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강사 오성식

스타는 대부분 「끼」를 타고 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끼」는 별로 없어도 그 당시의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주변의여건이 스타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스스로 「탄생」하기도 하지만「만들어지기도 하는 것」이다.영어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오성식영어연구원장이 바로 그런경우에 해당한다. 오씨는 지난 87년 교육방송국(EBS) 중학영어교육프로그램 강사로 첫발을 내디딘 뒤 승승장구, 이제 생활영어강사인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그는 94년에 「오성식영어연구원」을 설립,강사에서 사장으로 변신했다. 강사로 활동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사업으로 연결해 새로운도약을 모색하고 있다.『사업가로서는 아직 잘 모르겠고 영어강사로서는 성공했다고 자부합니다. 오늘의 저는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방송 등대중매체에서 자주 불러주고 그런 기회가 올때마다 시청자와 청취자들의 구미에 맞게 영어회화강의를 하다보니 오늘의 오성식이 있게 됐다고 봅니다.』◆ 대학재학중 이미 스타자리 굳혀오원장은 생활영어 명강사로 성공하게 된 것은 방송매체에 자주 출연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라며 겸손해한다. 80년대 중반 이후 불어닥친 국제화·개방화바람도 「명강사 오성식」이 있게한 외부요인이다. 당시에는 영어붐이 급속도로 일었는데 톡톡튀며 알기 쉽게진행되는 그의 강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독차지했다. 마케팅측면에서 보면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 시의적절하게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 셈이다.생활영어 명강사 오성식이 그렇다고 「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79년 외국어대학교 포르투갈어과에 입학한 그는 여느 대학생들처럼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단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전공인 포르투갈어보다는 영어공부에 더 미쳤다는 것뿐이었다.대학 2학년 때 비록 다른 사람 명의였지만 「어린이생활영어」와중학생을 대상으로한 영어회화책을 발간했다. 이렇게 해서 번 돈으로 세계일주여행을 즐기던 그는 그동안의 경험과 틈틈이 영어공부하면서 메모했던 것을 모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생활영어책을 발간했다.「오성식 생활영어 5400」이 바로 그것인데 이 책은 공부하는 사람입장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노하우를 솔직하고 쉽게 서술, 대학생들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무려 40여만부가 팔렸고 이를 계기로 대학생 오성식은 일약 스타로 급부상했다. 대학 4학년의 신분으로 기독교방송국 영어회화 진행을 맡아 동분서주하던그는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미국유학길에 올랐다.이때가 86년.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1년 3개월만에외국인을 위한 영어교수법이라는 논문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처럼 단기간에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영어에 관한 한 기본적인 실력이 있었던데다 그곳의 강의법이 자신에게 너무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교수들 대부분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충분히 살리는 방식으로 진행, 마치 저 자신을 천재인 양 착각하게 만들더군요.』87년 귀국한 그는 미국 유학기간중의 이런 경험을 살려 전혀 새로운 기법의 생활영어강의를 선보이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처음으로맡은 방송강좌는 교육방송국 중학생 영어강좌. 그는 강의를 듣는주대상이 신세대인 점을 감안해 머리도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바꾸고 예문도 이들이 즐겨듣는 팝송 등에서 인용했다.이런 강의방식은 신세대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고 입에서 입으로 그의 명성은 알려지기 시작했다. KBS로부터 FM 굿모닝팝스 진행요청이 들어와 이를 맡아 7년동안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려원으로부터는 92년 생활영어책을 발간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대학 4학년때 생활영어책을 낸 경험이 있었던 그는 고려원의 제의를 받아들여 「오성식 생활영어 SOS 7200」을 펴냈다. 고려원은 책발간과 동시에 대대적인 광고전을 전개했다.광고공세의 영향인지 몰라도 이 책은 무려 20만세트가 팔렸고 덕분에 명강사 오성식의 주가는 더 치솟았다. 만들어진 스타라고 겸손해하는 것도 고려원광고가 큰 힘이 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출연료와 인세수입도 엄청나 그는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이를 기반삼아 그는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94년 현재의 오성식영어연구원을 설립, 본격적인 비즈니스에 나섰다. 그러나 비즈니스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마포구 염리동 다우서밋빌딩 6개층을임대해 어린이대상 영어학원을 개설했으나 초빙한 미국인 강사가계약조건을 위반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려 개업 얼마 안돼 문을닫아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6억여원의 손해를 봤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올 3월에는 고려원마저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사무실내에 녹음시설 등을 마련, 그가 야심을 갖고 냈던 「오성식 파노라마 잉글리시」 또한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판매가 약간 부진해 현재고민이 많다. 그러나 그는 아직 탄탄한 조직을 갖고 있다. 어린이교재 판매전문회사인 (주)배움과 가르침과 성인전용 교재 판매회사인 (주)태솔이 건재하다. 스타강사 오성식이 「큰 입」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것도 이런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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