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그룹의 전문경영인체제

전문경영인 체제. 한국 기업의 영원한 숙제처럼 치부됐던 경영 형태다. 「한국적 환경에서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라는 논란도 있지만 어쨌든 오너 경영의 폐해가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돼 왔다.이같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실험이 국내 대기업 그룹에서도 시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작년 6월 대림그룹, 8월엔 미원그룹(지금은 대상그룹)에서 각각 오너 총수가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이 그룹회장에 올랐다. 오너가 경영하던 그룹에서 오너가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이 경영 전권을 이양받은 것은 30대 그룹중에선 대림과 미원이첫 시도였다.그 중에서도 대상그룹의 케이스는 특히 시선을 끈다. 창업주(임대홍·79)가 생존해 있는데다 오너회장(임창욱·49)도 한창 일할 나이인데 미련없이 회장직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겼기 때문. 더구나 오너 자신이 동생(임성욱 그룹부회장·31)이나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전까지의 과도체제가 아니냐는 세간의 관측에도 불구, 영원한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한 터여서다.임창욱 당시 회장은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위해선 대주주가 경영을 좌지우지하기 보다는 경영 노하우와 지식을 갖춘 전문경영인이 그룹경영을 총괄하는게 바람직하다』며 회장직에서 깨끗이 물러났다. 그는 형식적으로 명예회장에 추대되긴 했으나 경영에선 완전히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실제로 임명예회장은 서울 신설동 그룹 사옥 5층에 있는 회장실을그대로 신임 고두모회장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아예 출근조차 하지않는다. 『혹시 전문경영인 회장이나 직원들에게 부담을 줄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 명실공히 전문경영인 체제로 그룹이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전문경영인인 고두모 회장도 오너 못지 않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다. 외환은행 등에서 17년간 근무해 금융통인 고회장은 IMF위기 이후 은행을 직접 뛰며 원활한 자금 조달을 지휘, 직원들을감탄시키고 있다.◆ 외형확장보다 내실 다지기 총력또 회장 경영방침으로 △사업구조 전문화 △경쟁력 창달 △인재경영 강화 등 세가지 목표를 세우고 본격적인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을주도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고회장은 취임직후 본지와의인터뷰(97.8.26일자)에서도 『우리 그룹의 능력에 맞지 않거나 사업다각화를 시도하다가 함정에 빠진 분야, 경쟁력이 없는 분야 등에서는 과감히 철수하겠다』며 강력한 구조조정의 뜻을 내비쳤다.외형확대 등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내실을 다지는 등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물론 대상그룹이 전문경영인 회장 취임후 경영시스템이나 의사결정과정 등이 뭔가 획기적으로 바뀐건 아니다. 과거 오너경영 체제 당시의 시스템이 상당부분 유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그룹총수가 오너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얼굴만 바뀌었을 뿐 눈에 띄는변화가 없다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다.그러나 대상그룹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출범한지 이제 6개월밖에 안된만큼 성급한 평가는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이행기 대상그룹 비서실장은 『전문경영인을 통한 합리적인 경영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도록 사외이사제 도입 등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중』이라며 『변화는 곧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업에서의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실험도 이제 막이 올라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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