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학문으로 정립하고 싶다"

무당 김민정씨(35)는 유명세탓에 매스컴도 많이 탔건만 단 한 번도정면 얼굴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행여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마음에 상처를 줄까봐서다. 아들이야 엄마가 무당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지만 혹시 신문이나 잡지에 난 얼굴 사진을 보고아들을 아는 사람들이 쑥덕거리게 될까 두려움이 앞섰다.김씨가 이런 생각에 얼굴이 나가는 것을 꺼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자신이 무당이라는 사실을 창피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무당이천직』이라는게 김씨의 신념이다. 다만 아들을 아끼는 마음에서다.아들에게 아버지가 없어 더욱 그렇다. 김씨의 마음을 빼앗았던 아이의 아버지는 김씨가 무당이라는 이유로 떠났다고 한다.『다 운명이죠. 무당이 된 것부터 그렇구요. 젊었을 때는 저도 어떻게든 무당이 되는 것을 피해보려 했는데 그게 마음먹은 대로 안되더라구요. 피하려다 고생만 했지요.』김씨는 24살 때 처음 신내림을 받았다. 당시에 서울 종로구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새벽 자다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떡일어나 인왕산 선바위 뒤의 조그만 바위 앞으로 달려가 정신없이「내가 산신 할애비다」라고 소리를 치며 손뼉을 쳤다고 한다. 그것이 첫번째 징조였다. 그 때 김씨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그저산에서 버섯을 잘못 먹어 아들과 죽었다고 어른들한테 얘기만 들은육촌오빠를 만났다. 육촌오빠와 그 오빠와 함께 죽은 조카가 김씨앞에 나타나 한을 풀게 굿을 해달하고 했다 한다. 김씨는 그 뒤 조상을 좋은 곳으로 보낸다는 의미에서 집안의 선산과 계룡산 지리산을 돌며 산의 정기를 받은 후 인왕산 국사당에서 굿을 했다. 그 굿이 결과적으로 김씨의 내림굿이 됐다.『내림굿을 하고나서 곧 손님을 받기 시작했죠. 그냥 마지못해 했는데 너무 싫었어요. 창피하기도 하고 내 인생에 회의도 들고 진짜무당으로는 살고 싶지 않았어요.』김씨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어릴 때부터 쭉 살던 동네라 김씨가 무당이 됐다는 소문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 금방 퍼져 나갔다. 젊은 여자가 점친다고 터무니없는 말들도 많이 돌았다. 한창 친구들과 만나 즐기고 꿈에 부풀 나이인데 무당이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김씨는 『만신이 된후 아버님 상 당하고 아들의 아버지는 떠나고 힘든 일들이 줄줄이 이어졌다』며 『이런 엄청난 일들이 2년동안 계속되자 신을 떠나야겠다는 마음밖에없었다』고 말한다.◆ 운명은 타고나, 자기그릇 채우며 살아야2년을 무당으로 지낸 뒤 김씨는 무당이 된 이 땅을 떠나면 신령님몸주로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일본에서 어학원에 다니는 1년동안은 별 탈이 없었다. 이제는 정말 신이 떠났나 보다 하고 평범하게 살수 있을 거라는 꿈에부풀었다.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고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나 꾸짖기도 하고 나쁜 일들이 잇달아 생겼다.어학원을 졸업한 후 사진을 배울 생각이었는데 몸 상태가 이유없이나빠져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거의 산 송장이 된채 30살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신한테 쫓겨온것』이라고 표현한다. 귀국한 뒤로는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당의 인생을 받아들였다.『무당이 되고 보니 제가 사주가 세서 신을 안 모시면 안 되는 운명이더라구요. 무당이 안 됐으면 가수나 배우가 돼야 하는데 연예인 되기에는 미모나 재능이 모자라고, 잔나비날 태어나지 않고 말날에 태어났으면 얼굴이 예뻐서 연예인이 됐을 텐데…. 결국은 만신이 저한테는 제일 맞는다는 얘기지요.』 김씨는 자신의 운명이 무당이듯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그 사람에게꼭 맞는 운명이라는게 있다고 말한다. 운명은 타고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늘이 내야 재벌도 하고 대통령도 하는 것이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다 자신의 팔자소관 즉 그릇을 타고 나는데 단지 그 타고난 그릇을 어느정도 채우느냐는 개인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한다. 자기 그릇은 작은데 너무 많이 탐내면 화가 오고 그릇은 큰데 다 채우지를 못하면헛헛해한다는 얘기다. 김씨는 『자기 팔자에 맞지 않는 길을 가면마음이 허전하고 일도 잘 풀리지 않게 된다』고 결론을 내린다.김씨는 무속에 대한 자신의 이런 생각을 천주교나 기독교 불교처럼하나의 종교이자 학문으로 정립하고 싶다고 밝힌다. 『공부는 다하는 때가 있어서 나는 이미 늦었고 꿈일뿐』이라고 말하지만 학문으로서 무속을 연구하고 싶다는 소망을 얘기할 때는 숨길래야 숨길수 없는 열정이 내비쳤다.『무속도 하나의 종교인데 무당들이 못 배워서 제대로 대접을 못받고 미신 취급 받으면서 음지로만 떠도는게 안타까워요. 기독교나천주교에서도 신자들 개개인에게 기도도 해주고 병도 고치고 하잖아요.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기도하고 병도 고치는 거죠. 학문적으로 연구가 돼서 무속도 좀더 정당한 대우를 받았으면 해요.』요즘 김씨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에서 「인간과 종교」라는 제목의 특강을 받고 있다. 이 강의를 통해 구전으로 내려오는굿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해 보려는 게획을 갖고 있다.김씨는 『우리의 무속신앙이라는 것은 결국 가족 중심 사상』이라며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정한수 떠다 놓고 하늘을 향해 빌었던그 모성애가 바로 무속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산과 나무 물 돌등 자연을 보고 비는 것이 무속의 출발인데 자연을 보고 비는 것은결국 자신의 마음을 비는 것이라는 설명이다.마음을 비는 것보다 마음을 더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게김씨의 지적이다. 『주위에서 책을 써보라는 권유도 많이 하는데좀더 배운 후에 일반인들도 무속을 쉽고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포부도 덧붙인다.김씨는 현재 「김민정 사원(寺苑:02-379-8302))」이라는 작은 팻말을 집앞에 붙여놓고 손님을 받고 있다. 사원이라는 특이한 이름과너무나 작은 팻말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은 김씨의 집을 찾기도 힘들 정도다. 김씨는 『동네 사람들한테 무당이라고 소문낼 일도 없고 조용하게 일하고 싶어서』라고 팻말이 작은 이유를 설명한다.사원이라는 사전에 나오지도 않는 이름을 골라 붙인 것은 『사원이라 하면 신을 모시고 제를 지내는 곳이라는 정결한 느낌과 꽃울타리라는 아름다운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연약한 얼굴에 1백50㎝가 살짝 넘는 키의 작은 여자. 무당으로서의자부심과 아들에 대한 모성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러나 결코 위험해 보이는 줄타기가 아니다. 보기에도 무거운 칼과 창을 양손에 가뿐히 들고서 가볍게 하늘을 향해 도약하며 굿을 할 때의 모습처럼 신명나고 신비로울 뿐이다. 파란 하늘에 한 점 무늬를 수놓는 한 마리의 나비처럼 말이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