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 노리고 무차별 사격

지난 7월 2일 태국정부는 외환관리제도를 「복수통화바스켓」에서「관리변동환율제」로 변경했다. 태국통화인 바트화가 미국 달러화에 연동되는 하루변동폭을 중심환 대비 ±0.02바트로 운영하다가태국 중앙은행이 제시한 참고환율에 ±0.75바트로 확대했다. 사실상 바트화의 절하를 인정한 셈이다.이같은 조치는 경상수지적자가 심화되면서 예상돼 왔다. 경상수지는 그 동안 적자규모가 80억달러(94년) 1백35억달러(95년) 1백53억달러(96년)로 확대되었다. 경제성장률도 94년과 95년의 8%대에서지난해에는 6%대로 떨어졌다.태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외화자금을 주로 상환기간1년미만의 단기성 자금으로 조달해 왔다. 총외채에서 차지하는 단기외채가 90년의 29%에서 96년말에는 48%로 급증했다. 태국의 총외채는 6월말현재 9백30억달러.경제여건의 변화는 바트화의 절하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그러나외국자본 유치를 통해 경제발전을 추진해 온 태국정부는 외국자본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절하압력을 거부했다. 바트화 가치가 하락하면 해외투자가들의 송금가치가 줄어 이를 유치하기 어렵게 될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때를 놓칠세라 헤지펀드들은 현물환·선물환거래와 공매(short sale)로 바트화를 공략하기 시작했다.태국이 일찍부터 금융의 자율화, 개방화를 추진하여 해외자본의 이동이 쉬운 것도 태국중앙은행과의 도박에서 헤지펀드들이 승리하는요소로 작용했다. 태국은 74년부터 외국자본에 대한 문호를 개방해왔다. 외환위기를 맞을 당시에는 외국인 투자한도가 49%에 달했다.태국금융기관이 외국인투자가들에 대한 바트화대출을 허용할 정도로 금융시장을 급격히 개방해 왔다.◆ 현물환·선물환 거래로 바트화 공략헤지펀드들은 일본과 태국의 금리차를 이용한 차익거래(arbitrage)를 이용해 태국금융시장을 공격했다. 이들은 일본에서 저리의 엔화를 대거 빌려 20%대의 금리를 보장하는 채권시장에 투자했다. 거래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금리차익을 올렸다. 이들은 태국의 경상수지적자 누적으로 바트화 절하가 불가피한 것을 감지하고 채권시장에 투자한 자본을 달러화로 바꾸기 시작했다. 달러화 수요가급증하자 바트화는 급격히 하락했다.또한 헤지펀드들은 선물환시장에서 바트화를 집중적으로 매각했다.예를 들면 선물환시장에서 3개월물을 「1달러=32바트」로 판매하겠다고 계약을 체결한 뒤 실제로 현물환시장에서 3개월후에 바트화의가치가 「1달러=40바트」로 실현되면 헤지펀드는 달러당 8바트의이윤을 얻게 되는 방식이다. 헤지펀드들은 바트화의 가치가 선물환시장이 예측하는 32바트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집중 매각에 나선 것이다.이같은 시나리오를 실현하기 위해 헤지펀드들은 1백50억달러 이상을 선물환 시장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중앙은행은 바트화의 안정을 위해 선물환 매수계약에 응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1백50억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소진했다.헤지펀드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중 하나로는 바로 공매기법을 들수 있다. 주가하락이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 시장에서 판후판매자금을 운용하다가 하락시점에 그 주식을 되사서 갚는 대주기법을 환투기에 응용한 것이다. 먼저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의 역외시장이나 태국의 금융기관에서 바트화를 차입했다. 그런 다음 이를팔아 주식이나 채권 등에 일정기간 운용하다가 예상된 가격수준으로 바트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운용자산을 팔아 외환시장에서 바트화를 구매해서 금융기관에 되갚는 방식을 썼다.차입시점과 상환시점의 차액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예측만 한다면 별다른 자금도 소요되지 않는 이 거래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다.이같은 방식으로 바트화 공격을 주도했던 조지 소로스는 필리핀 페소화의 선물거래까지 합할 경우 40억달러 이상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거펀드도 10억달러를 불과 서너달만에 벌어들였다. 이들은치밀하게 준비한 작전계획에 따라 단기간에 수십억달러를 챙긴 것이다. 헤지펀드들의 무차별 공격 앞에 태국정부는 결국 IMF로부터1백72억달러를 긴급 지원받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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