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미 대우전자 광명지점 모니터사원

남들이 한번도 오르기 힘든 대우전자 판매여왕에 두차례 오른 강창미씨(31)가 이 회사 모니터사원으로 나선 것은 94년 7월이다. 일년전 결혼은 했으나 남편이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탓에 강원도 원주시댁에서 홀로 지내다 이해 1월 남편이 대우통신 연구원으로 취직하자 곧바로 상경, 경기도 광명시에서 뒤늦은 신혼생활을 시작했다.남편과 같이 살게된 기쁨도 잠시. 7개월된 아들등 세식구가 살기에는 남편의 봉급이 너무 빠듯했다. 남들처럼 사치하지 않고 절약하면서 생활했으나 3만~4만원하는 아들 옷한벌 사주는 것이 그렇게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한달에 50만원만 벌면 아이옷도 사줄수 있고 적은 액수지만 적금도넣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우전자 광명지점 모니터사원으로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누구나 그렇듯 강씨의 출발도 순탄치만은않았다. 광명시 일대 가정집을 샅샅이 돌아다녔으나 계약건수는 거의 가뭄에 콩나듯했다. 모니터사원으로 나선지 1개월여만에 겨우냉장고 하나 팔았을 뿐이었다.강씨는 이런 자신의 모습이 싫어 3개월쯤 됐을 때 그만둘까 했으나이때부터 가시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계약을 해주든 않든 매일 방문하는 강씨의 정성에 신뢰감을 느낀 주민들이 하나 둘씩 가전제품계약을 해주기 시작했던 것. 이럴 즈음 강씨는 새로운 고객개발을위해 광명시 일대에 밀집해있는 버스 택시 등 운수회사를 집중방문했다. 한군데를 방문,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영업을 할수 있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결과 강씨는 94년 모니터사원 신인여왕으로 선정됐다.자신감을 얻은 강씨는 95년에는 판매여왕에 도전해보자는 목표를세우고 아들을 아예 「어린이 집」에 맡기고 본격적인 영업에 나섰다. 살고있던 아파트부근에 신규로 입주하는 아파트가 많아 강씨는이를 집중적으로 공략, 상당한 계약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95년에강씨는 대우전자 판매여왕에는 오르지 못했다. 자신의 고객을 늘린것으로 만족해야 했다.약이 오른 강씨는 다른 모니터사원이 생각지 못한 대학교를 대상으로 PC를 판매할 경우 높은 계약실적을 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 서이듬해부터는 대학교를 집중공략했다. 이미 자신으로부터 가전제품을 구입한 기존 고객들에게는 한달에 한벌꼴로 들러 회사에서 나오는 신제품팸플릿과 감사의 편지를 전달했다. 서강대와 아주대를 큰거래처로 확보하는 한편 기존 고객들의 소개에 의한 계약이 줄을이어 96년말 8억3천여만원의 판매실적을 올려 판매여왕에 비로소등극했다. 모니터사원으로 나선지 2년만이었다. 이후 강씨의 세일즈는 순풍에 돛단듯이 잘 나갔다. 지난해에도 강씨는 무려 11억3천만원의 판매실적을 올려 연거푸 판매여왕을 차지했다.강씨는 IMF영향으로 내수가 꽁꽁 얼어붙은 올해에도 판매여왕은 자신의 몫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IMF시대지만 용량을줄일지언정 가전제품수요는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강씨는 자신이 스스로 개척하고 기존 고객들의 소개를 통해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올 1월 남들이 한대 팔기 힘들다는 가전제품을 약 1천여만원어치 팔았다. 이런 점에서 그의 판매여왕 3연패 도전은 그저 빈말만은 아니다. 판매여왕 강씨가 모니터사원에 뜻을 두고 있는 주부들에게 전한 말은 이렇다.『우선 먹기에 곶감이 달듯 친인척 등절대로 아는 사람들을 상대로 세일즈에 나서지 말라. 처음 3개월동안은 그런대로 판매실적을 올릴수 있으나 이후에는 판매실적이 오르지 않는다. 처음 3개월동안은 무조건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세일즈에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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