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시나리오

당초 한국에 대한 IMF의 자금지원 개시와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국내 외환위기가 다소 진정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외화난은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나온 IMF 세계은행 G7 등의 조기 자금지원 결정에 힘입어 한국은 발등에 떨어진 외화부도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이로써 한국은 1∼2개월 정도 시간을 벌게 되었다.국내 외환사정이 위기상황으로 몰리면서 최근들어 모라토리엄(Moratorium), 디폴트(Default) 등과 같은 생소한 말들이 등장하고 있다. 모라토리엄이란 채무지불중지 및 유예를 뜻한다. 채무국이 만기가 되어 돌아온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을 때 선언된다. 채무국의모라토리엄 선언이 일단 채권자들에게 받아들여지면 양 당사자들은협상을 벌여 기존 외채의 원금과 이자의 상환일정 등을 재조정하게된다. 이를 리스케줄링(Rescheduling)이라고 한다. 이 때 협상은주로 대출금의 지불유예기간 설정, 만기연장, 채권의 주식전환, 신규 자금지원 여부, 부채탕감 등에 초점이 맞춰진다. 협상은 각국의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고,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대부분 장기간이 소요된다. 멕시코의 경우 협상이 타결되는데 꼬박 7년이나 걸렸다.◆ 세계가 사전 예방 기울여야이에 반해 디폴트는 외화부도를 뜻한다. 채권자들이 빌려준 돈을상환받을 가망이 없다고 판단할 때 디폴트를 선언한다. 채무국의모라토리엄 선언을 채권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경우에도 디폴트를 선언한다. 물론 모라토리엄이 선언되기 전이라도 채권자들은 채무국의 부채상환이 지연되면 언제라도 디폴트를 선언할 수 있다.디폴트 선언과 동시에 채무국의 모든 대외자산은 동결된다. 대외수출대금이나 외국 금융기관에 넣어둔 외화예금 등이 1차적인 대상이다. 또 채권자들은 상환기일이 되지 않은 부채의 상환도 요구할수 있다. 만약 한국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한다면 채권단은 이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곧바로 디폴트를 선언해 버릴 가능성이 높다. 모라토리엄 선언을 하게 되면 대외 신인도가 당분간 도저히 회복하기힘든 수준으로 떨어져 해외차입이 사실상 중단된다. 우리 경제는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구조를 갖고 있어 대외무역을 통해 단기간에 상환재원을 마련하기도 힘든 형편이다. 국토면적도 좁고, 부존자원마저 부족하다. 따라서 한국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외국채권자들은 한국으로부터의 채권회수에 대해 비관적인 판단을 내릴공산이 크다. 이는 곧 디폴트선언을 의미한다.우리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경우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은수출 뿐이다. 그러나 채권자들로부터 디폴트 선언이라도 당하는 날이면 수출대금마저 차압당할 우려가 높다. 이럴 경우 외화부족으로인해 원자재, 자본 설비 등의 수입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연히 국내에서는 물자생산 부족으로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다. 경상수지를 흑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국내적으로 초긴축정책을선택할 수밖에 없다. 초긴축정책은 기업들의 자금난을 더욱 악화시켜 기업들의 무더기 도산을 초래할 것이다. 초인플레이션과 자금난으로 금리는 수십∼수백%대로 오르고, 주식과 채권은 휴지조각으로변할 우려가 높다. 실업자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불문가지다. 우리경제는 한마디로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에 빠지게 된다.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적이 있는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의 경험이 좋은 예다.한국 경제가 모라토리엄으로 갈 경우 세계경제도 온전할 수는 없다. 우선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태국 인도네시아 등동남아 각국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동남아 지역에 많은 돈이 물려 있는 일본 미국 서유럽계 금융기관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 분명하다. 또 세계 제 11위의 경제대국인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 경제의 장기불황은 세계경제 전체를 불황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국제사회와 우리는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를 사전에 막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는 우리 경제를 위해서나 세계경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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