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상황 출현으로 영역 확대

서울지법 민사수석부인 민사합의 50부가 새로운 기업처리 모델의시험장으로 떠오르고 있다.연초부터 한보, 삼미, 한신공영, 진로, 쌍방울등 재계순위 50위권내의 대기업들이 무더기로 좌초하면서 기업정리의 다양한 기법들이등장하고 있다. 부실기업의 독자적인 화의신청과 채권단의 이에 맞선 법정관리신청, 금융기관이 부실기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출금의 출자전환은 회사정리법이 만들어질 당시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이다. 경영권유지와 기업회생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는 화의 역시 추가운영자금이공익채권으로 분류되지 않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상장사중 최초로 화의인가결정을 받은 (주)동신의 2부종목 편입여부에 따른논란도 관련조항이 화의법에는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이는진로와 쌍방울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이러한 문제들이 한데 얽혀서 회사와 금융기관의 물고 물리는 접전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50부다. 그러나 이러한 다툼은 일반 소송처럼 법정에서 대립당사자간의 공격과 방어라는 형식을 취하지는 않는다. 단지 기업의 공익성과 채권단의 이익이라는 거시적인 목표에맞춰 자신의 입장을 재판부에 설득하는 개별접근 방식이다.법정관리를 포함한 회사정리사건은 법률적으로는 비송(非訟)사건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50부에 속한 판사들의 업무는 대부분 페이퍼 워크. 법정관리기업의 자금지출현황을 일일이 결제하고 신청서류를 검토하다보면 어느새 업무시간을 넘기기가 일쑤다. 대기업 총수의 업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관리기업이 능력이상으로 많다보니현장을 방문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결정문 한 장이 해당기업에 미치는 영향은절대적이다. 재판부가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내리는 정리절차폐지결정은 사실상의 파산선고다.50부가 가지는 막강한 권한의 실체는 법정관리신청의 인가와 관리인의 선임및 교체, 기업내 주요업무의 허가권.법정관리를 통해서도 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신청은 기각되고 기업은 부도처리될 수밖에 없다. 자산이 수조원에 이르는기업의 재산처분권과 업무집행권을 가지는 관리인의 임명도 50부의권한이다. 기업의 신규투자나 사업계획의 승인도 50부 부장판사의도장이 찍혀야 가능하다. 사실상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셈이다.그러나 50부의 권한을 독자적인 권한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법원이 경영활동을 직접 할수 없는만큼 관리인을 통한 감리감독이정확한 표현이다.이전에 50부에 몸담았던 한 판사는 『50부 판사들이 가지고 있는권한은 관리인의 경영활동에 적법성을 부여하는 정도이지 투자판단의 절대적인 합리성을 확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법원관계자는 『통상 재판은 과거의 일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50부는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판단하는 자리』라며 『전문경영지식이 부족한 판사들이 관리인이 올린 사업계획을 퇴짜놓는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법정관리인이 올린 결제내용을법원이 일일이 판단하기 어렵다는 얘기다.50부가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무시못할 영역은 따로 있다.최근 기업인수합병(M&A)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새롭게발생하는 모든 법률적 분쟁의 심판 역할이 그것이다. 한화종금과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M&A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사모전환사채(CB)발행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1차적인 판단도 여기서 이뤄졌다.국내 최초로 소비자파산선고를 내린 곳도 50부였다. 무분별한 신용대출이나 카드사용 등으로 과다한 빚을 지게된 채무자를 구제시키는 유일한 법적 수단인 자기파산신청에 대한 판단도 50부의 몫이다.여기에 다른 사람이나 단체의 각종 불법행위로 인해 침해당한 권리를 긴급히 보호하기위한 가처분신청도 50부 담당. 노조의 불법쟁의행위를 금지시키는 결정을 내리거나 퇴직보험금을 담보로 대출을받는 기업의 편법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 일례다.이러한 업무특성상 50부 판사는 법률은 물론 경제에도 정통해야 한다. 고도의 법률적 판단과 함께 경제전반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업대표와 근로자를 상대하기 때문에 설득력과 친화력도 있어야 한다. 