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국회감시에 각부처 기금 신설경쟁

「제3의 예산….」 방대한 정부 기금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의 정부 기금은 실제로 규모나 성격 면에서 일반회계 특별회계와 함께또 하나의 예산으로 자리매김할 만하다. 일반회계 예산을 웃도는규모, 각종 부담금이나 민간출연으로 조성돼 정부가 재정 목적으로사용한다는 점에서 예산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지난 9월말 현재 우리나라의 기금 수는 총 74개. 정부 부처가 직접관리하는 공공기금이 36개이고 기타 기금이 38개이다.부처별로는 재정경제원이 공공자금관리기금 국채관리기금 대외경제협력기금 등 16개의 기금을 보유하고 있어 「문어발 부처」로서의명성을 다시금 실감케 한다. 또 노동부가 고용보험기금 산업재해예방기금 등 8개, 농림부가 농수산물가격안정기금 등 6개, 통상산업부 교육부 문화체육부가 각각 5개씩의 기금을 관리하고 있어 다(多)기금 부처로 기록된다. 이밖에 건설교통부 보건복지부 국방부등이 3개씩의 기금을 갖고 있다.22개 정부부처가 너나 할 것 없이 평균 3개 이상씩의 기금을 갖고있는 셈이다. 이는 일반예산과 달리 기금의 조성이나 집행을 상당히 「자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데다 국회의 감시체계가 허술해정부부처들이 경쟁적으로 기금을 설치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융업계도 좌지우지사실 74개의 기금 수는 그나마 4∼5년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이다. 지난 93년엔 기금의 수가 모두 1백14개나 됐었다. 지난 60년군인연금기금이 처음으로 설치된 이래 70년 13개, 80년 45개 였던기금은 이후 급팽창해 90년 98개, 93년 1백14개로 늘었다. 80년대에 기금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이렇게 기금이1백여개를 넘자 정부는 지난 93년 유사한 기금이나 영세기금 등을통폐합, 정비하면서 지금처럼 70여개로 줄여 놓았다.그러나 문제는 기금의 수만이 아니다. 기금의 조성액이나 운용규모를 따져보면 거대한 기금의 실체와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할 수 있다. 더욱이 기금의 수는 93년에 다소 줄었지만 그 규모의 팽창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그렇다.97년 재정경제원이 발표한 기금백서에 따르면 96년말 현재 74개 기금의 총 조성액은 66조8천63억원. 이중 공공기금이 46조8천1백4억원이고 기타기금이 19조9천9백59억원이다. 이는 지난 95년의 기금조성액 55조9천4백60억원보다 20% 정도 늘어난 액수다. 특히 96년기금조성 규모는 그 해의 일반회계예산 60조1천80억원을 6조이상웃도는 수치여서 그 방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국민총생산(96년 기준 3백86조6천4백억원) 대비로 계산하면 17%를넘는 규모이기도 하다.올해의 경우 기금 조성액은 공공기금 46조3천4백42억원, 기타기금22조7백80억원을 합쳐 총 88조4천2백22억원. 작년에 비해 32%나 늘어났다. 역시 금년 일반회계 예산(67조5천8백억원)보다 20조원 이상 많은 액수이기도 하다. 불황으로 정부 예산은 명목상 긴축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기금만은 급속히 불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각 기금들이 금융기관 등에 맡겨 굴리고 있는 자산규모도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89년 20조를 갓넘었던 기금 자산총액은 91년 38조9천억원, 93년 49조1천억원,95년 82조7천억원으로 늘었다. 금년의 경우 기금 자산은 공공기금만 1백조원을 넘어 총 1백30조2천억원에 달할 예상이다.◆ 재정에 포함시켜야 작은 정부 가능이중 은행 등 제1금융권에서 굴리고 있는 자산은 공공기금4조9천2백억원, 기타기금 5조8천5백억원 등 모두 10조원을 넘는다.제2금융권에 예치된 돈은 2조4천억원에 달하고 재정투융자 특별회계에 예탁된 돈은 18조4천억원에 이른다. 또 각종 채권에 투자한돈은 43조1천2백억원, 주식으로 갖고 있는 것은 1조6천5백억원이다. 이밖에 부동산에도 공공기금이 7천억원, 기타기금이 8천억원등 총 1조5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기금이 금융업계를 좌지우지할만큼 큰손으로 행세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기금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조성액이나 사용목적 등이 모두 제각각천차만별이다.기금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보건복지부가 직접 관리하고 있는 국민연금기금.