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절반 '위험 수위'

IMF는 한국에 대한 구제금융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극히 불안정하다며 이를 조속히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금융시스템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금융기관들이 부실해 금융기반이 취약하다는 얘기다. 사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은행 종금사증권사 보험사 할 것 없이 대부분 부실이 누적돼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의 가장 큰 요인은 올들어 대기업들이 잇따라 도산하면서 수십조원의 부실을 떠안게 됐기 때문. 또자기자본에 비해 무리하게 여신을 운용한 금융기관 자신들의 과오도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수 있다. 이로 인해 국내 금융기관중 절반 정도가 폐쇄나 인수합병의 기로에 서 있는 처참한 상황이다.●종금사=국내 30개 종금사중 일부를 빼곤 대부분이 부실 덩어리이다. 재경원에 따르면 지난 10월말 현재 부도처리됐거나 법정관리에들어간 어음과 6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금을 합한 종금사의 무수익(부실)여신은 총 3조8천9백76억원에 달한다. 종금사 자기자본 4조2천7백69억원의 90%를 넘는 규모다. 이는 작년말 부실 여신규모(1조2천6백42억원) 보다 2백% 이상 불어난 것. 이에 따라 30개 종금사의 총 여신(어음할인 대출 리스 지급보증 포함) 1백34조6백37억원중 부실여신 비율은 2.9%에 이르렀다. 이 역시 작년말의 1.03%에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종금사의 부실여신 비율은 은행권의 부실비율 2.7%(9월말 현재)보다도 높아 부실 깊이를 가늠케 한다. 또 총여신중 자기자본(4조2천7백69억원)비율의 경우 3.19%로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위험가중치가 계산된 자산대비 자기자본 비율 8%)에 크게 미달하는 건 물론이다.부실여신규모를 회사별로 보면 대한종금이 3천8백69억원으로 가장많다. 다음은 △나라 3천1백21억원 △제일 3천62억원 △중앙 2천9백60억원 △삼삼 2천8백41억원 등의 순이다.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는 청솔종금을 비롯해 나라 대구 대한 LG 한화 등 19개 종금사는부실여신 규모가 자기자본 보다도 많다. 총여신 대비 부실여신 비율은 청솔종금이 39.49%(무수익여신 2천1백61억원) 로 제일 높다.그 뒤를 △삼삼 5.97% △울산 5.84% △금호 경남 5.06% △영남 4.89% △대한 4.85% 등이 잇고 있다.◆ 건실 종금사 손에 꼽을 정도이같이 엄청난 부실로 인해 지난 12월2일 청솔 한솔 고려 신세계쌍용 항도 경일 경남 삼삼 등 9개 종금사가 1차로 영업정지당했다.이어 10일엔 대한 나라 신한 한화 중앙 등 5개 종금사가 2차로 영업정지 조치를 맞았다. 영업정지된 14개 종금사 외에도 한길 삼양영남 등 3개 종금사가 외화자산 매각조치를 받아 현재 실제로 정상영업을 하고 있는 종금사는 13개에 불과하다. 이들 13개 잔류 종금사중에도 한불 한국 아세아 현대 등 일부 건실한 종금사를 제외하곤 울산 금호 대구 제일 LG 등이 모두 총여신 대비 부실여신 규모가 3%를 넘어 위태위태한 지경이다.●은행=일반인들에게 가장 안전한 금융기관으로 인식돼온 은행도부실규모로만 보면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올초 한보를 시발로 기아 대농 진로 등 대기업 그룹들이 줄줄이 쓰러지면서 부실여신이눈덩이처럼 늘어난 은행들은 이제 「잘못하면 망할 수도 있다」는위기감에 떨고 있다.지난 9월말 현재 15개 시중은행과 10개 지방은행 등 총 25개 일반은행의 불건전 여신(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규모는 21조4천6백10억원. 시중은행 부실이 18조3천8백77억원이고 지방은행 부실이 3조7백33억원에 달한다. 여기서 가장 심각한 곳은 제일은행과 서울은행. 제일은행의 불건전여신은 4조5천1백87억원이고 서울은행은 그규모가 3조4천5백68억원에 이른다. 총여신대비 불건전여신 비율은제일은행이 16.7%, 서울은행이 15.1%다. 25개 은행 평균인 6.8%의두배를 웃도는 규모다. 그래서 이들 두 은행은 IMF와 재경원간 협의때 구조조정 대상 0순위로 꼽혔었다. 물론 정부가 최근 이들 은행에 대규모 출자라는 긴급 수혈을 했지만 구조조정의 도마 위에서내려오진 못하고 있다.제일과 서울은행 이외에 불건전 여신규모가 많은 은행은 △조흥(2조1천5백64억원) △외환(2조6백4억원) △상업(1조4천3백46억원) 등이다. 총여신 대비 불건전 여신비율로는 지방은행인 △제주(14.8%)△충청(11.6%) △전북(10.5%)은행 등이 특히 높다. 이에 따라 이번금융대란의 와중에서 인수합병 등의 대상에 은행도 빠지지 않고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증권사=연일 최악의 주가폭락 사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증권회사들도 생존의 기로에 서 있긴 마찬가지다. 국내 39개 증권사들은금년 상반기중(4~9월)에만 3천6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작년같은 기간의 순손실 2천5백25억원 보다 20%이상 적자가 늘어난 셈.이들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는 유가증권 평가손실을 모두 반영할 경우 상반기 적자규모는 1조원을 넘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이에 따라 앞으로 2~3년 안에 절반 이상의 점포가 문을 닫고 10개이상의 증권사가 도산하거나 합병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대두되고 있다.회사별로는 지난 상반기중 23개사가 적자를 냈고 흑자를 낸 회사는16개사에 그쳤다. 산업증권이 6백4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적자규모가 가장 컸고 다음은 △동서(4백34억원) △한화(4백22억원) △LG(4백11억원) △선경(3백50억원) 등의 순이었다.●보험사=생명보험업계의 누적적자가 2조3천억원에 달하는 등 대부분의 생보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33개 생보사중 지난해흑자를 낸 곳은 삼성 교보 대한 흥국 제일 등 기존 5개사 뿐이다.나머지 회사들은 모두 적자를 냈다. 생보사들의 경우 지난 89년 무더기 신설 인가로 과당경쟁을 벌여온 데다 최근 은행-보험간, 생보-손해보험회사간 업무영역이 허물어지면서 존립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 이로 인해 보험업계에선 금융대란을 계기로 보험회사간 인수합병 등 대대적인 구조재편이 임박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