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책임 남편과 나눠라

웅진출판에서 편집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김혜경씨(33)는 언제일을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항상 안고 있다. 아이들 때문이다. 현재는 친정어머니가 함께 살면서 두 아이를 봐주고 있지만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내년이면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걱정』이라고 김씨는 말한다. 「아이들 공부는 엄마 책임」이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은 탓이다.김씨는 이미 육아문제로 사직했던 경험이 있다. 삼성출판사에 근무하다가 첫째 아이를 낳은 뒤 직장을 그만뒀다. 김씨는 집에서 2년반 동안 아이를 키우다가 기회가 닿아 95년에 웅진출판에 재취직했다. 처음에는 아이를 놀이방에 맡겼는데 아이가 적응을 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친정집에 의뢰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아이를 만나는 생활을 이어가다 뜻하지 않게 둘째 아이를 임신하게 됐다. 『첫째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둘째까지 가졌으니 어떡하나 눈앞이 캄캄했다』는게 당시 김씨의 심정. 김씨는 둘째를 낳은 후 『아버지는혼자 생활하실 수 있으니 당분간 같이 살면서 애들 좀 봐달라』며친정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이렇게 해서 친정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와 1년반을 끌어왔지만 친정부모님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하면서까지 일을 해야되느냐」고 말들이 많다.◆ 탁아모 둘 경우 비용 비싸김씨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전혀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주부나 취업을 원하는 주부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공통된 문제다. 여성의 사회참여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존재가바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자식새끼」인게 어쩔 수없는 우리의 현실인 셈. 육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주부들의 취업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과제일 수밖에 없다.현재 우리나라에는 1만4천여개의 보육시설이 있다. 여기에서 보육받고 있는 영유아는 40여만명 가량. 보육시설의 숫자는 94년말 6천88개에서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아직까지도 전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보육시설은 크게 보건복지부에서 관장하는 국·공립 보육시설(8.9%)과 노동부가 추진하고 있는 직장 보육시설(1.0%), 민간 차원에서설립된 민간보육시설(49.9%), 가정에서 소규모로 운영하는 가정 보육시설(40.2%) 등으로 나눠진다.아이를 맡길 만한 보육시설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믿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보육시설의경우 교사 한 두명이 20∼30여명의 아이를 돌보는 등 교사 일인당담당해야할 유아의 숫자가 너무 많다. 아이들의 안전도 문제다. 교사 한 사람이 돌봐야 하는 유아가 많다보니 아이들 하나하나에 일일이 주의를 기울이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간간이 사고도 일어난다. 주부들이 소규모로 운영하는 놀이방의 경우 이익이 남지 않거나 너무 힘들다 싶으면 금방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안정적으로오래 맡기기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웅진출판의 박현애(33)씨는 『비용이 좀 비싸도 좋으니 공신력있는보육시설이 직장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며 소망을 피력한다.현실이 이렇다 보니 직장여성은 육아문제에 대한 가장 손쉬운 해결책으로 시부모나 친정부모를 선택하게 된다. 시부모나 친정부모를모시고 살면서 육아를 전담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아이를 맡기고데려오는 수고를 덜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24시간 안심할 수 있다는장점이 있다. 시댁이나 친정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아이를맡긴 후 일주일이나 한달에 한번씩 찾아가 아이를 만나는 「별거가족」이 되기도 한다.직장여성이 선택하는 육아문제의 또다른 해결책은 아기보는 사람,즉 탁아모를 구하는 방법이다. 아이보는 할머니를 구해 같이 살기도 하고 동네 아주머니나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저녁에 데리러가기도 한다. 탁아모가 집에 머무르면서 아이를 돌봐줄 경우에는한달에 1백만∼1백30만원, 직장에 가 있는 동안만 아이를 맡길 경우 50만∼70만원 정도의 돈이 든다. 