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기에 접어든 기업들이 크게 늘고 있다」한국 상장기업 5백99개사의 지난 96년 기업연령을 94년과 비교 분석한 결과다. 깊게 패인 불황의 골짜기를 거치며 심신이 지친 국내기업들의 현주소라고 볼 수 있다. 또 지난 94년 이후 3년간 업종간기업간 연령의 부침이 컸던 것도 두드러진 특징중 하나. 이는 불황기 한국 산업의 구조조정 결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듯하다.무엇보다 지난 94, 95, 96년 3년간의 경영지표를 연도별로 가중평균해 산출한 96년 기업연령의 가장 큰 특징은 94년에 비해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노쇠해졌다는 점. 이는 여러 가지 분석자료로 뒷받침된다.첫째, 연령대별 기업비율을 따져보자. 96년 기업연령의 경우 30대에 조사대상의 44.2%에 달하는 2백65개사가 포진하고 있어 가장 층이 두터웠다. 94년 연령조사때의 30대 비율 45.5%와 거의 비슷한수준이다.또 새파랗게 젊은 20대 기업은 94년과 96년 모두 3개사씩으로 똑같았다. 60대와 70대 이상의 늙은 기업의 비율도 큰 변화가없었다. 문제는 40대와 50대.사람으로 치면 한창 일할 때인 40대 기업은 96년 1백73개사. 전체의 28.9%를 차지해 94년(1백82개사,32.3%) 보다 줄어 들었다. 반면정년에 가까워진 50대의 기업은 1백41개사로 23.5%를 점유, 상대적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 94년의 경우 50대 기업은 92개사로16.3%에 그쳤었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감안할 것은 96년 연령산출조사대상이 신규 상장 등의 이유로 94년의 분석대상 5백64개사보다 35사가 늘어난 5백99개사라는 것. 따라서 기업수보다는 비율을참고해야 한다.둘째, 지난 94년보다 나이가 줄어든 기업보다 늘어난 기업이 많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94년 조사대상중 인수합병됐거나 상장 폐지된회사를 뺀 5백30개사를 분석해 보면 이중 연령이 증가한 기업은2백93개사에 달했다. 연령이 감소한 기업 2백37개사 보다 56개사가많은 셈이다. 연령증가 기업들의 평균 증가폭도 6.24세로 감소기업들의 감소폭 5.72세보다 컸다.◆ 신호전자통신 거평 등 20대마지막으로 국내 굴지의 기업들 연령 변화를 봐도 그렇다. 매출액순위 10대 기업중 현대자동차가 40세에서 51세로 11살이나 늙은 것을 비롯, 삼성전자(38세→41세) 포항종합제철(47세→54세) 등 대기업들이 상당히 노령화됐다. 어쨌든 40대 기업이 준 대신 50대 기업이 늘고 젊어진 기업보다 늙은 기업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건 한국기업의 전반적인 노화를 증명해주는 것이다.이는 94, 95, 96년중 가장 가중치가 많이 주어진 96년의 국내 경제상황이 침체기였다는 데서 이해할 수 있다. 경기후퇴로 기업들의매출증가율이 둔화되고 설비투자가 부진해 설비연령도 높아진 게영향을 미친 셈이다. 불황의 터널을 지나며 한국기업의 주름살이더욱 늘어난 것이다.업종별 평균연령을 보면 성장분야와 사양부문의 명암이 그대로 드러난다.우선 정보화라는 말이 실감나게 컴퓨터와 정보통신 관련 업종이 젊게 나타났다. SK텔레콤 데이콤 등이 속해 있는 통신업은 36세로 지난 94년에 이어 왕성한 나이를 계속 유지했다. 이는 각종 유무선사업들이 급격히 대중화되면서 매출액 신장률이 높고 설비투자 또한 꾸준히 이뤄져 설비연령도 계속 낮아졌기 때문이다. 또 자동차판매 및 수리업의 경우도 35세로 젊게 나타났고 전기 가스 및 중기업과 기타운수장비제조업 등은 각각 45세와 44세에서 38세와 39세로 회춘한게 눈에 들어온다.반면 소위 사양의 길을 걷고 있는 어업 광업 등은 모두 53~55세였다. 음식료 섬유 의류 목재 등의 업종도 주로 40대 중반과 후반에자리잡고 있다. 특히 경기부진을 반영해 여행서비스와 오락 및 문화 업종의 평균연령이 94년 각각 62세와 67세에서 64세와 80세로노화됐다.기업별로 보면 신흥기업들의 약진이 확연하다. 96년 가장 젊은 기업은 신호그룹의 신호전자통신(20세)이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신호테크라는 계열사를 흡수 합병해 모니터 및 무선호출기를 주종목으로 생산하면서 매출증가율이 대폭 증가한 기업. 젊은 기업 순위2, 3위는 각각 (주)거평(27세)과 한솔텔레컴(28세)으로 역시 지난해 30대 그룹에 신규 진입한 거평과 한솔그룹의 계열사들이다. 특히 한솔그룹의 경우 텔레컴을 비롯해 씨에스엔(33세) 화학(34세)전자(35세) 제지(35세)등 상장 5개 계열사가 모두 35세 이하를 기록하며 젊은 기업순위 20위권 안에 들어간 게 괄목할 만하다.◆ 세기상사, 80세로 가장 늙어반면 조사대상중 가장 늙은 기업은 지난 58년 창업된세기상사(80세). 서울의 대한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 회사는 상영영화의 흥행부진으로 매출이 계속 줄면서 연령이 94년 67세에서 크게 노화했다. 그 다음으로 늙은 기업으론 탄광업체인 동원(76세)과대일화학(73세) 아세아제지(72세) 등 이었다. 특히 70대 기업중엔94년 37세였던 동국종합전자(70세) 가 포함돼 있어 이채로웠다. 이회사는 지난 94년 연령이 91년(68세)보다 무려 31세나 젊어져 당시주목을 받았었다. 한데 이번엔 다시 70대로 떨어져 큰 폭의 부침을나타낸 것. 카스테레오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동국종합전자는 수출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해 매출이 급격히 줄어든게 노화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물론 기업연령이 젊다는 게 곧바로 그 기업의 우량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이지 못하다는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그러나 지난 3년간의 매출액 증가율과 임원평균연령 설비연령 등을토대로 한 기업연령이 그 기업의 역동성과 성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전반적으로 늘어난96년 한국 상장기업의 연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불황의 여파로 점차 활력을 잃고 있는 한국기업들이 앞으로 더욱노령화돼 시들지, 아니면 회춘의 꽃을 피울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