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족집게 역술인으로 변신]

신문기자와 역학자. 왠지 같은 류(類)의 사람들인 것 같으면서도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관계.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아내 전해준다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취재하는 것 자체가 한쪽은 사건이나 사실이고 또 다른 쪽은 남의 운명이란 점에서 천양지차다. 한데 이런묘한 관계의 직업을 오고 간 사람이 있다. 역술인 한정희씨(53).바로 그가 신문기자 15년 경력의 전문 역학인이다.『재미있어서 시작했어요. 내 사주도 이렇게 될 팔자였고요.』 왜기자를 그만두고 역술인이 됐느냐는 질문에 대한 한씨의 짤막한 대답. 『지금까지 한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습니다. 점이라는 게 운명의 이치학인데 그걸 알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해줄수 있거든요. 잘될 사람은 더 잘되게 도와주고 안될 사람은 화를피하게 해주고요. 정말 보람된 일입니다.』◆ 큰 딸에게도 역학공부 시킬 계획사실 그와 역학과의 인연은 오래 전부터 깊었다. 고등학교 시절 자기 집에 세들어 살던 무당 할머니의 당사주책에 호기심이 많았던한씨는 대학때부터 본격적으로 「끼」를 보이기 시작했다. 연세대법학과를 다닐땐 수업에 들어가기 보다 교정의 벤치에 앉아 친구들사주봐주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대학졸업후 절에서 고시공부를 할때도 졸음이 오면 사주책으로 잠을 쫓을 정도였다고. 『눈엔보이지 않지만 전기에 음과 양이 있듯이 세상도 음양으로 이뤄져있구나하는 동양적 세계관에 그때 눈을 떴습니다. 3년간 고시준비를 하면서 육법전서보다는 사주에 더 통달해 하산했어요.』고시를 포기한 한정희씨는 늦깎이로 당시 현대경제일보(지금의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도 장안에 유명하다는 역술가는 죄다 찾아다니며 사주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그는 신문기자로보다 점잘보는 기자로 더 이름을 날렸다.『재벌 총수나 정치인 등 취재원들은 사주를 봐준다고 하면 아주좋아해요. 처음엔 재미로 봤다가도 「앞으로 이렇게 되겠소」라고한 말이 맞아 떨어지면 그 다음부턴 계속 조언을 구하죠.』기자 겸 인생 카운슬러로 활약하던 그는 특히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과의 에피소드가 많았다. 『양회장과는 개인적으로 꽤 가까웠습니다. 그에겐 철강쪽에 절대 손대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연합철강때문에 말썽을 빚고는 망하더군요. 문민정부 들어 양회장이 그룹을다시 재건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는데 1, 2개 계열사는운좋게 찾을 수 있어도 재기는 어렵다고 조언해 줬습니다.』 한씨는 이밖에도 79년 10.26사태가 나기 전인 그해 9월 국권에 커다란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아웅산묘소 폭파사건이 나기전에도버마(미얀마)에서 큰 사고가 생길 것임을 예고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결국 점 잘보는 기자에서 아예 점만 보는 역술인으로 팔자를 고치기로 결심한 한씨는 지난 90년 15년간의 기자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후 처음엔 서울 압구정동에 신우초철학원을 열어 3년간 운영하다가 지금은 일원동 우성아파트 자택(전화:226-5891)에서 내방객들에게 사주와 기체조 생식 등을 통한 건강 상담을 해주고 있다.『앞으로 계획은 크게 두가집니다. 사주를 보는 명리학(命理學)과 기(氣)를 과학화해 교육시키는 대학을 세우는 것과 한국이 건강하고 강대한 나라가 되도록 좋은 사주를 가진 아이 낳는 법을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거예요. 최근 펴낸 「계획 임신과 신생아사주」라는 책도 바로 그런 계획의 첫발입니다.』1남 2녀중 지금 고3인 큰딸에게도 철학공부를 시켜 자신의 업(業)을 잇도록 할 계획이라는 한정희씨는 기자에서 역학인으로 탈바꿈한 자신의 운명에 만족해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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