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진지함'에서 큰 차이 보여

지난 5년 사이 한국경제와 미국경제는 왜 극단적으로 희비가 엇갈렸을까.지난 92년말과 93년초에 걸쳐 출범한 김영삼 정부와 클린턴 행정부는 출범 초기 서로 입이라도 맞춘 듯 규제완화와 기업활력을 모토로 한 새로운 경제건설을 주창했다. 한국의 김영삼 정부는 민간의자율과 참여라는 신경제 원리를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제시했고 클린턴 행정부도 정부규제 축소와 민간기업 지원에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추겠다고 약속했다. 한데 그로부터 5년 뒤 ….한국경제는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파탄지경에이르렀고 미국경제는 사상 최장의 호황을 구가하며 멈출 줄 모르는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선 신경제의 실패를 질타하는목소리가 드높은 반면 미국에선 뉴 이코노미로 불리는 클린턴 경제의 성공을 칭송하는 덕담이 자자하다. 과연 무엇이 이렇게 두나라경제의 성패를 갈라 놓았을까. 이를 규명하기 위해 두나라의 정부역할과 기업의 구조조정, 국민경제의 메커니즘, 대외통상정책 등경제성장의 기본적 요인들을 따져보자.우선 정부의 역할. 이 부문에선 지난 5년전 두나라 정부의 출발점이 똑같았다. 한국이나 미국 모두 기업활동에 대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차원에서 행정구조개혁과 규제완화가 강력히 추진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영 딴판으로 나타났다.◆ 한국 부처 통폐합 불구 공무원 증가미국의 경우 실제로 정부 스스로 공무원수를 줄이는데 팔을 걷어붙여 공공부문의 비효율을 제거하는데 앞장섰다. 클린턴 행정부는 냉전종식에 따라 국방비를 과감히 축소하고 공무원도 24만명이나 잘라내 인건비를 1백억달러 이상 줄였다. 특히 정부의 국방비 감축으로 미국의 방위산업체들은 7년전 15개에서 현재 3개로 통합되는 구조조정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한국은 달랐다. 일부 행정부처의 통폐합에도 불구하고 정작공무원 수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었다. 전경련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의 공무원수는 지난 93년 87만2천5백43명에서 올해 93만1천6백15명으로 무려 6만명이나 증가했다. 또한 정부가 입으론 규제완화를 강조하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 규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게 기업인들의 지적이다. 더구나 국민합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인위적인 행정개편으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통폐합돼 경제정책의 전횡과 비효율을 더했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이처럼 한쪽 정부는 정말 자신부터 허리띠를 졸라맨 반면 다른 한쪽 정부는 말로만 「작은 정부」를 외쳤으니 기업들의 정책신뢰와구조조정 노력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기업들의 경우제너럴모터스(GM) 보잉 인텔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대대적인 정리해고와 자동화 합리화 등 다운사이징 및 리스트럭처링을 통해 경쟁력을 높였지만 한국의 기업들은 대부분 이를 흉내내는데 그쳤다.오히려 그 보다는 과거의 관성대로 사업다각화와 부동산 투자 등으로 외형확대에 열을 올렸고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게을리한 기업들이 많았다. 최근 대기업들이 잇달아 쓰러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이유다. 물론 여기엔 정리해고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거나 기업인수합병(M&A)에 걸림돌이 많은 등 기업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각종 규제들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맞는게 사실이다.◆ 미 국민, 정부 신뢰로 정책효과 극대화또 정책신뢰에 대한 차이로 국민경제의 메커니즘이 미국은 정상적으로 작동한 반면 한국에선 왜곡돼 더욱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기업과 국민이 정부 정책을믿고 따라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정책효과가 극대화되지만한국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근 한국의 금융위기가 단적인 예다. 기업들의 연쇄부도에 정부가 각종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금융기관들은 우려 기업의 자금을 급격히 회수하는 등 따로 놀고 기업들도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정부와 기업, 기업과 금융기관간 신뢰가 무너진 것이 신용공황을 불렀고 그것이 지금의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말이다.마지막으로 양국의 대외정책도 한국과 미국경제의 향배에 적지않은영향을 미친 것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국익 최우선의대외통상정책으로 수출을 늘리고 자국 기업을 보호해 뉴 이코노미에 일조했다. 미국이 주도해 세계무역기구(WTO)라는 다자간 협의체를 만들어 놓고도 필요할 때면 서슴없이 슈퍼 301조라는 양자간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바로 그렇다. 하지만 한국정부의 대외정책은홍보용 과시용에 머물러 선진국에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국민합의나 국내경제 수용여건을 무시하고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서둘러 가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치적 이유로 한미 한일 통상외교에서 저자세를 견지한 것도 문민정부라고해서 바뀌지않았다.결국 한국과 미국의 지난 5년간 경제정책은 구호는 같았지만 실제내용은 전혀 달랐던 셈이다. 이렇게 볼 때 두나라의 경제성적표가한쪽은 우등, 다른 쪽은 낙제로 나온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한미의 경제각료 임기한국의 김영삼 경제와 미국 클린턴 경제의 차이중 빼놓을 수 없는것이 경제장관들의 재임기간이다. 미국의 주요 경제장관 재임기간이 3~4년으로 비교적 긴데 반해 한국의 경제장관들은 1년을 채우고나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단명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선 정책의 일관성을 기대하기 힘들고 정책보다는 구호와 구상 뿐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실제로 미국의 클린턴대통령은 웬만해선 경제장관들을 바꾸지 않았다. 지난 93년 클린턴 집권 1기를 열었던 재무 상무장관인 벤슨과브라운은 각각 95년1월과 96년4월까지 재임했다. 그나마 브라운 상무장관은 항공기 사고로 사망해 교체가 불가피한 경우였다. 재무장관 후임인 루빈 장관은 95년1월 취임후 올초 클린턴 집권 2기에도유임돼 현재까지 3년째 재무행정을 책임지고 있다.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미키 캔터가 93년부터 96년까지 3년 이상 맡았다. 특히미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인앨런 그린스펀(71)이 지난 87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1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반면 한국의 경제각료 평균 재임기간은 10개월에도 못미친다.「장관(長官)은 없고 단관(短官)만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관 교체가 잦았다. 김영삼 정부 출범후 경제부총리만도 이경식 정재석홍재형 나웅배 한승수 강경식 등으로 벌써 6명이 돌아가며 맡았다.핵심 경제각료인 재무 통산은 물론 경제수석 한은총재 등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위기때마다 이뤄진 국면전환용 개각에 논공행상식 「신세 갚기」인사가 이어진 결과다. 어찌보면 한국 경제의 망조는「인사가 만사」라던 김영삼정부의 인사파행에서부터 비롯됐는지도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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