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한번이면 족하다'

한보 우성 삼미 한양 건영.한때 한국재계를 주름잡던 대표적 기업들이다. 철강 건설 유통 업종에서 명성을 떨치던 업체였다. 그러나 지금 이들 그룹들은 과거명성을 뒤로한채 법원의 보호속에서 재기를 꿈꾸고 있다. 천문학적부채를 안고 회생책을 모색하고 있다.비단 덩치가 큰 대그룹만이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영토건 대한유화 낫소 등 낯익은 중견·중소업체들도 법원의 보호속에서 재기의 칼을 갈고 있다. 이들 법정관리기업들은 경영진의과욕이 빚은 무리한 투자, 장기간 지속된 경기불황 그리고 무리한외부자금 조달 등으로 부도를 맞았다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눈다.규모의 대소를 떠나 이들 업체들은 많게는 15년에서 적게는 1년씩법원의 보호를 받고 있다. 법이 제공하는 유예기간중에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 생존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서울지법 민사50부가 관리하는 기업중에서 최고참은 공영토건. 중동건설경기붐의 퇴조와 장영자·이철희 사건에 연루되면서 부도가났다. 당시 공영토건의 부채는 4천2백억원. 82년 5월 재산보전결정이 내려지고 같은해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03년까지 재기를모색하라는 배려였다. 법정관리도중 83년 동아그룹에 인수됐다. 동아그룹에 편입되면서 본격적인 회생책을 추구했다. 관급공사와 해외공사에 의존하던 영업형태에서 벗어나 아파트나 인텔리전트빌딩문화재복원사업 등 사업영역을 다각화했다. 경복궁 복원사업을 2백50억원에 수주한 것도 이같은 작업의 하나였다. 또한 동아그룹이사운을 걸고 추진중인 리비아 대수로공사에 적극 참여하면서 매출과 순익을 올렸다. 동시에 동아생명보험과 대한통운 등 그룹계열사가 발주하는 물량을 소화하고 있다.◆ 우성건설, 법정관리에도 매출 호조이같은 노력 끝에 지난해 3천2백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이 되살아나면서 부채상환도 순조로웠다. 올해말까지 1천1백억원의 개인채무는 모두 갚을 수 있다. 내년부터 상환에 들어가는 법인채무도미리 4백60억원을 갚았다. 상업은행에 대한 부채도 4백억원 가량을변제했다. 이흥열 기획실장은 『그룹총수가 제2창업이라는 각오로정상화작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이자까지 합할 경우 2천2백억원 이상을 상환했다』고 밝혔다.3년째 법정관리중인 대한유화도 정상궤도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 유화업계의 경기회복으로 매출액과 순익이 늘면서 부채상환이 순조로운 편이다.대한유화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은 합성수지의 공급과잉으로 국내외 판매가격이 하락하면서 채산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91년말 t당 52만원에 달하던 국내판매가격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두달전인93년 6월에는 45만원으로 떨어졌다. 수출가격도 t당 6백90달러에서5백30달러로 무려 23%나 하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울산에 제7공장을짓는 등 신규투자에 따른 금융비도 급증했다. 93년 7월말 당시 지급보증을 합칠 경우 8천2백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그러나 최근 2년새 유화업계의 경기가 좋아져 8백30억원의 순이익을 올리는 등 경영정상화의 전망을 밝게한다. 부채상한도 순조롭다. 회사측은 연말까지 2천9백억원의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전망이 좋지않은 올해와 내년도 합성수지 경기여부가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고 우려한다. 법정관리기간은 2004년까지 10년간이다.70, 80년대 고급아파트의 대명사였던 한양도 최근 활발한 재기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문민정부 들어 창업주가 신도시 아파트 부실공사와 노사분규 등으로 구속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여기다 해외공사와 아파트경기의 침체 등이 악재로 작용하면서 쓰러졌다. 특히각종 건설중장비와 유통업 진출을 위해 구입한 부동산에 돈이 잠기면서 부도를 맞았다. 93년 5월 부도당시 부채는 1조6천8백억원. 법정관리기간은 2015년까지이며 내년부터 5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본격적인 부채상환에 들어간다.한양은 법정관리중 새주인을 맞았다. 94년 10월 주택공사에 인수됐다. 이후 관급공사의 지속적인 수주와 임대아파트의 분양이 호조를보이면서 매출이 회복세를 보였다. 올상반기에만 4천3백억원에 달하는 등 올해 1조원 달성은 무난하다는 설명이다. 자체자금만으로공사를 진행할 정도로 경영정상화에 한발 다가섰다는 평을 듣고 있다.◆ 낫소, 자동화와 기술력으로 회생 근접지난해 1월 재산보전절차와 올 3월 회사정리절차에 들어간 우성건설은 아파트 건설로 명성을 떨치던 업체. 94년 13위(5천4백억원),95년 18위(6천4백억원) 그리고 96년 28위(4천7백억원)의 도급실적을 기록했다. 우성건설이 지난해초 서울지법으로부터 재산보전처분을 받을 당시 부채는 2조1천7백억원. 지난 9월중순 부채탕감방안등 경영정상화 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이 계획안이 받아들여지면 최장 20년간에 걸친 경영정상화계획을 추진할 수 있다.회사측은 채권단과 충분한 협의를 거쳤기 때문에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낙관한다.이와는 별도로 우성건설은 자금조달과 비용절감 등을 자체적으로추진하고 있다. 각종 비업무용 부동산을 처분하여 2천6백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고 인원축소와 관리비절감운동으로 1백억원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같은 노력 덕분에 법정관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6천9백억원, 올 상반기에 2천9백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정용진 부장은 『부도후에도 전국 29개의 아파트 건설현장의 공사를 예정대로 마무리했다』며 『한일그룹 인수실패후 인수조건이 완화된만큼 하루빨리 제3자가 인수, 정상화 작업을 추진했으면 하는 것이임직원들의 바람』이라고 소개했다.재기의 몸부림은 대기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중견업체와 중소업체들도 경영정상화를 추진중이다. 제3자 인수를 통한 경영정상화를 추진하는 대기업들과는 달리 이들 업체들은 기술력을 바탕으로재기를 모색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지난 71년에 설립된 스포츠용구 메이커 낫소는 테니스공으로 유명하다. 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의 운동구를 납품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80년대말부터 급등한 인건비와인도네시아 현지공장 건설을 둘러싼 노사분규로 부도를 맞았다. 당시 부채는 2백45억원.이후 경영정상화 노력을 꾸준히 기울였다. 경상북도가 운영하는 무역업체인 경북통상 사장출신의 고일남씨가 법정관리인으로 오면서경영정상화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생산설비를 자동화하여 3백여명에 달하던 근로자를 50여명으로 줄였다. 기존 5백개에 달하던 거래처를 10군데의 총판체제로 개편하면서 영업관리비를 대폭 절약했다. 또한 부도의 원인이 됐던 인도네시아 공장이 정상으로 가동하면서 매출을 높여 주고 있다. 김종명 과장은 『국내에서 1백억원,해외에서 1백억원 등 모두 2백억원의 매출을 예상한다』며 『매출증가와 함께 생산성 향상으로 법정관리기간인 2003년까지는 정상화할 것으로 확신한다 』고 주장했다.이들 법정관리 기업들은 과거의 영화를 뒤로 하고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나서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실패는 한번이면 족하다」는 각오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추진중이다. 과감한 인원정리, 조직축소, 무수익 자산 매각 등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그렇다고 법정관리 기업들이 모두 회생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이 지난 정기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법정관리기업의회생률은 30%에 불과하다. 정상화를 추진중인 임직원들의 모습에서비장감이 베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연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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