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은행 한국상륙 시나리오

외국 은행들이 몰려 온다. 지금처럼 단순하게 지점이나 사무소를설치하는게 아니다. 국내 은행을 집어삼키러 들어온다. 국내 은행에 대한 외국인들의 M&A(인수합병)가 이제 막 시작될 것이란 얘기다.길은 이미 틔었다. 정부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외국금융기관의 국내은행 인수를 허용키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현재 4%로 돼 있는 1인당 은행소유지분 한도를 대폭 늘릴 방침이다.물론 단서조항은 있다. 적대적 M&A는 안된다는 것. 임창렬 경제부총리도 최근 은행장 간담회에서 이같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외국인주식투자한도가 이미 50%까지로 확대됐기 때문에 마음만먹으면 적대적 M&A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게 일반적인 시각이다.최근의 정황을 종합하면 외국인들의 움직임이나 분위기가 심상치않다. 외국인들은 국내 은행업 진출에 상당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IMF자금지원 협상과정에서도 미국측은 7개의 자국 금융기관들이 한국 진출을 원하고 있다며 관련규정을 정비토록 한국정부에 요구한것으로 알려졌다.게다가 요즘 금융가에선 미국의 유수은행이 2~3개의 대형 시중은행과 인수합병 관련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설도 나돈다. 경영사정이 어려운 은행의 일부 직원들도 내심 외국의 대자본이 들어와 자신들의 은행을 정상화시켜 주길 바라고 있기도 하다. 결국 안방을내주고 국내 돈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현상이 빚어지겠지만 파산하는 것보다는 나은게 아니냐는 비참한 기대감 때문이다. 이처럼 대내외 여건은 무르익고 있다.게다가 외국인들은 한국 금융기관 공략 준비를 완료한 상태. 외국인들의 국내 은행 주식 소유현황을 보면 그들의 한국 진출이 입질수준은 넘었다는 걸 알수 있다.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는 작년말현재 조흥은행 1.19%, 상업 4%, 제일 1.72%, 외환 1.94% 등의주식을 갖고 있다. 또 체이스맨해튼은 유럽 현지법인 등을 통해 2.36%의 제일은행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베어스턴즈는 서울은행 지분이 2.09%에 이른다. 국내은행 인수를 위한 잠재적 기반은 갖춰졌다는 얘기다.◆ 한국상륙 감행 … 공공연한 비밀이와 관련,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미국 은행 뿐 아니라 유럽계 은행들도 아시아로의 확장을 추구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실어 주목을 끌었다. 기사에 따르면 ABN암로 ING은행 코메르츠방크취리히그룹 등이 아시아지역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특히 일부은행은 인수까지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같은 움직임은 벌써 현실화됐다. ING은행은 최근 태국의 대형 은행인 시암시티뱅크의 지분을 10% 취득했다. ABN암로도 아시아지역에 야심찬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공언했다.그래서 금융계에선 외국 은행들이 동남아에 이어 한국에도 조만간본격 상륙을 감행할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그 선봉엔 씨티은행과 홍콩상하이은행이 설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두은행은 무엇보다 한국에서 소매금융 확대 전략을 갖고 있어서다.소매금융을 위해선 전국적인 점포망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국내 은행 인수 개연성이 높다는 것.그러나 두 은행의 한국 상륙전략엔 차이가 있을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두 은행의 과거 외국 은행 인수사례를 보면 주요타킷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씨티은행의 경우 주로 1백~2백개의 점포망을 갖고 있는 신설 우량은행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씨티은행이 태국에서 인수한 퍼스트방콕씨티은행(FRCB)도 점포망이 1백80개수준이다.하지만 홍콩상하이은행은 스케일이 다르다. 홍콩상하이는 대형은행을 선호한다. 이 은행은 브라질에서도 최대 부실은행 하나를 인수한 경험이 있다.』(금융연구원 임준한 연구위원)이런 전망을 액면 그대로 국내 상황에 대입해 보면 씨티은행의 사냥감은 하나은행이나 보람은행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씨티은행의 영업전략이 고소득층 고객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하나나 보람을노릴 개연성은 더욱 짙다.이에반해 홍콩상하이은행은 부실 대형은행인 제일·서울은행에 눈독을 들일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부실여신이 워낙 많아 인수 메리트가 그리 높진 않지만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전국적인 점포망은한국 진출을 희망하는 외국은행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더구나정부는 제일과 서울은행에 각각 1조2천억원의 현물출자를 통해 50% 이상의 지분을 갖기로 했다.따라서 한국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한국정부는 두 은행을 싼값에라도 내놓을 수밖에 없고 이 경우 홍콩상하이은행이 덤빌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도 있다.물론 이들 은행들은 이같은 시나리오에 대해 아직까진 펄쩍 뛴다.『한국에서의 은행인수는 전혀 검토한 바 없다』(씨티은행 관계자)며 애써 부인한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M&A를 추진하는 사례는 없다. 은밀한 물밑작업이 진행되다 어느날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르는게 M&A의 속성이다. 외국계은행의 국내 은행 M&A가 이미 물밑에선 상당히 진척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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