야의 경력 직원들을 기존 반도체 3사로부터 꾸준히 스카우트 해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둘째 시장 진입 타이밍이 좋다는 게 동부의 지적이다. 반도체의 경우 특성상 적기에 시장에 진출해 판매처를 사전에 확보하면 리스크가 거의 없는데 동부가 그 시운을 탔다는 것. 이미 미국 IBM 등 유력 기술도입선으로부터 트렌치방식의 메모리셀 구조를 갖춘 256메가D램의 제조기술을 도입키로 한데다 양산시점인 99년 상반기엔256메가D램의 초기시장이 형성될 전망이어서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는 얘기다.『올 하반기부터 64메가D램의 시장이 본격 형성되고 99년 상반기부터는 256메가D램 시장이 조성될 것이라는 게 세계 반도체 전문연구기관들의 일치된 전망이다. 따라서 99년초부터 256메가D램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세계 일류 반도체 회사들보다 한발 먼저, 아니면 최소한 비슷한 시기에 제품을 출시하는 셈이다. 동부가 절대 후발자가 아니라는 말이다』(동부전자 관계자). 실제로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16메가나 64메가 256메가D램 등은 생산설비와 기술이 완전히 달라 각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어서 동부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이기도 하다.◆ 핵심 기술·판매선 이미 확보동부가 셋째로 강조하는 것은 그룹의 투자여력이 충분하다는 점이다. 동부그룹 정도의 규모에서 1조9천억원을 투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아니냐는 의구심에 대한 해명이다. 『반도체 산업은 감가상각이 짧고 자금회수가 빠르다. 매출이익률도 매우 높은 업종이다. 그만큼 추가 투자재원을 확보하기가 쉽다는 얘기다. 대만의 경우 동부보다 훨씬 작은 회사가 성공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이유도 여기 있다』(안광조 동부그룹 이사). 반도체 사업은 자금투자 규모보다는 기술과 판매선의 안정적인 확보 여부가 성공의 최대 관건이라는 설명이기도 하다.또 사실 동부그룹의 덩치가 그렇게 작은 것도 아니라는 게 동부의주장이다. 동부는 지난해 금융 보험계열사를 제외하면 그룹 매출이3조4천억원 수준(재계 22위)이지만 금융 보험을 포함하면 외형이6조원에 달한다는 것. 더구나 계열사간 내부거래 비율이 2.6%로30대그룹의 평균인 35%보다 훨씬 작아 실제 외형으로 따지면 재계14위라고 밝혔다. 따라서 오는 2000년대 초엔 그룹 총매출이 15조원에 달할 것이란 예상인데 이 정도 외형에 1조9천억원 투자는 결코 무리수가 아니라는 것이다.그룹관계자는 또 국가전략 차원에서도 동부의 신규 진입을 긍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대만 동남아의 여러 업체가 미국 일본 등의 반도체 회사와 제휴해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대만은 지금도 반도체 회사가 15개에 달하고 미국과 일본에는 각각 38개사와 29개사가 있다. 한국이 앞으로도 계속 세계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려면 추가로 업체들이 참여해 반도체 산업의저변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 기존 3사의 경우 이미 각각13~17%에 달하는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데 수입선을 분산시키는 반도체 수요업체들의 구매관행상 더이상 시장확대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동부의 반도체 진출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명운과도 연결돼 있는 것이다.』동부는 이같은 주장을 통해 사업진출의 타당성을 역설하고 있다.하지만 이 주장들이 성공을 위한 「자기암시」인지, 아니면 실체적진실이 될 것인지는 좀더 지켜볼 수밖에 없다.★ 1조9천억원 투자 자금 조달 - 은행 입장"컨설팅사 결과 보고 결정하겠다"동부그룹이 반도체 사업 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핵심은 자금이다.총1조9천억원에 달하는 투자자금을 동부가 과연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 이게 바로 사업 진출의 열쇠란 얘기다. 특히 최근엔 대기업들의 연쇄부도로 금융권이 꽁꽁 얼어 붙어있는 상황이다. 동부로선「돈 문제」야말로 최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동부가 지금 구상하고 있는 자금계획은 신디케이트 론 방식. 투자금액중 3천억원은 자기자금으로 조달하고 나머지 1조6천억원은 산업은행과 주거래은행인 서울은행 등 여러 시중은행들이 연합해 일정 비율씩 대도록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들이 얼마나 협조적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동부의 반도체 진출은 포장도로와 가시밭길로 갈린다.이와 관련, 은행들의 입장은 무척 신중하다. 한보 기아 등에 혼쭐이 난 은행들이 대규모 투자사업에 몸을 사리는 건 당연하다. 은행들이 이례적으로 동부 반도체 사업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미국의유명 컨설팅회사인 AT커니에 의뢰한 것도 이런 이유. 은행들은 9월말이나 10월초쯤 나올 검토결과를 보고 지원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산업은행 관계자는 『사업성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원을 할 계획』이라면서도 『아직은 동부의 계획에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라고 한발 물러섰다. 이 관계자는 또 『동부의 재무구조가 건실한건 사실이지만 규모에 비해 너무 큰 투자인 것도 사실』이라며 『개인적으론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은행 관계자는 『자금을지원하더라도 동부가 자기자금 비율을 좀더 높여야 은행들이 안심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동부 반도체 프로젝트의 실제 칼자루는 은행들이 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