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2천3백93억원의 주식투자 손실을 내 비난의 초점이 됐던 기금이다. 지난 88년 국민연금법에 따라 설치된 이 기금은 지난해말 기준 조성액이 9조5천1백24억원, 금년말 기준으론 10조3천억원에 달할 예상이다. 주로 가입자들의 연금보험료를 조성재원으로 삼는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관리공단이란별도의 조직까지 둬 관리하고 있지만 운영이 부실해 도마 위에 오르는 단골 메뉴중 하나다.그 다음으로 규모가 큰 것은 건설교통부가 만든 국민주택기금으로지난해말 조성액이 7조7천1백17억원에 달한다. 국민주택 건설과 서민들에 대한 주택자금 융자를 목적으로 하는 이 기금은 정부출연금과 국민주택 채권, 주택복권 등의 발행으로 돈을 조달하고 있다.또 세번째로 덩치가 큰 공공자금관리기금은 「기금을 위한 기금」이랄 수 있다. 각 기금들의 여유자금을 통합해 관리하고 이를 재정투융자 등에 쓰기 위해 만들어진 탓이다. 지난 94년 설치해 재경원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 공무원연금기금 사립학교교원연금기금 체신예금기금 국민체육진흥기금 농지관리기금 문화예술진흥기금 직업훈련촉진기금 등 8개 기금은 원칙적으로 여유자금을모두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예탁해야 한다.다른 기금들도 여유자금이 생길 경우 여기에 예탁할 수 있도록 돼있다. 공공자금관리기금의 경우 지난해 조달액이 7조4천9백51억원,올해 조달계획은 9조2천9백7억원에 달한다. 이밖에 정보통신부가관장하고 있는 체신보험기금이 지난해 6조5천억원에 달하고 재경원의 외국환평형기금이 6조4천억원 정도 조성돼 있다.이처럼 우리나라의 기금은 정부 예산과는 별도로 조성돼 운영되고있지만 그 규모나 쓰임새가 예산과 별 차이가 없어 광의의 재정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우리나라 기금은 정책목적을 위한 특정 사업에 사용하기 위해 설치된 데다 재원조달원도성금이나 부담금 징수 등 준조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정부의 재정규모를 얘기할 때 기금을 빼면 의미가 없다. 이런 점에서 기금은전체 재정에 포함시켜 논의해야 하며 그 개선방안도 작은 정부 실현이란 차원에서 접근해야 옳다』(전경련 부설 자유기업센터 박성훈 연구위원).◆ 기금이란?기금이라고 하면 법률상 기금관리기본법에 규정한 법에 따라 설치돼 특정한 공공사업을 위해 사용되는 돈을 가리킨다. 지난 94년 제정된 기금관리기본법은 중앙관서의 장이 관리하는 기금과 사업 내용상 공공성이 큰 기금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금을 공공기금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기금을 설명해줄 뿐이다.이 보다는 특정 분야의 사업에 대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자금지원이 필요한 경우 예산과 별도로 정부가 직접 조성하거나 민간이 조성해 운용토록 하는 자금에 정부가 출연함으로써 정책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기금이라고 할수 있다.기금제도는 지난 61년 12월 예산회계법 제정때 도입됐다. 현행 예산회계법 제7조에 의하면 국가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한 자금을 운용할 필요가 있을 때 한하여」 법률로써 기금을 설치할 수있으며(제1항), 이렇게 설치된 기금은 세입·세출예산에 의하지 아니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제2항) 규정돼 있다. 요컨대 복잡다기한현실에서 국가의 특수한 정책목적을 위해 예산보다 좀더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조성된 특정자금을 기금이라고 말 할 수 있다.실제로 기금은 일반회계나 특별회계 등 예산이 국회 심의과정을 거쳐 확정되는데 반해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승인으로 확정돼 국회에 보고만 하면 되도록 돼 있다. 집행과정도 예산은 법에 의해 통제되지만 기금은 합목적성 차원에서 자율성이 보장돼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한마디로 예산보다 손쉽게 만들어 쓸 수 있는 재정자금이란 얘기다.한편 기금중 조성재원이나 사업의 공공성을 기준으로 기금관리기본법 시행령에 지정된 기금을 공공기금이라 하고 민간부문에 위탁관리되는 것을 포함한 나머지 기금들을 기타기금이라 한다. 기타기금의 경우 관할 중앙관서의 장이 승인하면 조성과 집행이 이뤄질 수있어 공공기금보다도 훨씬 더 운신이 자유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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