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역술인들의 보금자리

60년대말 형성돼 현재 60여업소 밀집…'우리동네 명소'로 지정

미아리고개는 먼 옛날부터 서울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로 꼽혀왔다. 서울과 북방을 오가는 가장 큰 통로이자 관문이었던 까닭이다.6.25 전쟁 때만 보더라도 공산군이 이 고개를 넘어 서울을 점령하였으며 후퇴할 때는 이 길로 수많은 민족 지도자를 붙잡아 갔다.그 어려웠던 시절 우리 민족의 절절한 아픔을 담은 노래 가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러나 그 의미만큼은 날로 바래가는 느낌이다. 신세대들 가운데는이 노래를 기억하는 이조차 드물 정도다. 대신 미아리는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바로 한국 최대의 집단 역술인촌이라는 타이틀이 그것이다. 반면 한때 미아리와 비교되던 정릉이나 마포 등지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바람으로 점집이 거의 사라졌다. 요즘은 몇몇 업소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게다가 미아리에는 전국에서 점술업을 하는 4천5백여명의 역술인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대한역리협회 본부가 위치해 있다. 명실상부한 역술인의메카로 손색이 없는 셈이다. 관할 행정기관인 성북구청에서도 많은애정을 쏟고 있다. 관내에 있는 몇몇 사찰과 함께 미아리 일대 철학관이 몰려있는 곳을 「우리동네 명소」로 선정해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등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릉·마포, 재개발·재건축 바람에 사라져물론 미아리 일대가 전부 역술인촌인 것은 아니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성북구 동선2동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돈암동에서 미아사거리로 넘어가는 미아리고개 왼쪽에집단적으로 들어서 있다. 전체적인 업소 수는 대략 60여개 정도 되는데 대부분이 고개 옆 길가에 쭉 늘어서 있다. 게다가 비슷비슷한크기의 건물들이 똑같은 모양의 간판을 달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단층짜리 상가건물을 연상시킨다. 그 길이가 줄잡아 1백50m는 되어 보인다.미아리가 역술인들의 보금자리로 자리잡은 것은 지난 60년대 말,정확하게는 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철원역학운명감정원을운영하고 있는 이도병씨가 처음으로 이곳에 정착하면서 하나둘 모여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지금처럼 어엿한 건물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주로 미아리고개 도로변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궁합이나 사주 등을 봐주곤 했다. 이들은 미아리로 오기전까지는 대부분 남대문에서 남산에 이르는 도로변에서 같은 일을 했었다. 그러다가 남산주변 정리계획에 따라 근거지를 잃고 제각기 흩어졌다가 미아리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후 72년부터 본격적으로 역술인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이후 7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계속해서 역술인들의 행렬이 이어져 하나의 어엿한 동네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50년대 이전에는 종로 3가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며점을 쳤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역술인촌의 계보가 종로3가에서남산주변으로, 여기서 다시 미아리로 이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미아리에 자리잡고 있는 역술인들의 한가지 특징은 전부 시각장애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처음 자리를 잡을 당시부터 지켜져온 전통으로 지금도 정상인은 한사람도 없다. 이따금씩 정상인들이 찾아들기도 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는 후문이다. 맹인들이똘똘 뭉쳐 단합을 과시한 까닭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현실적으로불가능했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특히 이곳에는 점자도서실등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있어 집단 주거지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미아리가 역학인들의 제2의 고향으로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고는 하지만 이들에게는 말못할 고민이 많다. 특히 주변에 사는 주민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한 편이라 불편하기 짝이 없다. 쌍방간의 교류도 거의 없다. 일부 역술인들의 경우 개업을 하려해도 건물을 빌려주는 사람이 없어 애를 태우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 자신들끼리 뭉칠 수밖에 없다. 건물을 사거나 팔 때도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세계에서 해결한다.외부에서 점을 치러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지난해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올해의 경우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 역술인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이유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국내 경기가 전반적으로 불황에 빠져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명퇴시대를맞아 직장인들이 많이 찾아올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그나마 궁합을 보러오는 젊은이들이 있어 공백을 메우는 정도다. 