거래은행이나 기업주 등의 로비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자리를 부담스럽게 할 때도 있다.특히 법정관리를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와 그 시기를 정확히 아는사람은 주심판사 1명 뿐이다. 일례로 상장사의 경우 회사정리절차폐지결정을 내릴 경우 관리대상종목에서 2부종목으로 편입된다. 이경우 관련주가는 1주일이상 상한가를 기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법원의 결정직전에 주식을 매입했다가 1주일후에 되팔 경우 엄청난시세차익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한 법정관리가 접수되기 이전에사건의뢰를 받은 변호사나 로펌은 사전에 50부에 신청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관례다. 확실하면서도 결정적인 기업내부정보를 최고경영자 다음으로 빨리 접할 수 있는 곳인 셈이다.그러나 50부 본연의 임무는 물론 회사정리사건의 처리. 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회사측과 채권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빨리 받아내려는 채권기관의 한 가운데서 양측의 입장을 조절하는 일이다. 이러한 작업은 그간 파산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회생을 위한 마지막 카드정도로 인식돼온 법정관리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작업이다. 앞서 제기한 M&A등 새로운 상황의 출현은 그간 고속성장의 혜택을 누려온 우리나라 기업이 이제 사후관리를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해결책을 스스로 찾아야 할 때가 왔음을 뜻한다. 50부가 내리는 결정문에 따라 새로운 기업정리의 선례가 생긴다는 점이 50부가 최근주목받는 이유다.★ 기업 갱생가능성 판단 기준50부 판사들이 기업의 갱생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지난해 6월 대법원은 법정관리개시요건을 엄격히 강화한 예규를 제정해 각급 법원에 시행토록 했다. 법정관리제도가 구사주에 대한특혜조치며 실제 기업회생률이 30%미만에 불과하다는 비난여론 때문이었다. 대법원은 부실경영의 책임을 물어 구사주의 주식을 전부소각하고 경영에서도 완전히 손을 떼도록 했다.50부는 대법원 예규외에도 독자적으로 공익성과 회생가능성을 기준으로 20여가지에 이르는 항목에 걸쳐 기업을 상중하로 분석, 업무참고자료로 활용하고 있다.이 자료에 따르면 공익성의 우선 판단기준은 기업규모. 자산 2백억이상, 자본금 20억이상을 법정관리기업의 최소조건으로 규정하고있다.여기에 경영지배형태와 상장여부도 참고대상이다. 사주의 주식지분이 높은 족벌체제의 경영구조와 비상장업체는 일단 낮은 점수를 받는다. 사주의 윤리성도 검토대상. 채무면탈이나 유예를 목적으로한 신청은 아닌지를 대표자 신문을 통해 면밀히 조사한다. 신청직전 회사자금을 도피시켰는지와 주식포기각서를 제출했는지도 파악한다. 업종과 향후 전망 역시 분석대상이다. 유통업체보다는 제조업체가, 사양업종보다는 첨단업종이 후한 점수를 받는다. 여기에수출주력업체일 경우 국가경제 기여도 항목에 추가점수가 주어진다. 특히 해외투자가 많고 매출액이 1백억원 이상인 기업일수록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다음은 회생가능성. 이 항목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주거래은행등금융기관의 추가자금 지원여부다. 경상이익과 당기순이익 규모도중요한 판단근거다. 총부채액이 자산의 1.5배 미만이고 최근 3년연속 평균매출액의 2배 미만일수록 회생가능성이 높다는 지표가 된다. 최근 5년간 평균영업이익이 총부채의 10%는 넘어야 한다. 악성개인사채가 많은 경우 중(中)이하의 점수를 받는다. 금융비용부담률과 총자산회전율이 동종업체 평균보다 낮은 기업은 재판부의고민을 덜어준다. 재고자산 회전율과 최근 3년간 매출액 영업이익률, 매출액 경상이익률도 동종업체 평균보다 낮을수록 수익성이 높다는 근거가 된다.이외에도 도산이나 부도전력이 있는지 여부, 부동산의 과다보유여부, 기계설비의 노후정도, 종업원 이직률, 노조의 협조정도도 회생가능성을 판단하는 자료가 된다. 또 브랜드의 가치나 통상산업부나재정경제원에 대한 의견조회결과도 참고사항이다.재판부 관계자는 『모든 항목에 걸쳐 우수한 점수를 받는 기업이법정관리를 신청하겠느냐』며 『이는 업무편의를 위한 내부 업무처리기준에 불과할 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실례로 마이크로 코리아의 경우 구사주가 분식결산을 하는 방법으로 3년 연속 적자상태인 기업을 흑자기업으로 둔갑시켰다. 흑자도산을 이유로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한 것. 물론 사주의윤리성과 재무구조, 수익성 등에 마이너스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국내 필기구시장을 대표하는 유일한 브랜드라는 점과 보유기술의특허가치 덕분에 무사히 재산보전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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