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업종이 위험하다/금융산업

서울은행 본점 16층에 위치한 노동조합사무실. 이후범 노조부위원장과 장두원 쟁의부장 등 노조간부들은 하루종일 조합원들의 전화를 받느라고 분주하다. 정부의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요청이후 『대량해고사태는 없겠느냐』고 묻는 조합원들의 전화가 폭주하고 있어서이다.하루에 20통씩 쏟아진다. 국내외 언론에서 인수합병의 대상으로 거론되면서 실직위험을 우려하는 전화다. 이부위원장은 『올해들어서만 6백30여명이 명예퇴직 등으로 은행을 떠나면서 조합원들이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해고될것인가」를 놓고 조합원들 사이에서 온갖 흉흉한 소문이 나돈다.이같은 분위기를 의식해서 서울은행은 지난달 하순 오전과 오후 두차례에 걸쳐 사내방송을 통해 직원들에게 동요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은행권에 불어닥친 실직의 위험은 비단 서울은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중은행중 비교적 상황이 낫다는 주택 조흥 국민은행도 예외는 아니다.지난 10월 국책은행에서 민영은행으로 전환한 주택은행은 지금까지명예퇴직의 무풍지대였다. 올해초 30여명이 명예퇴직을 신청했을뿐이다. 그러나 1만2천여명에 달하는 임직원수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또한 독점적으로 운용하던 국민주택기금이 분리되는 등 경영환경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 이로인해 내년도에는 명예퇴직의 한파가주택은행을 강타할 전망이다. 노동조합도 경영진이 구조조정에 착수하면 인력정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수용하는 분위기다.조흥은행도 마찬가지다. 올해초 2백80여명을 명예퇴직시키는 등 올해말까지 3백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내년도에는 추가로 4백20여명을 정리하는 방침을 경영진과 노조가 합의한 상태다. 조흥은행 노동조합의 이기창 부위원장은 『정년퇴직 등 자연퇴직자만으로는 4백20여명을 정리할 수 없어 내년에도 또한차례의 명예퇴직이 예상된다』면서 『내년에는 올해같은 특별퇴직금이 지급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밖에도 국민은행(5백40명) 한일은행(1백80명) 등이 명예퇴직의 행렬에 동참했다.◆ 조흥은행, 내년도 420명 감원지방은행도 마찬가지다. 강원은행은 지난 11월 20일부터 29일까지명예퇴직을 신청받았다. 지점장을 포함한 부서장급과 3,4급중에서45세 이상이 신청대상이었다. 이들에게는 평균 급여의 30개월치를특별명목금으로 지불할 예정. 상반기에 있었던 명예퇴직때는 4명이신청했다.증권사도 일찍부터 고용조정에 나섰다. 증권시장이 워낙 좋지 않아일찍부터 명예퇴직 등을 통한 인원조정을 추진해 왔다. 올해들어서만 동양 동서 한진투자 산업증권 등이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특히동서증권의 대대적인 명예퇴직이 증권업계의 화젯거리였다.가장 최근에 명예퇴직을 실시한 증권사는 한진투자증권. 지난 10월전체 7백여명중 1백여명을 명예퇴직시켰다. 명예퇴직신청자는 여직원(20여명)과 차장급 이상 간부사원(20여명)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12개월치의 급여를 특별위로금 형식으로 지급했다.동서증권은 지난해말 1천8백90여명에 달하던 임직원수가 10월말현재 1천5백30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10개월 사이에 무려 3백60명이줄어든 것이다. 이같은 인원감소는 지난 9월말 3백명을 명예퇴직시키는 등 인원조정으로 가능했다. 주로 여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명예퇴직자에 대해서는 평균급여의 24개월치를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했다. 인건비 절감과 인사적체를 해소하겠다는게 회사측의설명이다.산업증권도 인력조정에 착수했다. 지난 4월 임금동결 및 월차휴가수당을 반납하는 등 경영혁신을 강도높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 8월말에는 특별퇴직제를 실행하여 7백여명의 인력중 1백명을 감원했다. 동양증권도 지난 4월에 1백80명을 명예퇴직시켰다. 여직원이전체 명퇴자의 55%를 차지한다.증권업계의 인원정리는 대부분 여직원을 겨냥한 것이 특징. 증권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고졸여사원이 주축인 일반사원의 숫자는 지난해말 1만3천9백여명에서 10월말현재 1만2천4백여명으로 줄어들었다. 무려 1천5백여명이 감소했다. 이것은 업무에 비해 인건비가과다 지출된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생명보험업계도 인원정리에서 예외는 아니다. 가장 최근 명예퇴직을 실행한 업체는 동아생명. 기존 6대 생보사중 하나인 이 회사는지난 10월말 인원감축을 단행했다.지난 8월 재경원으로부터 1년간 퇴직연금보험 취급을 정지당하는등 악화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의 하나였다. 8년차 여직원과 40대이상의 부차장급 등이 주된 대상. 2백여명에 달하는 명예퇴직자에게 정규퇴직금 이외에 20개월치의 기본급을 더해 줬다. 이같은 감원으로 전체 직원이 2천2백여명으로 줄어들었다. 회사측은인건비 절약효과가 크다고 설명한다.◆ 종금사 구조조정시 50%까지 감원될 수도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지방생보사는 이보다 일찍 명예퇴직을실행했다. 인천에 본거지를 둔 국제생명은 지난해10월 명예퇴직제를 통해 95명의 인력을 감축하는등 모두 2백50여명의 인력을 줄였다. 명예퇴직과 결원인원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줄인 것. 이밖에도 한일생명이 올해초 2백여명을 감축했고 두원생명(1백70여명)BYC생명(1백40여명) 등도 비슷한 수준으로 인원을 줄였다.실직에 대한 공포는 종금업계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국내 금융산업중 1차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전망이어서 종금업계 종사자들은긴장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재경원 등 정부가 IMF에 금융산업 재편에 대한 가시적 성과물을 보이기 위해 인수합병 등이 추진될 경우전체인원의 절반 가량이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성급한 추측도 나오고 있다.위기의식을 느낀 종금사 노조대표들은 지난달 27일 재경원을 방문해서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따른 인원정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업체당 고용인력이 80∼1백50명에 불과하고 자체적으로 인원조정을 해왔다고 반발하고 있다.경남종금의 최원태 노조위원장은 『전체 직원이 1백3명밖에 안되고이마저 최소한의 인원』이라면서 『종금사 부실의 원인을 직원들에게 전가할 경우 그냥 있지는 않겠다』고 항변했다.금융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진행된 명예퇴직 등은 시작에 불과하다고말한다. 지난달21일 매커리 백악관 대변인의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여부는 강력한 정책의 채택이며 특히 금융분야에 대한 과감하고결정적인 정책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언급처럼 강력한 금융산업개편을 요구하고 있어서이다. 방한중인 IMF실사단도 『금융산업의인수합병 때 잉여인력 정리가 가능하느냐』고 묻는 등 정리해고에대한 관심을 나타냈다.이를 의식해서 정부도 금융기관 인수합병시 잉여인력을 해고할 수있는 조항을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첨가할 방침이다. 이같은 전후 사정으로 금융업 종사자들에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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