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자금관리기금이 부실 부른다

지난 10월초 25조2천3백억원이나 되는 천문학적 액수의 여유자금을굴리는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대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의원들의 질문이 예년보다 날카롭지 못하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경영진들은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느라 진땀을빼고 있었다. 김홍신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야당의원들의 질문공세로 국감장에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김의원은 김태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주식투자에서 2천3백억원을 날렸고 공공자금관리기금(이하 공자기금)에 16조 7천억원을 편입시키면서 금리차에 따른 손실 8천2백억원 등 모두 1조6백억원을 손실봤다』며 개선책을 물었다. 김의원은 또한 국공채(2조 6천억원) 회사채(4천5백억원) 그리고 금전신탁(1조8천억원) 주식(5천9백억원) 등 천문학적액수를 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9명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증권투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운용경력이 전무한 직원들이 자금을 관리하는데 문제가 없느냐고 따졌다.김의원의 질문에 공단측은 『공자기금법에 따른 의무예탁은 법률에규정된 것이고 주식이나 회사채 등 금융자산을 운용할 전문가의 충원은 정부의 인원동결 방침에 묶여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자기금에 여유자금 강제예탁 위헌 주장도국민연금관리공단에 대한 국정감사는 공공기금과 기타기금이 안고있는 대표적인 문제점들을 잘 보여준다. 각종 공공기금이 공자기금에 여유자금을 의무적으로 예탁함으로써 금리차만큼 손실을 보는문제와 금융자산 운용에 필요한 전문지식의 결여로 나타난 저조한수익률 그리고 공단특유의 무사안일주의와 방만한 경영 등이 국정감사의 도마 위에 다시 올랐던 것이다.공자기금은 공공기금의 여유자금을 의무적으로 예탁, 운용되는 자금으로 지난 93년 12월 여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공공자금관리법에 의해 설치됐다. 출범 당시부터 야당의 반대는 물론 연금가입자의 의사도 묻지 않고 강제 예탁하는 것은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시민단체의 위헌제청신청에 시달리기도 했다.이 기금은 10.3%대로(97년 6월말현재) 자금을 조달해서 농어촌 영세민 및 저소득계층의 생활기반조성, 환경개선사업 그리고 사회간접자본건설의 재원으로 사용된다. 융자금리는 보통 5.5%대. 지난해7월말 현재 조성된 금액은 10조 3천7백억원으로 기금예탁금(9조1천억원), 산업은행예탁금(1천1백억원), 이자수입(8천50억원) 등이 주된 재원이다. 국민연금기금 공무원연금기금 사립학교교원연금기금체신예금 국민체육진흥기금 농지관리기금 문화예술진흥기금 직업훈련촉진기금 등 8개기금은 원칙적으로 여유자금을 모두 공자기금에예탁하게 돼있다. 조성된 기금은 재특회계재예탁(5조6백억원) 국공채인수(4조4천억원) 이자지급(7천6백억원) 등으로 사용됐다.그러나 이 기금은 야당과 학계로부터 공공기금부실의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다. 무엇보다 공공기금들이 자신들의 여유자금을 시중은행이나 2금융권에 예치할 때보다 낮은 금리로 예탁하기 때문이다.민주당의 김의원이 국민연금관리공단이 8천2백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것도 12.05%(은행권 기준)의 수익률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자금을 10.33%에 예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근거한다. 국민연금기금 입장에서는 앉은 자리에서 금리차만큼의 손해를 보는 셈이다.정부는 공공기금의 반발이 심해지자 내년부터 조달금리를 1% 더 얹어 주기로 방침을 세웠다. 내년도 세수확보가 여의치 않아 기금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판단 아래 이들 공공기금의 반발을 무마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조달금리 상승에 따라 원리금 상환이 더욱 어렵게 됐다. 지난 94년부터 공자기금은 5년후 상환한다는 조건으로 공공기금의 여유자금을 조달해 왔다. 10.3%대로빌려와 5.5%대로 융자해주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5%대의 이차손을안고 있다. 이 때문에 야당의원이나 재정학자들은 만기가 도래했을때 원리금을 상환할 재원이 불투명한 점을 우려한다. 특히 농촌이나 도시의 저소득층, 경부고속전철이나 영종도신공항 등 대형국책사업 등에 자금이 흘러갔기 때문에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한다. 결국 그 부담은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란 주장이다.공자기금은 이밖에도 기금의 본래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즉 기금의 장점이 국회심의에서 벗어나 행정부처가 탄력적으로 자금을 집행하는데 있는데 이를 다시 국회의 심의를 받는특별회계에 편입시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국민주택기금, 취지와 달리 돈놀이에 연연공공기금 운용의 문제는 비단 여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낮은 수익률도 자주 지적되는 대목이다. 지난 10월 국감에서 국민회의 김원길 의원은 사학연금기금이 지난 92년이후 여유자금을 방만하게 운용해서 60여억원의 투자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기금운용주체의 자의적 집행이나 금융기관에 여유자금을 예치하면서 기부금이나 금리를 더 얹어줄 것 등을 공공연히 요구하는 폐단도 자주 지적된다.축산발전기금의 주무부처인 농림부는 지난해 「축산발전기금운용계획지침」에서 민간단체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방침을세웠다. 그럼에도 기금을 실제로 운용하는 축협중앙회는 대한양축협회, 축산기업조합중앙회 등 26개 단체 등에 인건비 자산취득비명목으로 1백5억원을 보조했다.국민체육진흥기금은 시중은행에 여유자금을 예치하면서 시장금리보다 2%나 더 높은 금리를 얹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과학진흥기금등은 금융기관에 기부금 납부실적을 근거로 예치금융기관을 선정하기도 했다. 91년 이후 지난해 9월말까지 27억원을 납부받았다. 심지어 기금의 설립취지를 무색케 할 정도로 돈놀이에 연연한 경우도있다. 국민주택기금은 국민주택채권을 5%대로 발행, 조달한 자금으로 무주택 서민들에게 8%대로 대출해준다. 95년말 현재 2조5백60억원의 이익잉여금을 남겼다. 지난해 감사원 정기감사에서 지적된 사항들이다.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것도 기금운용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공자기금은 94년 6월 설치된 이후 단 한번 기금운용심의회가 열렸다.하지만 당시 회의록이 작성되지 않아 누구 누구가 참석해서 어떤발언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그나마 이후로는 서면으로 기금운용을 심의, 의결해 왔다. 수십조원의 기금운용에 대한 책임소재를확인할 길이 없는 셈이다.국민연금관리기금의 운용심의회는 재경원장관을 위원장으로 보사부장관과 국민연금관리공단이사장 KDI(한국개발연구원)원장 그리고농협회장 대한변협회장 등 15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위원들은95년부터 올 7월까지 7번의 회의를 개최했는데 이중 6번이 서면회의였다.이같은 문제점은 공공기금이나 기타기금에 대한 감시·감독권의 부재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기금이 국회의 통제를 벗어나 운용된다는 취지를 이해하더라도 운용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높아지고 있다.한국조세연구원 임주형박사는 『기금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투명성을 강화하고 정부의 재정운용기조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 예산당국과 기금운용책임자들이 함께 운용방향을 결정하는 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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