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으로 평생직업 노린다

생후 9개월된 딸을 둔 주부 고미진씨(29)는 요즘 서울대 도서관에파묻혀 산다. 그녀는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출근채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전 6시30분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 밤 10시30분까지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한 뒤 귀가한다. 눈에 박아도 시리지 않을 딸은경남진해에 있는 친정부모에게 맡겼다.딸아이 키우는 재미가 쏠쏠할 그녀가 「가정」을 박차고 「도서관」을 택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녀는 지금 사법고시를 준비중이다. 여자로서 평생직장을 갖고 전문성을 살리는 길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남편과 상의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주위에서는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행의 길에 나서지 않았느냐는 우려도 없지 않았으나 「한번 도전해 보라」는 남편의 격려에 힘입어 과감히 고시준비생 대열에 끼여 들었다.이런 목표를 세우기 이전 그녀는 평범한 오피스레이디에 불과했다.92년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이해 곧바로 모 케이블TV방송국 프로듀서로 취직했다. 전공을 살릴수 있는 이점이 있었으나직장생활 분위기는 꼭 그렇게만은 돌아가지 않았다. 전문성을 살릴수 있기는커녕 여자로서 당해야할 설움이 오히려 많았다. 지난해 1월 결혼한 그녀는 진로문제를 고민하다 여자로서 평생직장을 갖고전문성을 살릴수 있는 길은 자격증을 갖는 것밖에 없다고 판단, 올4월 과감히 사직서를 썼다.◆ 1인3역 마다않는 맹렬주부 급증지난 10월 정무2장관실에서 남녀고용평등의 달을 맞아 펴낸 「도전하는 여성은 아름답다」에 실린 남선화씨(32)의 사례도 자격증으로여성의 한계를 극복한 케이스에 해당한다.전업주부로 다람쥐 쳇바퀴같은 생활을 하던 남씨가 취업전선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93년. 지방교육공무원인 남편의 월급으로는 생계가 불안,부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남달리 그림그리기등 예능분야에 소질이 많았던 남씨는 대전여성회관에서 한복기술을 배워국가기술 자격증을 취득했다.이후 그녀의 인생항로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대전시여성회관한복지도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편 우리옷 발전을 위한 연구와 사업을 열심히 펼치고 있다. 자격증으로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은 물론 평생직업을 가지게 된 것이다.고씨와 남씨의 경우처럼 자격증을 취득, 평생직업을 갖고자 하는주부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같은 풍속도는 지난해말이후 명예퇴직및 정리해고 등으로 졸지에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 늘면서 급속히확산되고 있다.엄마로서, 주부로서, 며느리로서 1인3역을 마다하지 않고 이처럼맹렬주부들이 늘고 있는 것은 우선 쪼들린 가계사정이 가장 큰 이유이다. 현재 대부분의 가정은 엄청난 사교육비부담으로 인해 허리가 휠 정도이다. 남편혼자 버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주부들도 취업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주부들은 단순부업거리를 찾는 것보다는 비록 시간은 조금더 걸리더라도 평생직이 보장되는 자격증을 따는데 시선을 돌리고 있다.주부들이 단순히 남편 기살리기 위해, 또는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쯩」취득에 나서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전문분야를 살리고 더나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도전적인 삶을 살고 있는 주부들도 많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했다 결혼과 동시직장을 그만뒀던 주부들이 이 유형에 해당된다.◆ 능력 적성 맞는 자격증 선택을이에따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자격증교육기관에는 주부들이 부쩍늘고 있다. 지난 90년 설립된 여성자원금고의 세무사무원, 노무사무원, 관세사무원교육강좌에는 30~40대 주부들이 교육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3~4년전에는 미혼여성들이 많았으나 지난해말이후에는 기혼여성들이 6대4 정도로 많아졌다고 여성자원금고는 밝혔다.여성취업전문기관으로 YWCA가 운영하는 「일하는 여성의 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지난해말이후 이곳의 주부수강생수는 20%가량이 증가했다. 여성자원금고 김근화원장은 『주부들의 자격증도전은처음부터 욕심을 내기보다는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것을 선택해 하는 것이 좋다』며 세무사, 변리사, 관세사, 노무사, 텔레마케터, 환경기사, 공인중개사,주택관리사 등이 주부들이 도전해볼만한전문직분야하고 소개했다.★ 유현숙 부동산랜드서부이촌점 대표 인터뷰부동산랜드서부이촌점 유현숙(37)대표는 「또순이」기질을 갖고 있는 맹렬주부이다. 명퇴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갈수록 경쟁률이 치열해지고 있는 공인중개사시험에 아들 둘을 둔 주부로서 당당히 합격, 부동산시장에서 우먼파워를 과시하고 있다.지난 93년 공인중개사시험에 합격한 뒤 그동안 서울혜화동에서 동업으로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다 올해 6월 독립, 월평균 3백여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고졸학력이 전부인 그녀는 이런 와중에서도 향학열을 불태워 내년 2월 방송통신대 법학과졸업을 앞두고 있다. 도전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녀를 만나 주부에서 공인중개사로변신하기까지의 애환 등을 들어봤다.▶ 공인중개사시험에 응시하게 된 동기는.87년 결혼한 뒤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헤임인터내셔널에 취직했다. 책외판업무가 주된 업무로 남들보다 열심히 한 결과 관리직인 본부장직위까지 올라갔다. 남들은 여자로서 대단하다고 했으나 판매에 대한 스트레스가 늘어나 평생직장을 갖는 것이나을 것 같아 회사를 그만두고 공인중개사시험에 도전하게 됐다.▶ 주부로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입시학원 영어강사로일하는 남편 출근시키랴, 첫째 아이 유치원 보내랴, 시부모님 챙기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러나 포기하면 안된다는일념으로 오전 10시면 만사제쳐놓고 집부근 고척도서관으로 달려가부동산서적과 씨름한 뒤 오후 5시쯤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를반복했다. 학원에도 가지않고 거의 독학을 했다. 시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으나 시아버지와 남편이 격려를 해준 것이 큰 힘이 됐다.▶ 공인중개사를 택한 이유는.처음부터 공인중개사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91년 자격증을따야겠다고 덤벼든 분야는 감정평가사였다. 감정평가사는 다른 자격증과는 달리 1차, 2차시험을 보는 등 어려운 편이었는데 웬일인지 2차에서 자꾸만 떨어졌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공인중개사시험에응시했는데 운좋게 합격했다. 직업전선에 뛰어들어보니 공인중개사가 활달한 내성격에도 맞아 참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자로서 어려운 점도 많을텐데.일반적으로 그렇게들 생각할수 있지만 공인중개사는 주부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전문직업이 아닌가 한다. 아파트밀집지역의 경우 전세나 집매매 등은 대부분 주부들이 맡아서 하는데 같은 주부인 내가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고 있으니 마음놓고 들러 상담도 하고 세상사도 이야기한다. 그러다보면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가 있는 등 나름대로 이점이 많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주부들에게 조언을 한다면.마음만 먹지 말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면 아무것도 할수 없었을 것이다. 용기를갖고 일단 저질러 놓고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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