일반 보육시설에 맡길 때보다비싸기는 하지만 집이나 직장 주위에 가까운 보육시설이 없을 경우탁아모를 구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돈이 좀 많이 들더라도 그나마 좋은 탁아모를 만나면 주위직장여성들 사이에서 「행운아」로 부러움의 눈초리를 살 정도로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보육시간 제한 ‘가슴 졸인다’보육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돼 있는 점도 직장 여성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부분이다. 보육시설에서 아이를 맡아주는시간은 보통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아침에 맡기는시간은 별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퇴근시간을 매일 칼같이 맞추기란 쉽지가 않다. 일이 늦게 끝날 수도 있고 회식이나 야근이 있을수도 있다. 부인의 일이 늦을 경우 남편이 보육시설에 찾아가 아이를 데려오면 다행이지만 한국 남성이 모두 이렇게 「바다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데 「불행의 씨앗」이 있다. 남편이 이런 저런 이유로 육아문제를 회피할 경우 여자는 회사에도 미안하고아이한테도 미안한 「부채인생」을 계속해 나갈 수밖에 없다. 최근들어 24시간 보육시설도 조금씩 생기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은너무 부족하다.영아와 초등학교 이상의 학생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살 이하의 영아는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대부분의 보육시설이 맡기를 꺼리는 형편.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경우는 영·유아를 봐줄 보육시설도 부족한 형편에 초등학생까지 신경쓸 틈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고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직장여성들의 고민은 줄어드는게 아니라 오히려 커간다. 아이들의 「공부」문제 때문이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지엄마가 학교에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우리 교육은 어머니들이 아이를 쫓아다니며 봐줘야 하는 구조다.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의 경우 정서교육을 담당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자칫 잘못하면「나쁜 길」로 빠질 위험성도 있다.이래 저래 육아문제는 직장여성의 발목을 잡는 덫이다. 이 덫을 제거하는 방법은 「공자님 말씀」처럼 누구나 알고 있다. 보육시설과보육시간을 늘리고 교사의 봉급을 높여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이와 함께 가장 중요한 한가지, 남자들이 「절반의 육아 책임」을철저히 깨닫는 것이다. 아무리 완벽한 보육시설이 마련돼 있다 하더라도 「육아는 여자의 몫」이라거나 「아이 공부 잘하고 못하는것은 엄마 책임」이라는 의식이 있는한 육아문제는 여자와 일 사이를 가로막는 영원한 벽일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 보육사업 우주... 희망자 줄서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보육 사업 중에서 삼성복지재단은 모범사례로 꼽힌다. 삼성그룹은 89년부터 「삼성 어린이 집」이라는 이름으로 보육시설을 설립해왔다. 이 숫자가 현재 서울에 17개를 비롯,전국에 35개에 달한다. 이 중 삼성그룹 직원을 위한 직장 보육시설4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당 지역의 일반 맞벌이 부부를 위해 문이열려 있다. 삼성 어린이의 집은 생후 13개월 이후부터 취학전 아동까지 맡고 있으며 한달 비용은 2세 미만이 24만∼30만원, 2세가 20만∼23만원, 3세 이상이 14만8천원 가량이다. 한 어린이 집 당 원아 수는 30명∼2백40명으로 다양하다. 아이는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맡아준다.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삼성 어린이 집은 아이를 맡기려고 기다리는 대기자 수가 평균 5백여명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를끌고 있다. 이유는 비용에 비해 시설과 교육 프로그램이 우수하기때문. 삼성복지재단의 박송희씨는 『어린이 집에 들어오려고 3년씩기다리는 대기자도 있지만 결원이 생길 때만 아이를 받기 때문에중간에 들어오기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설명한다.삼성복지재단은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한 어린이 집당 한달에평균 1천만원씩을 보조하고 있다. 교사 인건비와 간식비 교재비 등을 맞추려면 이 정도 보조비가 필요하다는게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보육사업의 모범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보육시설 설립 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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