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의 열쇠는 '사람'

▶ 최근 벽산엔지니어링을 법정관리에서 해제시키셨다는데.경영정상화가 밑거름이 됐지요.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된지 3년만인89년부터 흑자로 돌아서면서 경영이 크게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법정관리 종결 이전에 채무를 조기 변제할 수 있었습니다. 당초에는 보증채무 7백14억원중 면제금액을 제외한 20억원을 95년부터 2009년까지 변제하도록 돼있었습니다.▶ 요즘같은 불황기에 법정관리를 해제한 특별한 이유라도.경영정상화를 단시일에 이룩함에 따라 법원이 법정관리 종결을 권유하였고, 수주평가시 감점 등 법정관리에서 오는 불이익을 극복하기 위함입니다. 법정관리에 따른 안정보다는 법정관리 해제에 따른기업의 대외이미지 제고와 자율적인 기업경영 쪽을 택한 셈이죠.벽산개발도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한 지분이 확보되는대로 법정관리를 해제할 계획입니다.▶ 법정관리인으로서 경영개선을 위한 조치를 든다면.원가절감과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노력입니다. 특히 엔지니어링사는소프트웨어회사이기 때문에 인건비가 매출액의 40%를 차지합니다.인력의 최소화를 위해 지원부서의 회사별 구분을 없앴습니다. 현재도 모기업인 벽산건설은 벽산엔지니어링과 법정관리기업인 벽산개발의 재무개선을 위해 자금은 물론 인력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법정관리인은 어떠한 위치입니까?법정관리인은 채권자를 보호하는 것이 최대임무입니다. 의사결정도회사의 경영보다는 주주에 대한 이익을 최우선시할 수밖에 없습니다.저희 회사는 갱생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채권자들의 부채를조기 상환, 이같은 걸림돌을 없애나갔습니다. 채권자들은 대부분은행들인데 계약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채무를 지불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법정관리의 진행과정은?재산보전처분이 내려지면 보통 주거래은행에서 관리인을 파견합니다. 인수자가 결정되지 않을 경우 한동안 구사주와 은행이 공동 관리합니다. 우성이 그 대표적인 예지요. 그러나 관리인으로 파견되는 은행임원은 그 분야에 대해 문외한이라 의사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남아있는 직원들도 소속감이 없어 은행임원 한명을 믿고 따르기 쉽지 않습니다.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부도가 나기전의 손실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시기의 손실이 더 큰 경우가허다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화의나 법정관리를 통해서 기업을 갱생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수만이 기업을 살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경험으로 본다면 다른 기업에 인수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소속감이없는 관리인은 전문성이 떨어지는데다 자금력의 뒷받침이 없어 있는 그대로 기업을 끌어나가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실이 늘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제3자가 인수,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법정관리인도 그 분야에 대해서 잘아는 인물을 선임, 전권을 부여하여야만 합니다.▶ 법정관리기업 인수시 고려할 사항은.은행은 일정한 기간을 거쳐 채권을 회수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은행이 제시하는 인수조건은 대부분 부채와 자산이 거의 제로 상태입니다. 상환조건은 물론 이자의 지불조건도 잘 살펴야 합니다. 국내기업인들은 대부분 법정관리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결여돼 있는형편입니다. 그렇다보니 경영상 부담이 되는 이자율에 대한 협상도소홀히 하기 일쑤입니다. 외국처럼 은행의 금리도 협상의 대상이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경영권 안정을 위한 지분을 어떻게 확보해줄지에 대해 확답도 받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법정관리기업의 주식을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고 버리거나깊숙이 간직하고 있어 경영권 확보를 위한 주식 매입이 어렵습니다.▶ 부실기업의 회생시 가장 고려할 점은.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다른 요소는 관리를 잘해서 숫자를맞출 수 있지만 사람은 불가능합니다. 불황 중에도 돈을 버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호황중에도 부도를 맞는 기업이 있는 것은 사람의수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부실의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라도?보고를 받는게 아니라 결재를 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결재까지 전부하다보면 세세한 내용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결재가 나지않으면 돈이 집행되지 않는 점을 이용하는거죠. 모르면 물어보고 잘못되면 야단치는 과정에서 사람들과도 친하게 됩니다. 일만을 갖고따지면 모욕감도 느끼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기존임직원에 대한 처리는?임원들은 경영에 대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인수후에는당연히 임원에 대한 물갈이가 불가피합니다. 필요한 소수인원을붙잡아 두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것도 사내의 분파가 생기지 않을 정도에 그쳐야 합니다. 저희 회사의 경우 인수전의 직원들에 대해 승급 및 보직 등에서 각별히 신경을 쓰는데도 인수전의 임직원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점은.무엇보다도 해외건설 현장을 원만히 운영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큰문제였습니다. 인수한 입장에선 어떻게든지 국제계약을 이행하지않으면 안될 상황이었습니다. 노사갈등이 증폭돼 직원들이 철수하면 계약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같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일 위주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갔습니다. 현장의 생리나 행태들에대한 이해가 현장임직원에 비해 떨어지지 않은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해외건설분야에서만 10여년 이상 근무한 까닭에 건설현장의 용어를 섞어가면서 직원들과 이야기하는 동안 서로를 이해하기시작했습니다. 일의 성과에 대해선 그에 상응하는 실적제를 적용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는 즉시 일정한 보너스를 지급하는 등 연봉제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부도난 기업을 경영한 관리인으로서 본 국내기업의 부실요인을 든다면.기업이 부도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습니다. 벽산개발의 경우기술은 우수한데 관리가 엉망이었습니다. 관리가 엉성해서 그런지임직원 가운데는 부자가 많았습니다. 당시 소유주께서 어려운 대외업무를 적극 처리해주다보니 임원들이 할 일이 없었다는 것도 알게되었습니다.▶ 부실기업의 회생 비책이라면.일단 기업의 규모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합니다. 인원과 조직이 축소되면 회사의 문제점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우선 재무구조를 튼튼히 한 뒤에 규모를 부풀리는 일은 쉽습니다. 벽산엔지니어링의 경우 인수당시 인원이 4백여명이었습니다. 2백60여명 수준으로 줄였다가 현재는 4백30명입니다. 줄이면 궁핍해지기 때문에 문제가 저절로 드러납니다.▶ 법정관리의 단점은.모든 경영활동은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월급 등 비용이 5백만원이상이 되면 일일이 서초동에 있는 법원을 찾아가 승인을 받았습니다. 행정상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보직이 정기적으로 바뀌다보니 담당판사들도 경험이 없는 비전문인들이 대부분입니다. 행정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킵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