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사례/일본

『소식들었어? 자진 폐업했다는데….』 3일 연휴 첫날인 지난 11월22일 오전 4시반 야마이치증권 조사관련부서의 K차장(49)은 동료의전화를 받고 벌떡 일어섰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내가 올해로서 직장을 잃게되는가….』 이전부터도 풍문이 떠돌기는 했다.외자계가 매수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자사주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빨리 마지막날이찾아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등학교졸업과 동시에 시작된 지난 30년동안의 증권맨 생활이 머리속을 스쳐간다. 한달에 한번씩 구두밑창을 바꿔야할 정도로 열심히 뛰었던 지점 근무시절. 대형고객에게 손해를 입힌 죄로 무릎이까질 정도로 앉아서 빌었던 영업맨 시절. 회사를 위해, 고객을 위해 모든걸 바치면서 보낸 지난 반생이었다.◆ 대규모 고급인력들 생활기반 잃어이날 하루종일 TV뉴스를 놓치지 않고 체크했다. 대장성 나가노증권국장이 『야마이치가 2천억엔 이상의 장부외채무를 갖고 있다』고발표했다. 『그것밖에 없을까』하는 우려가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회사의 자기자산은 약 4천3백억엔. 장부외채무가 더 늘어나 채무초과상태가 되면 자진 폐업으로 정리가 되질 못한다. 영업정지처분을 피할 수가 없게 되고 7천여명은 길거리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옆에서는 처와 대학3학년인 딸(21), 회사원인 아들(25)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었다.그는 회사가 임차해준 사택에서 생활하고있지만 언젠가는 마이홈을마련하겠다는 꿈을 키워왔다. 고생하고 있는 처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순간에 이 꿈은 무너지고 말았다. 처는 나무라지 않았다.『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오히려 격려를 했다. 1년 남은 학비를 걱정한 동생이 장학금 안내서를 급히 찾아 읽고 있는 모습을본 아들이 그만 엉엉 울기 시작했다.야마이치증권의 폐업으로 K차장처럼 실업 위기에 놓인 사람은 정확히 7천3백30명. 계열사까지 합치면 9천4백여명에 이른다. 내년에입사키로 내정돼 있던 4백90명도 일단은 일자리를 잃게 됐다.야마이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들어서만 도카이교교 닛산생명보험다이토공업 교타루 오가와증권 야오한재팬 신요증권 훗카이도다쿠쇼쿠은행 다다건설 이스즈건설 등이 도산했다. 이들 기업의 총종업원수는 2만6천7백60명에 이른다. 계열사 및 관련회사로의 이동 전직 등을 통해 일자리를 찾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자리를잃을 것으로 우려된다. 대규모 고급인력들이 생활기반을 잃어 버린채 길거리로 내몰려야할 위기를 맞은 것이다.기업도산이라는 돌출변수를 제외하더라도 90년대 들어서면서 고용환경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 다이와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90년에 2.1%였던 일본의 실업률은 91년에 2.2%, 93년에 2.6%, 94년에2.9%로 점점 높아지다가 95년에는 마침내 3.2%로 3%대를 넘어서고말았다. 지난해에는 3.3%로 또다시 0.1% 포인트가 높아졌다.이처럼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도산기업의 실직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금융불안으로 인한 기업도산이 이어지면서 실직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문제는 단순히 실업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파산기업의 실직자들의 재고용문제가 인재의 유동성을 높이면서 노동시장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종신고용제가 흔들리고 있지만화이트칼라의 유동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던게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대형금융기관의 잇단 「돌연사」로 이러한 상황이 급반전하고 있는 것이다.금융빅뱅에 이어 「노동빅뱅」이 일본에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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