올해로 미아리에서 15년째 철학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역술인은 이제껏 처음 보는 불황으로 손님이 50% 이상 줄었다며 하루에 손님한명 받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물론 미아리에서도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다. 일부 유명 역술인들은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최근 2년 사이 찬바람이 부는것만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미아리 역술인들에게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네 여기저기서 희망적인 모습도 많이 눈에 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현재한창 진행중인 시각장애인복지관 건립이다. 성북구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종합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인들에게 자활터전을 마련해주기 위해 건설중인 복지관은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오는12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 이곳에서는 점자소식지, 테이프, 점자달력 제작 등 기존의 점자도서실에서 해왔던 사업은 물론 시각장애인을 위한 차량이동봉사와 심부름센터도 운영하게 된다.미아리 역술인촌이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있음은 달라진 겉모습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특히 지난 6월말 구청의 주선으로 전체업소의 간판을 밝고 화려한 것으로 정비했다. 분위기를 새롭게 바꾼 셈이다. 새간판은 현직 교수가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흰 바탕에빨강, 초록, 노랑, 감청 등의 색띠를 두르고 있어 세련미를 물씬풍긴다. 구청측은 동네명소로 선정해 관리하고 있는만큼 분위기를일신한다는 차원에서 대한역리학회의 협조를 받아 간판을 바꾸도록유도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 하락이수의 대가 이천교씨올해 국운, 큰 일 그르치기 쉽다역촌서당(02-676-6870)의 이천교씨는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하락이수(河洛理數)로 점을 보는 역술인이다. 하락이수는 국배판으로5백쪽이 넘는 란 책을 바탕으로 운명을 푸는 방법이다.한글 번역판이 없어서 한문에 통달하지 않고서는 해석 자체가 불가능해 섣불리 도전하기가 어려웠다. 이천교씨는 이 원전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한글로 번역, 을 펴낸 인물이다.이씨는 하락이수를 『다른 역학과 달리 도덕을 중시한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역술에서는 돈을 번다면모두 좋은 운으로 보는 반면 하락이수에서는 어떤 식으로 돈을 벌었느냐에 따라 길흉을 가른다고 설명한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얻은 돈이라면 돈을 벌었어도 흉이라는 것이다.이씨는 하락이수를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역학의 종류부터 짚어줬다. 역학은 그 뿌리를 중국 은나라 시대의 하도낙서(河圖落書)에서비롯된 주역에 두고 있다. 오늘날 역학은 대개 상학 성명학 명리학복서 등으로 정립돼 있으며 대개의 술객은 이 중 어느 특정 부문에정통한 것이 보통이다.◆ 역술인, 종교인의 자세로 덕 쌓아야 …상학은 흔히들 관상으로 부르며 면상 혹은 수상에 의거하여 개개인의 운명을 살핀다. 여기에는 족상에 대한 관찰도 포함된다. 성명학은 글자 그대로 이름을 통해서 운명을 예지하는 방법을 말한다. 복서는 소위 점법으로 일반적으로 육효를 일컫는 경우가 많다. 주역의 64괘중 하나의 괘를 특유의 방법으로 얻어내 현재와 미래의 추이를 관찰하는 역술이다. 그때 그때의 목적에 따라 괘를 뽑으므로대개 일의 성사 여부를 알아볼 목적으로 취한다.명리학은 글자 그대로 명(命)에 대한 이치를 탐구하는 분야로 흔히사주팔자라고 부르는 사주학이 대표적이다. 중국에서 많이 활용되는 일종의 점성술인 자미두수와 일본에서 많이 쓰는 구성 등도 명리학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락이수는 사주팔자로 푼다는 것은 사주학과 같지만 사주가 목금토화수라는 오행으로 글자를해석하는데 반해 하락이수는 주역의 64괘 등을 바탕으로 숫자를 얻어 풀이한다.이씨는 하락이수의 장점을 도덕성과 함께 높은 적중률이라고 소개한다. 한 사람의 전체적인 운명과 연도별 운세를 풀이하는데 거의틀림이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하락이수는 사주에서 가장 중요한요소인 출생시를 바로 잡는데도 이용된다. 자신이 태어난 시간을잘 모르는 사람의 경우 운명을 제대로 감정할 수 없는데 하락이수로 괘를 얻어보면 출생시까지도 맞힐 수가 있다.이씨는 하락이수를 설명하기 위해 올해 우리나라의 국운을 뽑아 해석했다. 이씨의 해설에 따르면 「작은 일이 마땅하며 큰 일은 마땅치가 않아 뜻은 늘 불만스럽고 만사는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다.작은 일은 괜찮은데 큰 일을 그르치기 쉽다는 뜻이다.김씨가 보는 역술을 다음과 같다. 「대개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은앞날을 포기했으므로 미래의 운명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 반면 어려워도 그나마 희망과 기대가 있는 사람은 물에 빠졌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을 요량으로 점을 본다. 역술인은 이런 사람들에게 적절한판단을 내려주는 사람으로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에 종교인의 자세로 자신의 덕부터 쌓아야 하는 것이다.」 20여년간 과 등 한학을 공부한 역술인다운 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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