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득실분석

한국은 지금 심각한 통화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의 환율은 급속하게 치솟고 있으며, 은행과 종금사는 돌아오는 외채를 막지 못해 외화부도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주가는 폭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금리도 급등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국제신뢰도는 땅에 떨어져 외국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만기일이돌아오는 자금의 기한연장을 거부당하는 상황이다.그동안 우리는 한국 경제는 건실하다, 다른 나라와는 다르다는 등한국은 마치 이러한 통화위기에서 예외라는 식의 말만을 마치 통화위기를 막는 주문처럼 되풀이 해왔다.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면 통화위기는 수많은 나라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번 사태가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다른 나라의 예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타율적이고 방만한 대출로 일관한 금융기관들, 차입위주의 경영을일삼은 기업들, 경쟁력 향상을 위한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이익집단들, 공언(空言)만 남발하다가 기회를 놓친 정책당국 등으로 인해우리 경제의 체력은 저하되었다. 이 상태에서 동남아의 통화위기에감염되어 지금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경제자율성 위축 감내해야정책당국은 그동안 외환시장에 대한 개입과 몇번의 안정시책 발표를 통해 이러한 위기상황의 진전을 막아보려고 했으나 별 효과가없었다. 그러다가 지난달 19일 비교적 강도 높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지만 외환공급 대책이 미약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수 없었다. 이를 입증하듯 다음날 환율은 10%로 확대된 가격제한폭까지 상승했고 외화자금난은 계속되었다. 그후 정부는 외화부족을해소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 정부를 접촉했으나, 이들은 IMF를 통하지 않는 단독 자금지원에 난색을 표명했고, 결국 우리나라는 IMF에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우리나라에 지원되는 IMF 자금은 그 성격상 일시적으로 외화부족때문에 국제결제에 어려움을 겪는 국가에 지원되는 단기성 신용자금이다. IMF는 그 설립 목적상 회원국이 국제수지 문제로 어려움을겪을 때 돕는 것이 주요 기능이므로, 55년부터 회원국이었던 우리나라에 이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이 자금에는 조건이 붙는다. 회원국은 이러한 외화부족을야기하게 된 원인을 시정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즉 회원국이벌어들인 외화보다 쓰는 외화가 더 많아서 생긴 문제이므로, 단기적인 해결책으로는 먼저 경상수지적자를 줄여야 한다. 먼저 이를위해 긴축정책을 쓰게 된다. 이에 따라 성장률 목표도 하향 조정되는데 95년에 지원을 받은 멕시코의 경우 그해 성장률 목표가 5%에서 마이너스 6%대로 대폭 낮춰졌다. 올해 8월에 자금을 받은 태국도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3∼4%로 낮아지게 되었다. 따라서 긴축정책의 일환으로 세율이 인상되고 재정지출이 삭감되며, 공공요금이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세율인상과 재정지출의 삭감은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한 국가에 대해서는 재정건전화 조건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재정수지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재정긴축의 규모는크지 않을 전망이다.또한 자본유입을 늘리기 위해 대외 부문의 자유화를 요구하게 된다. 환율의 변동폭을 늘리거나 변동환율제도로 바꾸고, 자본시장의개방폭을 늘리도록 요구한다. 주식 및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보유한도가 늘어나고, 직접투자 규제가 완화되며, 국내 M&A 시장의 개방폭도 확대될 것이다. 또한 외국 금융기관의 진출과 외국인의 국내금융기관 참여확대를 요구할 것이다. 멕시코의 경우 외국인의 국내은행에 대한 투자가 자유화되었고 태국의 경우도 외국인이 10년간국내 금융기관의 지배 주주가 될수 있도록 했다.IMF는 국제수지문제 해결을 위한 단기적인 대책 이외에도 구조적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도 요구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상수지 적자가 작년 2백37억달러에서 올해는 1백40억달러로 크게줄어들었다. 재정이 건전하며 물가가 비교적 안정되어 있어, IMF의요구사항은 현재 거시경제의 단기적인 문제보다도 금융부문개혁과부실채권 처리 등 구조적인 대책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태국에서는 이미 91개 금융회사 전체의 반수를 넘는 58개 회사가 영업정지되었고, 인도네시아에서도 16개에 달하는 은행이 강제청산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부실 금융기관의 자본금 확충, 영업정지, 인수합병 등을 통한 금융부문 구조조정이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다.이러한 요구조건이 따르는 IMF 구제금융을 받았을 때 우리나라에는어떠한 득과 실이 있을 것인가? 먼저 득부터 따져보면 단기적인 혜택으로는 당장 외화부족이 해결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위기는장기적인 상환능력의 위기라기 보다는 단기적인 유동성의 위기, 신뢰성 위기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IMF 구제금융을 받는다는 사실은 실제로 들어오는 IMF 자금도 자금이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용도를 높여 그 동안 자금의 상환기한 연장이나 추가공여를 꺼려했던 국제 민간 금융기관들의 태도를 바꾸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경제정책의 기조가 IMF의 요구조건에 따라 결정되므로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높여 이에 대한 신인도 제고에도 기여할것이다.그러나 보다 중요한 혜택으로는 이것이 그동안 우리가 타성과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외면해왔던 구조조정과 개혁을 본격적으로 실시할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은당분간 우리에게 많은 어려움을 줄 것이다. 성장률이 낮아지고, 세금이 늘어나며, 일부 부문에서는 실업률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이는 그동안 우리 경제에 만연된 비효율과 경직성을 해소하고,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강화할 좋은 기회이다. IMF의 이행조건은 우리나라의 위상하락과 경제주권 포기라는 의견도 있으나, 위상과 주권은 자체적으로 능력이 있을 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우리의 문제점을 자인하고 겸허한 자세에서 우리 경제의 개혁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구조조정과 금융개혁 이룰 계기그렇다면 IMF의 구제금융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인가?그렇지는 않다. IMF의 자금을 받고도 문제해결에 실패한 국가의 예는 얼마든지 있다. 비근한 예로 이번 8월에 지원을 받은 태국을 보면 정쟁으로 인한 정치불안과 이행조건에 대한 저항감이 높아 일부개혁조치를 철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결과 태국의 통화위기는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이에 반해 멕시코의 예를 보면 IMF에 지원을 요청하기 직전 정부, 기업, 노동조합의 대표들이 만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합의문에 서명하며 한뜻을 모았다. 그 결과 멕시코는 통화위기를 치른 다음 해인 96년에는 5.1%의 성장을 이루었고올해는 8.5%의 고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우리의 상황도 낙관할 수 없다. 멕시코의 경우 페소화의 평가절하로 수출이 급증했지만, 우리는 경쟁국들이 모두 큰 폭의 평가절하를 겪고 있어 급속한 수출증가를 기대할 수도 없다. 또한 많은 이해집단들이 아직도 경제를 살리기 위한 개혁을 달가워하지 않는 실정이다. 대통령 선거로 정치권도 분열된 양상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자본시장 개방의 결과 핫머니성 단기자본의 유입이 늘어날 것이예상된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제대로 구조조정을 이행하지 않을경우에는 장래에 더 큰 규모의 통화위기가 재연될 수도 있는 것이다.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우리의 자세는 결코 안이할 수 없다.지금의 희생을 감내하고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는 것만이 지금우리 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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