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 함께 벌어요

「암탉이 울어야 집안이 흥한다.」최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던 전업주부들이 잇달아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취업전선으로 나서고 있다.꽁꽁 얼어붙은 취업난에 주부들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은 한정돼 있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주부 「맹렬여성전사」들이 사회 곳곳에 침투하고 있다. 이 주부군단은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남자요,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라는 옛말을 무색하게 만들며 「직접 세상을 경영하겠다」는 의지로 고용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고있다.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 3분기 여성 취업자는 8백77만명. 1년새 15만명이 늘어났다. 전체 취업자 2천1백33만6천명 중 41.1%가 여자들이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도 50%를 넘어서 50.5%를 기록했다. 여성 취업자수가 늘어난 반면 전업주부는 1년동안 9만명이 줄어든 5백91만명으로 나타났다. 「노동시장」에 뛰어든 주부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 자녀 과외비 부담 ‘취업 촉매’여성 취업자수가 증가하긴 했지만 역설적으로 여성 실업자수도 함께 늘었다.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여성이 증가한만큼 일자리는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분기 여자 실업자는 17만명. 1년사이에 6만명이 더 늘어났다. 17만명의 여성이 일자리를 찾으러 취업전선을기웃거리고는 있지만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도대체 왜 이렇게 여자들이 직업을 얻지 못해 안달일까. 무엇이 여자들을 「취업전선」으로 내모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의 잇단 부도와 명예퇴직, 경영감량 등으로 인한 고용불안 때문으로 풀이된다. 「나도 일을 통해 발전하고 싶다」는 「우아한 자아실현」의 욕구를 넘어서 「일단은 먹고 살아야겠다」는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남편이 다니던 직장이 부도가 나거나 남편이 퇴직을 당했을 경우 눈앞에 닥친 생계문제로 인해 주부들은 「살벌한 생존경쟁의 장」으로 떼밀리게 된다.지난해부터 다단계판매회사의 판매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P씨(51·서울 서초동)는 사업을 하던 남편이 부도를 내는 바람에 일자리를구한 경우. 직장 경력이 전무한 P씨는 적당한 일자리를 찾던 중 별다른 자격요건을 요구하지 않는 다단계판매회사에 들어갔다. 보수는 일정하지 않지만 상품을 판매한만큼 어느 정도의 돈이 들어오기때문에 살림에 쏠쏠한 보탬이 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자녀 과외비 부담도 주부들의 「사회 참여」를 촉진시키는 역할을하고 있다. 자녀 과외비를 벌기 위해 파출부 일을 한다는 얘기는새삼스럽지도 않을 정도. 중고등학생 자녀를 뒀을 경우 한 자녀당한달 과외비는 최소 20만원. 그러나 20만원은 한 과목만 가르칠 경우의 금액일 뿐이다. 보통 한 학생이 2∼3개 과목씩 과외를 받고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한 달에 한 자녀에게 들어가는 과외비는 60만원을 웃돈다. 웬만큼 넉넉한 가정이 아니라면 주부가 뭐라도 해서 과외비를 보태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물론 「생계」의 차원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차원에서 일을 찾아나서는 주부들도 적지 않다. 특히 직장 경력이 있는 주부들의 경우 「집에만 있으니 퇴보하는 것 같다」는 심정으로 구미에 맞는직장을 구하고 있다.보습학원 영어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강정미씨(27·서울 용산동)는외국은행에 취직하려고 여러 곳을 수소문하고 있는 경우. 강씨는『학원 강사는 오래 할 수도 없고 경력으로 인정받기도 힘들어 지금 일반 기업에 취직하지 않으면 영영 기회를 잃을 것 같다』고 외국은행에 취직하려는 이유를 설명한다. 남편이 광고회사 직원으로생활은 넉넉한 편이고 학원 강사라는 직업도 주부들이 갖는 평균적인 직장보다 조건이 좋은 편이지만 강씨는 외국은행에 취직하고 싶다는 욕심을 쉬 버릴 수가 없다.그러나 사실상 직장을 찾아 헤매는 주부들이 얻을 수 있는 일이란거의 임시직으로 한정돼 있다. 기껏해야 다단계판매사원이나 보험설계사, 백화점 판매원 등 판매 영업직이나 학습지 교사, 배달원,파출부 등에 불과하다. 직장 경력 유무를 떠나 일단 전업주부면 「노동가치」를 대폭 깎여 대접을 받지 못한다. 직장을 얻는다 해도전공이나 경력, 특기와는 동떨어진게 대부분이다. 비정규 직원으로재계약 여부에 따라 언제든지 밀려날 수 있는 파트타이머나 판매실적에 따라 돈을 받는 불안정한 영업직을 주부들이 채우고 있는셈.◆ 남자 실업률 높인다 ‘오명’올 7월까지 노동부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설립한 인력은행에 따르면주부인력창구를 통해 취업을 희망한 주부 2백29명 중 취업한 경우는 44%인 1백28명에 그쳤다. 인력은행에 따르면 일자리를 구한 여성의 28%가 영업 판매직이었다. 경리·사무직도 28%였고 14%는 청소였다. 남자들이 꺼리는 단순 업무가 대부분 주부들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다.임시직이나 단순 판매직에 취직하는 주부들의 비율이 늘어나면서주부취업 증가가 고용구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감원이나 명예퇴직 등으로 직장을 잃은 남자들의자리를 값싼 주부 노동세력들이 채우고 있다는 것.결국 「주부군단」들이 남자들의 실업률을 높이는데 일조할 뿐만아니라 상근직 취업구조를 계약직 임시직으로 변화시키면서 고용의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주부들의 사회 진출이 고용시장을 유연화하고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한 가정이가장 한 사람의 봉급에 의존할 경우 기업은 매년 그 가족 전체를책임질만큼의 임금인상을 계속해야 한다. 반면 주부가 함께 돈을벌 경우 생계 책임은 부부 공동의 몫이 된다. 기업의 임금인상 부담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주부사원을 다양한 형태의 계약직으로 이용하는데 따른 인건비 감소효과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이제 「주부 취업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문제는 남성과여성이 같은 길을 나란히 걸으면서 고용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주부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직종에서 적절한 임금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풍토가 필요하다. 주부 스스로도 단순한노동력 제공자로 전락하지 않고 자기 능력을 개발하며 발전할 수있는 방안을 찾아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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